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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말만 믿었나? 계약 변경 타당했나? [취재파일]

흔들리는 초대형 헬기 사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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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취재파일

<380억 주고 산 산불 헬기, 미군이 쓰던 중고 헬기였다? [취재파일]>

에서 다룬 것처럼, 애초 신품 헬기를 납품받기로 계약했다가, 군용 헬기 재제작품으로 계약을 변경하고, 그 이후 추가 계약에 이르기까지, 첫 계약부터 지금까지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산림청 산림항공본부는 미국 업체 콜롬비아 헬리콥터스 측의 말과 약속을 믿었던(혹은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생산된 적 없는 계획 수준의 기종, 그것도 군용 헬기를 민간용 산불 진화 헬기로 개조한 재제작품을 납품받는 데 따르는 위험 부담은 매우 컸습니다.

계약 변경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기체와 주요 부품 모두 100% 새 제품인 신품 헬기 → 군용 헬기를 산불 진화 목적에 맞게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한 재제작 헬기(계획)'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미국 업체 콜롬비아는 2025년 3월 28일(2022년 12월 첫 계약 당시 납품 기한인 2025년 12월 말을 9개월 앞둔 시점) 산림항공본부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계약 변경 요청을 공식화합니다. 해당 이메일에서 업체 측은 계약 변경 사유와 관련해 본인들의 귀책 사유를 인정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계약은) 비현실적인 제안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저희 의사결정 과정은 그 이후로 많이 발전 했는데, 초기 결정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회사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초기 제안은 경험이 부족한 한국의 에이전트가 주도했는데 이는 저희가 마주친 어려움에 더욱 더 기여했습니다. (중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희는 수십 년 동안 생산이 중단됐던 항공기를 새롭게 제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됐습니다."

- 2025년 3월 28일 미국 업체가 산림항공본부에 보낸 이메일 내용

부연 설명하면, 애초에 첫 계약으로 납품받기로 했던 '100% 새 제품인 신품 헬기' 역시 생산 중단됐던 헬기였는데, 이를 다시 새로 제작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이 사실을 첫 계약이 이뤄진 지 2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야 통보한 겁니다. 신품 헬기가 군용 재제작 헬기로 바뀔 경우 원래 납품받기로 했던 2025년 12월 말까지 납기일을 맞출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업체 측은 '일정 변경' 사안과 관련해 '일정 변경 사항 목록(검사, 배송, 재조립, 교육, 개조) 등은 추가 논의 필요'라는 한 줄로 적시하며 "계약 기간 안에 인도하면 산림청이 다가 올 2026년 봄 산불 기간에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나 부연 설명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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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종이 변경될 경우 반드시 따르게 되는 '인증 문제'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군용 헬기를 민간 산불 진화용 헬기로 다시 제작해 운용하려면 별도의 인증 절차를 미 연방항공청(FAA)과 대한민국 국토교통부에 모두 거쳐야 하는데, 계약 변경을 요청하면서 핵심 문제인 인증 절차에 대한 계획이나 현재 진행 상황 등이 빠져 있었던 겁니다. 전문가들은 항공기 인증 절차에 통상 수년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특히 오래전 군이 썼던 노후화된 헬기를 민간용으로 다시 제작해 띄우려면 안전성 검증이나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통상적인 사례보다 인증 과정이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쉽게 말하면, 인증받기 더 까다로워진 상황에서 9개월밖에 남지 않은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 장담하기 어려워진 건데, 산림항공본부는 이에 대한 점검이나 검증보다는 '기종 변경 계약의 법적 타당성'을 따지는 데 주력합니다.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끄려면 초대형 헬기가 반드시 필요한데, 계약을 취소하기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그렇다면, 계약 변경이 타당한지 더욱 꼼꼼하게 따져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선 산림항공본부는 업체 요청대로 기종을 바꿔서 계약하는 것이 국가계약법상 가능한지 2025년 4월부터 6월까지 2개월 동안 감사원과 당시 기획재정부에 사전 법률 검토를 받았습니다. 핵심인 인증 문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에는 사전 자문을 받으면서 '계약자 귀책 사유로 인한 계약 변경 불가하여 계약 이행이 불가할 경우 계약 해지를 추진해야 하는지' 문의해 놓고, 기재부에는 '제작사는 불가항력적 사유로 인한 신품 생산 불가로, 신품에서 재제작 헬기로 당초 규격 성능의 동등 이상으로 규격 변경 및 납품을 제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체도 인정한 귀책 사유를 불가항력적 사유로 바꿔서 사전 법률 검토를 받은 겁니다.

감사원과 기재부는 인증 절차 진행 상황이나 향후 계획, 전망 등은 알지 못한 채 법률적으로 계약 변경이 가능하다는 답을 산림항공본부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적·공익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재제작 헬기로 검사·검수하는 것이 타당하나, 국회·언론 등에서 질타가 있을 수 있으므로 공익적 가치 위주로 논리 보강(감사원)"하라거나 "계약 조건 변경 등에 따른 계약 금액 조정 여부 등은 별도로 검토해야 할 것이며 이 답변은 법률적 효력을 갖지 아니함을 알려드린다.(기재부)"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산림항공본부는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토대로 내부 회의를 거쳐, 2025년 7월 1일 외부 위원들이 포함된 심의위원회(내부 위원 7명, 외부 위원 5명)까지 개최합니다. "국가계약법, 경제성, 공익적 가치를 내부적으로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항공 전문가를 모셔서 고견을 듣고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자 한다(심의위원회 참석 당시 산림항공본부장 발언)"는 이유였습니다. 이 회의에서도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 안전성은 확보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해 필요한 인증 절차는 잘 마무리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외부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산림항공본부 담당자들의 답변은 '안전하고, 계획상으로 납품 기한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2026년 봄 산불 기간에 투입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특히 인증 전망에 대한 질문에는 "인증 계획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작사와 교류하고 있으며 계획 상으로 11월에 미 FAA 인증 후 12월 국내 TCV(Type Certificates Validation, 형식증명승인)를 받을 계획"이라는 업체 설명을 전달하며 구체적인 근거나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심의 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외부 위원은 SBS 취재진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업체가 인증을 받는 조건으로 (산림청이 계약 변경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자문위원들로서는 그런 부분이(인증 문제가) 걱정은 됐지만, 산림청도 그렇고 업체도 그렇고, 자기들 경험도 있고 인증받는 데 문제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 2025년 7월 1일 심의 위원회 참석했던 외부 위원의 SBS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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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위원회 이틀 뒤 산림항공본부는 <22년도 대형급 산림 헬기 도입 사업 계약 변경 검토 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신속한 산불 대응을 위해 대형 진화 헬기 도입이 시급하고, 법률 자문 검토 결과 신품에서 재제작 헬기로 변경 계약이 가능하며, 업체가 제시한 10% 낮춘 금액은 타당한 수준으로, 성능 역시 당초 제안 규격을 모두 충족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도 핵심인 인증과 관련해서는 '25년 내 미 FAA로부터 인증 획득 예정'이라는 전망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도입 시기와 관련해서는 "계약 변경 시 대형 산불 진화 헬기 조기 도입(26년 봄철 산불 조심 기간 임무 투입 가능) 통해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어 공익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적시했습니다.

이후 산림항공본부는 2025년 10월 10일, 업체의 요청대로 군용 재제작 헬기를 애초 계약금의 10% 낮아진 금액(USD 25.3M)으로 계약합니다. 납품 기한 역시 업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2027년 6월 말로 정하면서, 첫 계약 당시 납기일보다 1년 반 미뤄졌습니다. 업체 귀책 사유로 계약 물품도 바뀌었고, 납품 기한도 늦어진 건데, 납기일이 미뤄진 데 대한 지체상금은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산림항공본부는 "기존 납기일이 도래하기 전에 항공기 규격과 납품 기한을 변경한 것으로, (계약 변경) 당시에는 부과할 지체상금 자체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라는 입장이지만, "업체 귀책사유가 있는 상황에서 납기일도 1년 반이나 늦춰졌는데 지체상금을 받지 않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어떤 기준으로 1년 반이나 늦춰준 건지 (의문이고), 특혜 소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강두원 변호사, SBS 인터뷰)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체상금을 받지 않은 산림항공본부는 지난 봄철 산불 진화 공백을 막기 위해 업체와 별도의 계약을 통해 2026년과 2027년 봄철 산불 조심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업체 측의 대형 헬기 1대를 빌려서 쓰기로 했습니다. 업체 측 조종사와 정비 인력이 투입되고 유류비용만 산림항공본부가 제공하는 조건입니다. 올 가을 산불 기간 투입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업체 측과 추가 협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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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항공본부가 계약을 맺은 미국 업체 콜롬비아와 초대형 헬기 사업을 추진했던 다른 기관들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경상북도 소방본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신품 초대형 헬기 1대를 도입하려다가 업체 측의 기종 변경 요청을 받은 뒤 내부 검토 끝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핵심인 인증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납품 기한이 미뤄질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경북소방본부는 내부 보고서에 "인증을 받지 못하면 운항이 불가능하다"며 "미국에서는 군용 헬기를 제한형식증명 승인 후 긴급 헬기로 운용 가능하지만 국내에서 외국의 제한형식증명 헬기의 감항 증명 사례가 없다"고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산림항공본부는 업체의 계약 변경 요청 이후 이뤄진 감사원과 기재부에 대한 사전 법률 검토, 외부 위원들이 포함된 심의 위원회 개최, 그 이후 내부적인 검토 보고서까지, 이런 과정들을 모두 '계약 변경을 전제로 한 절차'로 진행했습니다. 즉, 군용 재제작 헬기로 기종 변경을 해서라도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방향으로 모든 절차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밀어붙인 계약 변경으로 1호기 정식 납품 기한은 2027년 6월 말로 늦어졌습니다. 이마저도 1년이 채 남지 않았는데, FAA의 인증 절차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SBS가 지난 6월 정보 공개를 청구해 8월에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FAA는 "대한민국 산림항공본부가 도입하려는 기종과 관련한 인증 접수를 받은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끝으로, 산림항공본부가 밝혀온 공식 입장을 남깁니다.

"대형 헬기의 국내 운항을 위해 국토교통부의 감항 증명을 취득해야 한다는 점을 계약 단계부터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계약 조건에는 제작사가 납품 전까지 국내 운항에 필요한 국토교통부의 표준감항증명 또는 특별감항증명 등 관련 인증을 모두 취득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현재 제작사는 미 FAA의 인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국내 감항증명 취득 절차를 추진하고 있으며, 산림청도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FAA, 제작사 등 관계기관·업체와 필요한 기술 자료와 인증 절차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습니다. 향후 제작사가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관계 법령과 계약 조건에 따른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 산림항공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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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성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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