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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올 가을 러브콜…김정은은 '하노이'를 넘을까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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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다양한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연이은 러브콜도 눈길을 끌었지만, 북미정상회동설에 본격적으로 불을 당긴 것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단독 보도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압박하고 있으며,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계기 등이 거론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 한미연합훈련, 을지프리덤실드 기간을 절반 가량 줄이는 것으로 처음으로 '말'이 아닌 '행동'의 유화책도 꺼냈습니다. 연합훈련 축소에는 동맹인 한국을 향한 불만이 깔려 있을 수 있지만, 어찌 됐든 북한이 관심있어 했던 카드가 던져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구상처럼 올 가을에는 북미정상 간 대면이 성사될까요.

주지하듯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까지 세 차례 만났습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2019년 2월 하노이 만남은 '정식회담'이었고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은 이벤트성 깜짝 만남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드라이브를 걸어 회담이 열린다면 결국 이 두 갈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식 회담의 전례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톱다운(Top-down) 방식을 취했던 트럼프 1기 때도 두 정상이 곧바로 담판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상이 협상을 주도하더라도 최소한의 의제 조율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위급·실무 접촉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싱가포르 회담 당시에는 트럼프가 회담 개최를 수용한 뒤 약 3개월의 줄다리기가 있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는 당시 국무장관 지명자가 CIA국장 신분으로 3월 말 부활절 주말에 첫 방북을 했고, 취임 후 다시 방북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회담했습니다. 한 차례 취소 위기를 넘긴 5월 말부터는 실무접촉이 본격화됐고, 김영철이 뉴욕에서 폼페이오를 만났습니다. 고위급 탐색전이 약 2개월, 집중적인 실무협상은 약 2주 간 이어진 셈입니다. 하노이 회담 역시 2018년 8월 김정은의 친서 제안 이후 9월 말 폼페이오-리용호 외무상 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5개월 전부터 고위급 조율을 거친 것으로, 이듬해 1월 하순 스웨덴 스톡홀름 접촉부터는 한 달가량 집중 실무협상이 이뤄졌습니다.

적어도 전례를 참고해 본다면 정식 회담의 경우 고위급 선에서는 3~5개월 전, 실무협상 선에서는 최소 2주에서 한 달 전에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월 APEC 정상회의 계기 회담을 목표로 한다면 이제 석 달이 좀 덜 남았습니다. 두 정상 간 친서 교환 등 물밑 소통이 축적되어 있었다면 시간을 번 셈인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수면 위로 움직임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양측의 협상 라인 공백이 해소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선 트럼프 1기 때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처럼 판을 전담할 인사가 마땅치 않고 국무부 조직도 축소됐습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1기 당시 관여했던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의 역할론이 나오지만 인적 공백을 완전히 메우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북한도 최선희 외무상이 전면에 나설지 불투명하고, 아무리 고위급 인사가 등판한다고 해도 전권이 위임되지 않는다는 한계는 구조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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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나리오는 2019년 6월 30일의 '판문점 방식'입니다. 트럼프가 방한 직전 SNS로 DMZ 깜짝 만남을 제안했고, 최선희 당시 외무성 제1부상이 5시간 만에 긍정적인 담화를 내놓으면서 불과 30여 시간 만에 만남은 전격 성사됐습니다. 정상회담 1주년 친서 교환이라는 사전 교감이 있었지만, 실무진이 의제를 조율할 틈도 없이 의전 준비만으로 벅찼던 파격적 이벤트였습니다. 북미 정상은 2~3주 내로 각자 실무협상팀을 구성해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실제 협상은 넉 달 만에 이뤄졌고 사실상 파행으로 종료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판문점 만남은 이벤트 수준에서 그쳤다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북미가 마주 앉더라도 양측이 뭔가를 제대로 협상하고자 한다면 상황은 매우 복잡합니다. 북한은 비핵화 자체를 거부한 채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고 있고, '적대시 정책 철회'의 범위 또한 명확히 선을 긋지 않고 있습니다. 한미훈련 중단과 제재 완화 또는 철회까지 한 바구니에 담아 요구한다면 단기간에 접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비핵화가 아니라 핵군축 협상으로 협상의 판 자체가 바뀔 거란 우려도 큰데, 실제 그렇게 옮겨간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논의할지 조율하는 것 자체가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될 겁니다. 요컨대 최소한의 의제를 갖춘 회담을 하려면 조만간 접촉이 가시화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남은 선택지는 이벤트성 회동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친분을 확인하고 대화 동력을 살리는 수준의 만남이라면 시간적 여유는 아직 상대적으로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북미 협상의 판은 만남 이후부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될 겁니다.

그런데, 하나 짚어볼 것은 어느 경우라도 만남 성사의 관건은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 여부라는 겁니다. 현재 북한이 대화에 나설 대외적 동인은 과거만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북중·북러 밀착 등으로 외교적 고립을 상당 부분 탈피했고, 대북제재의 실효성도 약화되었습니다. 2018~2019년처럼 북한이 협상장으로 나올 절박함이 덜하다는 뜻입니다. 북한은 과거 북미 양자 관계에만 관심을 쏟았지만 이제는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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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북한 내부의 심리적 요인, 즉 '하노이 노딜의 트라우마'도 북한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요소로 꼽힙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60시간 넘게 열차를 타고 간 최고지도자의 영도력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북한은 충격을 수습하기 위해 수 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넉 달 만에 이벤트성 만남이 성사된 것은 역설적으로 흠집난 최고지도자의 체면을 세울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판문점 회동 이후에도 단계적 후퇴를 선택했습니다. 트럼프에게 '연말 시한'을 제시했지만 끝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고, 결국 2020년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며 대외 노선을 사실상 봉쇄와 자력갱생으로 틀었습니다. 대화 국면에서 외부에 유연해진 주민들을 다잡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3법'(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잇따라 제정해 통제의 고삐를 죄었습니다.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른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즈음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초강력 봉쇄 조치가 이어졌는데, 북한 정권으로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하노이의 기억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해 10월 트럼프의 러브콜 당시 북한의 반응을 통해서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방한을 계기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북한은 공식 반응 대신 외교 사령탑인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벨라루스로 출장을 보냈습니다. 사실 대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대외적인 셈법만 따진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밑질 게 없는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정상 간 만남이 다시 성사되는 자체만으로도 미국 대통령부터 '사실상의 핵보유국 묵인'이라는 상징적 효과를 챙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일종의 핵보유국(nuclear power)'라고 까지 불렀지만, 그럼에도 북한은 끝내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정상회담이라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열었을 때 주민들에게 잊고 싶었던 '하노이 노딜의 기억'을 다시 환기시키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으로도 해석됩니다. 하노이 노딜 관련 심리적 저항선이 여전히 있고 이에 따라 '우회적 거부'를 택한 것으로도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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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지난해 공식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최근 트럼프의 발언 등에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연이틀 등판한 것은 차이점입니다. 김여정은 지난 19일 담화에서는 정상 간 소통설에 에둘러 선을 그으면서도 김정은-트럼프의 개인적 친분에는 여지를 뒀고, 20일에는 한국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며 통미봉남의 화법을 구사했습니다. 이것이 정상회담으로 직행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인지, 트럼프의 대북 러브콜을 일단 관리하겠다는 의도인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2019년 판문점 회동 성사 직전에는 최선희 외무상이 트럼프에게 공식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언급해 사실상 제안을 다시 해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낸 바 있습니다. 김여정의 담화는 명시적으로 그런 수준에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변수를 뚫고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만남의 방식에 따라 북한의 셈법은 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식 회담으로 간다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확실한 미국의 반대급부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반면 이벤트성 회동으로 간다면, 하노이의 학습효과가 있는 만큼 대내 선전 수위를 조절하며 혹시 모를 충격을 분산할 것입니다. 향후 한국의 역할 공간도 시나리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의제를 갖춘 정식 협상이라면 실무 조율 단계에서 그나마 최소한 움직일 공간이 있겠지만, 전격적인 이벤트성 만남으로 직행할 경우 DMZ라는 장소적 요소마저 배제된다면 한국이 관여할 틈은 거의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냉정히 말해, 회담의 방식과 북한의 반응 수준 등 아직까지는 건너야 할 단계가 많습니다. 북미정상회담 또는 회동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되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며 시나리오별로 우리의 대응 방안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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