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입니다. 오늘(12일)은 가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유럽은 지금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습니다. 여기 파리도 제대로 된 비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당장 쓸 물이 부족해서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에 필요한 냉각수가 없어서 발전소가 멈췄습니다. 그래서 유럽은 전기를 아낀다고 밤에 길거리 조명을 끄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진데 여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지난주에 한번 나가봤습니다.
1. 옥수수밭이 '쩍쩍', "다 타버렸다"
지금 보시는 건 프랑스 중부에 있는 옥수수밭입니다. 여긴 밀농사가 끝나고 지금 옥수수 농사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밭이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가 쑥쑥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옥수수가 알맹이가 제대로 맺힐 리가 없습니다. 달린 것도 몇 개 없는데 그것도 대부분 말라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올해 옥수수 수확량이 사상 최저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소를 키우는 농민도 만났습니다. 여기도 심각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저 밭이 원래 소가 먹는 풀밭이었습니다. 방목하던 초원인데 가뭄 때문에 풀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농민은 다 타버렸다고 표현을 했는데, 아예 먹을 거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료를 먹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겨울용 사료라는 겁니다. 겨울엔 춥고 풀이 없어서 실내에서 사료를 먹이는데 그걸 지금 미리 당겨서 먹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가뭄이 계속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소 축사 바닥재로 쓸려고 비축해둔 짚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소 침대, 이불로 마련해 둔 걸 먹이로 쓴다는 겁니다.
[필립/프랑스 축산농민 : 거의 프랑스 축산농가의 70~80%가 목초지에서 풀이 사라지면서 사료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에요. 겨울에 줄 건초를 당겨쓰고 있어서 재고도 부족한 상황이에요.]
그나마 이 농가는 준비를 잘 해둔 편이라 사료로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7,80% 축사가 사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게 물이 부족해서입니다.
2. "이런 적 처음" 강 43%가 말라버렸다
그래서 루아르란 강을 가봤습니다. 루아르강은 프랑스에서 가장 길이가 긴 강입니다. 여긴 다른 유럽 강처럼 둑을 쌓아서 운하로 쓰지 않고 댐이 없는 자연하천입니다 그래서 가뭄 영향이 바로바로 나타납니다. 아직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수량이 한 달 만에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고요. 강을 오가던 유람선도 멈춰버린 상태였습니다. 유람선 운영하는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원래 8월엔 수량이 줄어서 유람선 운영이 어렵긴 한데 올해는 한 달 가까이 먼저 멈춰버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뭄이 빨리 심하게 찾아온 겁니다. 그리고 그 사장님은 수위가 이렇게 낮아진 건 처음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드니 헝보/유람선 운영자 : 사실 올해는 정말 유람선 운항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에요. 이런 가뭄은 정말 기록적입니다.]
원래는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세서 수영이 금지된 곳도 가봤습니다. 제가 한참을 걸어 들어갔는데도 물이 무릎 아래에 있었습니다. 프랑스에는 강이 3천 개 좀 넘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천3백 개가 넘는 강이 물이 완전히 말랐거나 물길이 끊어져 버린 상태입니다. 이걸 건천화 됐다고 하는데 43%의 강이 건천이 됐다고 프랑스 정부는 발표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비상이 걸렸습니다. 프랑스는 물이 부족할 때 물 관리를 3단계로 나눠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위험 단계가 위기 단계인데 위기 단계로 지정이 되면 물 사용이 크게 제한됩니다. 식수와 위생, 의료용 등 아주 필수적인 물만 제외하고 농업용수까지도 사용이 제한됩니다. 프랑스는 우리 도하고 비슷한 단위가 영어로는 디파트먼트(Department), 여기 말로는 데파흐트멍(Département)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데파흐트멍(Département)이 프랑스 본토에 96개가 있습니다. 그 96개 중에 67개 데파흐트멍이 위기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데파흐트멍 전체가 다 지정된 건 아니고요. 이 도 안에서 어딘가가 위기 경보를 받은 게 67개가 된다는 겁니다. 그만큼 프랑스도 가뭄이 전역에 심각하게 퍼져 있다는 겁니다.
3. "내 집에 금이…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게 또 그냥 물부족으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프랑스 중부지역 한 마을을 가봤더니 이 지자체에서는 주민 신고를 접수하고 있었는데요. 그 내용이 가뭄으로 인한 집 건물 균열 신고였습니다.
[오로르 카로/멍쉬르루아르 시장 : 지금 저희 주민들은 매우 격앙된 상태입니다. '내 집이 지금 금이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문의 메일이 저희 시청으로 쏟아지고 있어요.]
그게 가뭄하고 무슨 상관이냐 했더니, 강 주변, 늪지대 같은 데를 메워서 도시를 만든 곳에서는 지반이 암반이 아니라 진흙 같은 곳이어서 땅속이 심각한 가뭄으로 그 아래까지 메말라 버려서 땅이 수축이 돼 버렸다는 겁니다. 그게 집 균열까지 이어졌는데 그 마을은 시청 건물까지 심각하게 갈라져서 시청이 정부에 재난지역을 신청하고 있었습니다.
4. 원전 멈추고 야경도 사라졌다
그런데 이 가뭄 영향 중에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가 전력난입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이 문제인데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원전 냉각수로 강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4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강물이 데워진 것도 문제입니다. 냉각수 자체도 없지만 그나마 있는 물까지도 냉각 기능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 프랑스는 원전 두 곳을 가동 중단했습니다. 출력을 낮춘 곳도 꽤 있습니다. 지금 원전에서 생산을 줄인 전력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점점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프랑스는 원전이 스무 곳에 예순 개 가까이 있어서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뉴브강 물을 쓰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은 훨씬 심각합니다. 헝가리는 나라 안에 원전 4기가 있는데요. 국가 전력 생산량의 절반을 넘게 차지합니다. 그 원전 4개 중에 3개는 이미 중단됐습니다. 나머지 한 개는 겨우겨우 출력을 낮춰서 유지는 하고 있습니다. 이웃한 루마니아는 더 심각합니다. 원전 2기 중에 1기는 완전히 셧다운, 나머지 1기는 셧다운 직전입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원전으로 가는 물이 부족해서 원전 가는 물길을 터준다고 수중 폭파까지 했습니다. 물속에 있는 암반이 평소엔 문제가 없었는데 수량이 확 줄어드니까 그 암반이 댐처럼 물길을 막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폭약 180kg이나 동원해서 깨버렸습니다. 이렇게 발전소를 제대로 못 돌리니까 공공시설 전기부터 줄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상징과 같은 야경이 사라졌습니다. 루마니아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필수 조명을 빼고 다 껐습니다. 영국도 잉글랜드 지역은 절반이 가뭄 상태입니다. 올여름 강수량이 평년의 7%에 불과합니다. 당장 전력 제한 조치는 없지만 영국은 네덜란드 등으로 보내던 전력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문제는 사상 최악이라고 평가되는 올해 유럽의 폭염과 가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번 주 프랑스는 또 폭염이 몰려옵니다. 지금까지 폭염과 가뭄으로
유럽연합의 올해 GDP가 1%, 약 295조 원이 감소할 거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가뜩이나 돈을 쓸 데는 많지만 돈이 들어올 데는 줄어들고 있는 유럽입니다. 이런 유럽에 설상가상으로 날씨까지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취재 : 권영인,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김시내, 영상편집 : 나홍희, 디자인 : 이수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