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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토리 580회] 명절이 더 아픈 사람들-참사와 재난, 그 이후 (영상취재·편집 : 김태훈)
지난 4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수색이 다시 시작됐다. 사고 발생 1년여 만이었다. 정부가 이미 수색을 끝낸 현장과 보관 중이던 기체 잔해에서 추가로 확인해야 할 대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국토교통부는 잔해 수습이 99% 완료됐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유족들이 직접 사고 현장을 살피는 과정과 보관 중이던 기체 잔해를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유해와 유류품이 다시 발견됐다. 유족들의 숱한 요구로 지난 4월 13일부터 대대적인 재수색이 시작됐다. 이후 정부 점검에서는 초기 수습과 잔해 관리 과정의 문제가 지적됐다. 결국 그동안 재수색을 요구해온 유족들은 다시 현장으로 들어갔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국가가 끝냈다고 한 수색이 충분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무안공항 재수색 현장에서 만난 김성철 씨는 수색 절차에 정통했다. 성철 씨는 참사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내와 딸을 잃었다. 취재진을 만난 그는 현재 어느 구역까지 확인했고 어디가 남았는지, 집중 수색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어떻게 나뉘는지, 각 구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구획별 진행 상황과 수색 방식은 물론 남아 있는 사각지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참사 전까지 일반 직장을 다녔던 그에게 이전에는 이런 지식을 갖출 계기도, 이유도 없었다. 유가족협의회 집행부에 참여한 것도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정부와 협의할 사람이 부족해 대표단에 이름을 올렸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다가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정부와의 협의와 추모사업을 맡았고, 재수색이 시작된 뒤에는 현장의 진행 상황까지 챙기게 됐다.
다른 유족들도 공항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 머물거나 교대로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실제 무안공항에서 유족은 수색 대상이 된 가족의 권리를 대변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가 맡은 수색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는지를 확인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수색 범위와 방식이 적절한지 살피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곳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수색을 언제 끝낼 수 있는지를 둘러싼 정부의 설명이 실제 현장 상황과 맞는지도 따졌다.
참사로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은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정부를 상대로 기체 잔해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삼풍백화점과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앞서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사고 현장이 예상보다 빨리 정리됐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설명했다.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현장을 정리하기 전에 무엇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 정부가 수습이 끝났다고 설명했을 때 어떤 질문을 더 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려줬다. 김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무안공항의 기체 잔해에도 다시 확인할 것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실제로 무안공항에서는 초기 수습과 잔해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이후 정부 조사에서 확인됐다.
앞선 재난의 피해자가 새로 발생한 재난의 피해자에게 국가 대응에서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를 알려준 셈이다.
스텔라데이지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사고 이후 10년 가까이 수색과 원인 규명 절차를 함께 따라가고 있다. 2019년 정부의 첫 심해수색에서는 선체와 항해기록저장장치가 발견됐고, 유해로 추정되는 대상도 확인됐지만 수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후 2차 심해수색을 요구하는 한편, 사고 원인에 관한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과 이에 불복해 선사가 제기한 재결 취소소송의 진행 상황도 지켜보고 있다.
사람을 찾아달라는 요구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은 수색이 어떻게 설계됐는지, 사고 원인에 대한 판단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까지 직접 확인하는 사람이 됐다.
아리셀 참사 유족이 주로 확인해야 했던 것은 사고 원인과 책임의 범위였다. 사고 뒤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유족들은 회사가 어떤 안전조치를 해야 했는지, 법원이 어떤 책임을 인정했는지, 사건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를 계속 따라갔다. 큰딸을 잃은 이순희 씨에게 산업안전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전에는 알 필요가 없었던 영역이었다. 하지만 딸이 왜 숨졌는지를 확인하려면 작업환경과 회사의 안전 의무, 재판의 판단 내용을 직접 이해해야 했다.
책임을 판단하는 일은 국가기관이 맡았지만, 그 판단이 어디까지 진행됐고 무엇을 인정했는지 확인하는 일은 유족의 일상이 됐다.
세 참사에서 유족이 했거나 하고 있는 일을 모두 ‘국가가 하지 않은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무안공항에서는 정부가 재수색을 시행했고, 스텔라데이지호에서는 정부가 1차 심해수색을 실시했으며 해양안전심판원이 사고 원인에 관한 재결을 내렸다. 아리셀에서도 수사와 기소, 재판은 국가기관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가 수색과 조사,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이전됐다고 볼 수도 없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참여는 배제할 일이 아니라 보장해야 할 권리에 가깝다.
문제는 유족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공적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질 때 생긴다.
끝났던 수색의 재개를 요구하고, 새로운 수색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조사기관이 놓친 문제를 지적하고, 과거 재난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직접 찾아 배우는 일은 단순한 의견 제출을 넘어선다.
국가는 수색과 조사, 정보 제공과 기록 보존, 재발 방지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할 책임을 갖는다. 그 기능 가운데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피해자는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절차가 작동하도록 압력을 넣는 사람이 된다. 수색이 충분했는지, 조사가 빠뜨린 것은 없는지, 책임 판단이 어디까지 왔는지 계속 질문해야 비로소 절차가 움직인다면, 피해자의 참여는 권리를 행사하는 차원을 넘어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일이 된다.
재난 대응에서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동시에 대응 체계의 점검자가 되는 역설은 바로 여기서 생긴다.
재난 대응 체계가 기관별로 나뉘어 있다는 점도 피해자의 역할을 키운다.
현장 수색은 경찰과 소방, 군 등 관계기관이 맡고, 사고 원인 조사는 별도의 조사기관이 담당한다. 형사책임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판단하고, 피해자 지원은 또 다른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재발 방지 대책도 사고 유형에 따라 담당 기관이 달라진다. 제도의 입장에서는 각 기관이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구조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모두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건이다. 어느 기관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지금 어떤 절차가 진행 중인지, 다음에는 어디에 요청해야 하는지를 피해자가 스스로 파악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은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국회와 법원 등을 오가며 수색과 원인 규명을 요구해왔다. 무안공항 유족들은 경찰·소방·군 등 수색 관계기관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여러 기관의 절차를 동시에 지켜봤다. 아리셀 가족들도 산업안전 문제와 형사재판, 추모와 재발 방지 대책을 각각 다른 기관과 상대하고 있다. 기관별 업무 분장은 행정에 필요하지만, 피해자에게 그 경계를 찾아다니는 역할까지 맡길 이유는 없다.
피해자가 제도의 구조를 공부해야만 자신의 사건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정보 제공과 조정의 부담 역시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이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 재난을 거치면서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 영역이 확대되는 동시에 대응 주체도 중앙부처와 전담기구, 외부 전문조직 등으로 다양해졌다.¹ 이런 변화만으로 정부가 재난관리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적극적인 책임을 다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난 대응에 관여하는 주체가 다양해지면서 기관과 조직 사이의 협력체계 마련과 책임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이 연구의 분석은 여러 기관이 각자의 업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의 재난에 대한 공적 대응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앞선 세 참사의 사례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각 기관의 역할과 진행 상황을 스스로 파악하고 연결해야 하는 상황은 분절된 대응 체계의 부담이 피해자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피해자를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는 재난 대응도 실제 유족이 맡고 있는 역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참사 뒤 심리상담과 의료, 생계와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해 피해자가 생활을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업무다. 그러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과 수색·조사·책임 규명 같은 공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이 있다고 해서 무안공항 참사에서 드러난 초기 수색·수습의 누락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피해자 지원이 스텔라데이지호의 2차 심해수색을 대신하거나, 아리셀 참사의 책임자 재판과 재발 방지 대책을 대신할 수도 없다. 피해자 지원과 재난의 수색·조사·책임 규명은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다.
피해자는 재난 대응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의 흔적을 찾는 일, 사고 원인을 확인하는 일, 책임이 어떻게 판단되는지 지켜보는 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책임까지 피해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는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사고의 수색과 조사, 기록과 재발 방지를 계속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참사 이후 유족에게 넘어온 공적 절차의 점검과 조정이라는 부담이 다시 국가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데서 비로소 재난 대응의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2편에서 계속)
¹ 한승주, 「사회재난 이후, 정부의 대응과 책임 변화」, 2018. 사회재난 이후 정부의 직접적 책임 영역이 확대되고 대응 주체가 다양화됐으며, 재난 거버넌스의 다원화로 향후 기관 간 협력체계 마련과 책임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