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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폐 아이들 치료해서 뭐 하냐"는 질문에 대하여

대한민국 '자폐 사교육' 실태…치료가 사교육이 된 나라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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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스펙트럼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이 많이 혼란스러웠던 그때, 제 개인의 삶도 처음 마주한 어두운 터널 앞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만 2살이 되기 전부터 지역 아동발달지원센터를 시작으로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 이르기까지 8개월여에 걸쳐 받았던 여러 검사들의 결과가 나오던 날, 담당 교수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애 등록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폐스펙트럼에 해당하네요."

그때의 저는 무지했고, 장애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기에 그 말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왜 30개월도 안 된 아이한테 낙인을 찍으세요?"

날 선 말을 내뱉는 제게 교수는

"낙인이 아니고 보호"

라고 답했습니다. 교수의 말을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진료실을 나와, 아침부터 병원에 끌려오느라 배가 고팠을 아이에게 작은 레몬 마들렌을 사 먹였습니다. 마들렌을 작은 조각으로 떼어 아이에게 주며 '빵집 바닥이 왜 이렇게 울렁거릴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약 2년이 지난 지금, 저와 아이의 일상은 많이 바빠졌지만 다행히도 그날 그 순간 상상했던 미래처럼 혼란스럽고 암담하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는 진단을 받기 전이나 지금이나 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고 또 자신만의 속도로 잘 성장해 주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두 곳의 대학병원을 거치며 아이에 대한 진단을 받아들이게 됐고, 진단 이름 자체보단 아이를 위해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 그 과정 속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도 겪으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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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만 쥐어줄 뿐 이후 시스템은 없었다

다만 진단서를 받아 병원을 나서던 때의 막막함은 여전히 생생하고, 그 막막함은 아이의 성장에 변화의 곡선이 생길 때면 왕왕 찾아옵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지만, 최소 제가 경험한 발달 장애의 영역에선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온 '진단 후 치료'의 수순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은 내려주지만 이후 아이를 위한 치료와 지원의 방법은 부모가 병원 밖에서 알아서 찾아야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제가 고작 2년 정도 경험한 대한민국에서 자폐 자녀를 둔 가정들이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지난 9월 12일, SBS 시사프로그램 '뉴스토리'를 통해

<대한민국 '자폐 사교육' 실태 - 치료가 사교육이 된 나라>

편이 방송됐습니다. 뉴스토리팀에서 일하며 일반 뉴스가 아닌 약 30분짜리 다큐성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통해 자폐 자녀를 둔 가정들이 처한 '치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기획은 올해 초부터 시작했고,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까지 현지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기자로서 제가 취재에 나섰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부모의 주머니 사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진단 후 치료 현실'은 지속 가능한 시스템인가

. 둘째,

똑같은 자폐 진단을 받았는데 태어난 가정의 환경, 국가의 제도가 다르다고 앞으로의 삶이 달라지는 건 바람직한가.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등록된 19세 미만 아이들이 3만 3,506명으로 2010년(1만 1,918명) 대비 약 3배 늘었고, 올해 특수교육대상 학생 중 자폐는 2만 8,798명으로 2022년(1만 7,024명)보다 약 70% 증가했습니다. 통계가 보여주는 표면적 현실만 봐도, 비단 저만 느끼는 문제는 아닐 듯 했습니다. 실제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영상을 봐주시고 문제 의식에 공감해주셨습니다.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비싼 돈 들여 자폐 아이 치료해서 뭐 하냐"는 질문에 대하여

저희 방송 영상에 (유튜브 기준)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그중 '치료한다고 자폐가 나아지냐'는 취지의 댓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익명으로 남기는 댓글의 한계성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 경험해보지 않은 경우 이 '치료'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수술받으면 병이 낫는 것처럼 치료를 받으면 자폐가 사라진다는 건지 궁금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폐스펙트럼장애에 있어 '치료'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먼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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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는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서의 결함과,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문제를 주요 특성으로 하는 발달장애의 한 종류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게 된 이유는 장애의 양상이 나타나는 개별적 특성이 매우 달라서입니다. 왜 자폐가 나타나는지, 어떤 유전자 변이가 영향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 가능한' 원인을 아직 찾아내진 못했고 여전히 인류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쓰는 '치료(治療)'라는 단어는,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증상을 사라지게 하는, 이른바 '완치'를 목표로 하기 어려운 게 현대 의학의 현실입니다. 영어 표현으로 비교하면 좀 더 분명한데요, 자폐성 장애에 있어 '치료'는 의학적 치료나 시술을 의미하는 '

Treatment

'보다는 증상 완화나 기능 회복을 위한 '요법'을 의미하는 '

Therapy

'에 좀 더 가깝습니다. 학술적으로는 자폐 아이의 삶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

Intervention(개입·중재)

'이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이런 각종 개입을 수행하는 전문가들도 우리는 대개 '치료사'라고 통칭하지만 영미권에선 Speech-language

pathologist

(언어재활사), Occupational

therapist

(작업치료사), Behavior

analyst

(행동분석가) 등 다양하게 지칭합니다.

이 설명들에 '자폐 치료를 해서 뭐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받는 치료들은

자폐였던 아이가 자폐가 아닌 아이가 되게 하는 치료가 아닙니다.

자폐라는 장애를 갖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체득하기가 어려운 것들, 하지만

학교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 꼭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을 배우거나, 배울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최소화 될 수 있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개인의 상황과 특성에 맞게 지원 하는 것이 '자폐 치료'

입니다. 단기간에 끝나는 의학적 완치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성장에 맞춰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한 단계씩 익혀나가는

'생애주기별 평생 교육'이자 '자립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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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깝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의학적 치료에 속하는 '약물 치료'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자폐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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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어떻게 가르친다는 거냐'는 질문이 뒤따라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인터뷰에서 들었던 구체적인 전문가의 예시는 이랬습니다. 분야에 따라 접근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행동치료(ABA)의 관점에서 정경미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폐 치료'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일일이 하나하나 다 가르쳐 주는 거예요. 정상 발달하는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가 안 가르쳐줘도 눈치 보면서 다 배우거든요? 모방이 잘 되는 거죠. 모방이 잘 되면 학습이 잘 이뤄져요. 그런데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모방이 어려워요. 학습이 잘 안돼요. 박수 치는 거, 혼자 옷 입는 거, 모자 쓰는 거, 스스로 밥 먹는 거, 신발 신는 것 등 아이 스스로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은 안 배워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는 거예요. 사회에서 아이가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요. 어릴 때 가르쳐줄수록 이걸 배우고 습득하는 능력이 생겨서 나중에는 크게 도와주지 않아도 정상 발달하는 애들처럼 자기가 습득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어요. 바텀업(Bottom-up)인 거죠. 하나씩 가르쳐줘서 학습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면, 어느 수준이 지나면 자기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어요." (정경미,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정 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결국

"자폐적 특징은 갖고 있지만 사회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치료고 개입"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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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동의 '치료'를 대하는 미국의 '다른 시선'

비슷한 이야기를 미국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비영리 아동 재활 의료기관 '케네디크리거연구소(KKI)'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또 진단과 임상에 필요한 연구도 진행하는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기관인데요. 이 연구소 산하에 6세까지 자폐 아이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자폐 연구 센터 'CASSI(Center for Autism Services, Science and Innovation)'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의 총괄 대표이자, 존스홉킨스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이기도 한 레베카 란다 박사는 만 2세에서 5세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곳의 '수업 기반 언어 치료(classroom-based speech therapy programs)'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칩니다. 누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으면 '아 저 물건을 생각하고 있고 곧 잡으려고 하는 구나'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미리 알아채는 방법을 익히도록 도와주죠. '예측 능력'을 키우는 겁니다. 일상적인 루틴을 익히고, 언어 이해력을 높이고, 몸짓이나 제스처를 이해하고 직접 하도록 돕습니다. 남을 기계적으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맞게 또래 친구들과 놀이에 참여하고 같은 주제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더불어, 물건을 무작정 두드리거나 입에 넣는 식의 '무분별한 놀이 행동'에서 벗어나 장난감 버스에 작은 인형을 태워주거나, 인형에게 밥을 먹여주는 등 의미 있는 놀이 단계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줍니다." (레베카 란다, 케네디크리거연구소 자폐연구센터 총괄 대표)

누군가에겐 자연스럽고 당연히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에겐 무척 어려운 것이 바로 상대의 마음을 읽고 행동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조기 개입이 이뤄지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하는 사회성을 체화할 수 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이야기였습니다.

자폐 아동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넘어,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나아간 시각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결국 조기 개입이 장기적으로 사회·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자폐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며 살아갈 기반을 만든다는 논리였습니다.

"현재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아동 31명 당 1명 꼴로 발생합니다. 모든 소아과 의사가 자폐 아동을 진료하고 있고, 우리 이웃에도 자폐 아이가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도 (자폐가) 공중 보건 차원에서 국가가 개입해야 할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국가의 재정적 기반(country's bottom line)과 직결됩니다.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막대한 재정적 파급효과를 갖게 돼요. 신경다양성을 가진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인력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싶다면 유아기부터 차근차근 발판을 놓아줘야 합니다." (레베카 란다, 케네디크리거연구소 자폐연구센터 총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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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이야기로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자폐 아이를 뭐 하러 치료하냐'는 숱한 댓글들 속엔 한 부모님이 남겨주신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

정말 자폐가 치료가 되냐는 식의 댓글에 가슴이 답답하네요. 여기 부모들 완치, 치료 안 되는 거 다 압니다. 저희가 죽고 없어도 혼자 살아가게만 하려고, 사회에 나가서 남들 피해 안 주는 아이 만들려고, 일반 아이들 하는 기본만이라도 되게 하려는 겁니다...

(중략)

"

자립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간절함. 이 부모님의 목소리에 어쩌면 '무엇을 위한 치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재파일 2편에서는

<부르는 게 값인 자폐 사교육…사설 치료센터 '통계'도 없는 정부>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자료 출처

-보건복지부, 전국 연령별,장애유형별,성별 등록장애인수, 2025

-교육부, 2026 특수교육통계

-Shaw KA, Williams S, Patrick ME, et al. Prevalence and Early Identification of Autism Spectrum Disorder Among Children Aged 4 and 8 Years — Autism and Developmental Disabilities Monitoring Network, 16 Sites, United States, 2022. MMWR Surveill Summ 2025;74(No. SS-2):1–22.

※ 지난 9월 12일 방송된 뉴스토리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뉴스토리] 대한민국 '자폐 사교육' 실태 - 치료가 사교육이 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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