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영화 '가능한 사랑'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인 창작자의 윤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영화 '가능한 사랑'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인 예지의 모습에 빗댄 창작자의 윤리 문제에 대해 "제게 어떤 기준이 있느냐를 말씀드리기 어렵다. 저 자신도 (창작자가)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멈추게 된 이유 그리고 재개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은 "10여 년 전 모 대기업의 대량 해고, 파업, 강제 진압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저뿐만이 아닌 한국 사회의 충격이기도 했다"면서 "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준비하고 했다. 그러다가 접었다. 왜냐하면 '내게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까운가'와 같은 질문에 나름대로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노동'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뀌는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를 다시 해볼 결심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창동 감독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노동의 문제가 단순 파업과 해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노동의 시각 자체가 바뀌는 상황에 왔을 때 이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이야기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의 정체성을 통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그들(해고 노동자 부부)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제 이야기와 함께 함으로써 어느 정도 저의 윤리적 문제 또는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의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창동 감독은 앞서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소감에서 "타인의 고통을 영화에 그리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창동 감독은 "저와 같은 창작자에게는 본질적인 고민이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까'다"라며 "그걸 소비하지 않고 제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건 평생 해온 질문이다. 지금도 답을 쉽게 찾지 못한 질문"이라고 신중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 '예지'에 이에 대한 고민과 태도를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의 태도가 영화 속에서 일방적으로 대상을 이용하고 착취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지는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드는 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에는 대부분 고통이 담겨 있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그 고통이 그냥 영화를 만들기 위한 서사의 재료로 소비하느냐, 혹은 다른 무엇과 함께 이야기하고 전달하려 하느냐 그 경계를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 예지는 자본을 가진 남편과 함께 살며 나름 독립하려 애를 쓰고 제작 지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남편의 절대적 자본의 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 저도 마찬가지다. 예술하고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 속에서도 남의 고통을 탐하거나 자기 것으로 착취하거나 하지 않고 진실로 정말로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며 "그게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실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계급 격차, 창작자의 윤리까지 이야기의 범위를 확장해 거장의 깊고 너른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일부 극장서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