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 만국공법에 따라 사로잡은 포로를 마음대로 처형할 순 없소 (탕 탕) 이창섭 야만이야. 만국공법 천 마디가 대포 한 발에 진다 했다.]
안중근 의사는 이 만국공법의 신념을 '동양평화론'으로 발전시켰고, 순국 직전 다시 한번 글로 남겼습니다.
만국공법 불여 대포, 만국공법이 대포만 못한 현실을 개탄한 것입니다.
[허민/국가유산청장 : 우리 안중근 의사께서는 아시다시피 1909년 10월 26일 날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후에 대한의군의 참모 중 장 자격으로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지 않습니까? 그 요 구된 재판을 단순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안 의사의 이러한 현실 인식이 담긴 유묵이 순국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공개됐습니다.
유묵의 왼쪽 하단에는 손바닥에 먹을 묻혀 찍은 손도장이 선명하고, 경술년 즉, 1910년 3월에 '대한국인' 안중근이 썼다고 적혀있습니다.
[장지훈/경기대학교 교수(서예전공) : 글씨가 굉장히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또 직선적인 부분도 있지만 또 원적인 곡선적인 부분도 많이 담겨 있어서 완성도가 굉장히 높은 작품에 해당된다 라고 보여집니다.]
뒷면에 묵서가 남아 있는 게 특징인데, 뤼순감옥의 형무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첫 소장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직전 소장자는 이 유묵을 경매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해 5월 유묵의 존재를 확인한 뒤 11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국가유산정이 환수에 성공했습니다.
안 의사는 하얼빈 의거 이후 뤼순의 일본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여러 글씨를 남겼습니다.
이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것만 31점입니다.
(취재 : 이주상, 영상편집 : 박나영, VJ : 오세관, 영상제공 : CJENM,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