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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머그] 백제의 권위? 마한의 자존? 한반도 최초 금동관의 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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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전남 나주시에서 고분이 발굴됩니다.

바로, 신촌리 9호분입니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발굴된 이 고분에서는 무려 11개의 옹관이 출토됐습니다.

그중 '을관'에서 한반도 최초의 금동관이 나옵니다.

경주의 금관총 금관보다 4년 앞선 발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발굴 이면에는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조선고적조사사업'이 있었습니다.

이 금동관도 '왜인의 것'으로 인식되며,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쓰일 뻔했습니다.

해방 이후 80년, 우리 학계는 뒤틀린 해석을 바로잡기 위해 긴 시간 싸워왔습니다.

과거 '왜인'의 것이라 인식되었던 금동관은 광복 이후 자료의 증가와 연구의 진전에 따라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수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백제가 하사한 것인지, 백제의 영향을 받은 영산강 유역에서 힘을 기르던 세력이 직접 만든 것인지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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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출토된 많은 금동관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신촌리 금동관'.

고깔 모양의 모관과 머리띠 형태의 대관을 모두 갖춘 유일한 사례이자, 누군가 고쳐 쓴 흔적까지 남아 있는 국보 금동관.

특히 대관은 마한과 백제 관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것입니다.

이 금동관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이 금동관은 백제가 내린 하사품일까요, 아니면 영산강 유역 세력이 직접 만든 것일까요?

100년 넘게 이어진 논쟁의 한가운데, 금동관의 주인은 과연 누구였을지 영상에서 확인해보세요.

(취재 : 소환욱, PD : 김인선, 구성 : 이미선, CG : 안준석·조은솔, 촬영 : 문정도·장세원, 제작 : 지식콘텐츠IP팀, 자료제공 : 국립나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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