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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부역전마라톤, 부활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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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1955년 11월 14일. 총성과 함께 부산을 출발한 건각들이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앞 사람을 추월하는 역전(逆轉)이 아닌, 역(驛)과 역을 이어 국토를 종단하는 '경부 역전(驛傳) 마라톤'은 통일의 염원을 안고 첫 발을 내디뎠다. 황폐해진 국토를 달리느라 운동화는 금세 해졌지만 선수들은 자동차 타이어를 덧대 기어코 완주해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던 최윤칠 등이 산파 역할을 했던 이 대회는 한국 마라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매년 임진각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고 애국가를 부르며 묵은 해를 마무리했고, 신의주까지 달리는 날을 꿈꾸며 다음을 기약했다.

60년 넘게 이어지던 '이어달리기'는 2016년을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교통량이 크게 늘면서 완벽한 통제로 선수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고, 엘리트 선수층이 무너져 팀당 10명이 넘는 주자를 확보하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황영조와 이봉주 등 이 대회를 통해 성장한 '전설'들이 "경부역전마라톤 부활 없이, 한국 마라톤 부활도 없다"며 목소리를 냈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아마추어 대회와는 대조적으로 100명 남짓 출전하는 엘리트 대회 개최엔 선뜻 나서는 후원사가 없었다.

마지막 대회가 열린 지 꼭 10년이 되는 올해. 러닝크리에이터 '262WAVE'가 경부역전마라톤을 재연했다. 상기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엄선한 주자 6명이 무박 2일로, 멈추지 않고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뛰고 또 뛰었다. 때론 길을 잃고, 수면 부족, 체력 고갈 등과 사투를 벌이며 543km를 35시간 17분에 완주했다. 262wave의 김용수 PD는 "도전을 기획하며 문화 유산으로서 경부역전마라톤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고, 주자로 뛴 스톤(원형석)은 "수준급 아마추어가 함께 뛰는 형식이라면 선수 부족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활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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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하고 식을 줄 알았던 '러닝붐'은 여전히 뜨거운데, 우리 엘리트 마라톤은 끝 모를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지난 봄 런던에서 인류 한계로 여겨지던 2시간 벽이 깨졌지만, 국내에선 이봉주의 한국 기록(2시간 7분 20초)이 26년 넘게 꿈쩍하지 않고 있다. 경부역전마라톤의 마지막 MVP이자, 현재 경기도청 코치인 김영진은 스포츠머그 '월간달리기'에 출연해 "현역 시절 더 잘 뛰어서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면서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이 있으니 비판만큼 응원도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밤낮없이 이어달렸다! '좌충우돌' 부산→임진각 543km 마라톤 완주기

2026년, 2시간 20분 안에 풀코스를 완주한 선수가 국내엔 14명, 일본엔 187명이다. 일본 육상은 하코네 에키덴(역전), 대학생 선수들의 구간달리기로 한 해 시작을 알린다. 올해 102회 대회를 TV로 시청한 사람은 56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상당하다. 흔히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구간달리기는 그 안에서 동료와 협동심 및 단결심을 키우는 단체전이다. 일본 사회는 하코네 에키덴을 '공동체'와 '연결'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스포츠 교육의 정석으로 꼽는다. 경부역전마라톤을 재연한 6명의 주자 역시 "내가 처지는 순간 동료들의 부담은 커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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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찬 기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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