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 드러낸 라인강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쾰른 시내 라인강의 소규모 선착장 라이나우하펜에는 레저용 보트 수십 척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보트들은 강물이 거의 빠져 훤히 드러난 모래톱에 선체 바닥을 댄 채 난파선처럼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은 신기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지금 여기 수심이 깊어 봐야 30㎝예요. 저쪽은 이미 바닥이 드러났고요. 보트들이 저렇게 꼼짝 못한 지 4주 됐네요. "
이곳에서 보트클럽 KAMC를 운영하는 슈테판은 강물이 줄어 보트가 나가지 못한 게 역대급 가뭄이 찾아왔던 2018년 10월 이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통 9월이나 10월에 수위가 제일 낮다. 올해는 아직 8월인데 벌써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파스칼은 선착장 한쪽 벽에 있는 수위 표시를 가리키며 강물이 평소보다 2m 넘게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4주째 수리, 정비만 하고 있다. 손님도 없고 돈도 안 들어오지만 일은 해야 한다"며 웃었습니다.
슈테판은 "경험 많은 사람들도 보트를 몰고 나가려다가 펄에 갇혔다"며 "어차피 지금 운행해봐야 강바닥에 모인 쓰레기들이 엔진에 빨려 들어가 고장 나니까 그냥 두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독일을 넘어 유럽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라인강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 지난 5월 일찌감치 폭염이 시작한 데다 비도 유독 적게 내리는 건조한 여름이 이어져서입니다.
물이 빠져나간 강변은 강바닥에 깔려 있던 자갈이며 쓰레기들이 모습을 드러낸 탓에 황무지 같아 보였습니다.
쾰른시 당국은 봄부터 적은 강수량으로 가뭄 조짐이 보이자 지난 6월 라인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 하천 24곳에서 취수를 금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1816년부터 라인강 수위를 쟀다는 쾰른 수위 관측탑은 0과 1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 관측소의 역대 평균 수위는 3m 정도입니다.
평소보다 강물이 2m 넘게 빠졌다는 뜻입니다.
이날 오후 측정된 공식 수위는 70㎝로 그나마 하루 전보다는 2㎝ 올랐습니다.
이 지점 수위는 지난 1일 67㎝까지 떨어져 2018년 10월 측정된 종전 최저 기록 69㎝를 깼습니다.
139㎝ 아래로 내려가면 대형 선박 항해가 어려워 화물을 줄이거나 더 작은 배를 띄워야 합니다.
독일 연방하천관리청은 이번 주말 이곳 수위가 또 67㎝를 찍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관측탑 주변에 모여 있는 유람선 선착장들은 한산했습니다.
선체 길이가 100m를 넘어 보이는 대형 여객선 한 척은 승객을 태우지 않은 채 종일 정박해 있었습니다.
매표소 앞에서 운항 시간표를 확인한 뒤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들도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왔다는 마리우는 "더위를 피하러 와서 배도 타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맞는다"고 했습니다.
라인강 유역 최대 유람선업체 KD는 안전 문제로 대형 선박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많아야 100여 명이 탈 수 있는 소형 유람선은 다니고 있습니다.
KD는 선착장보다 한참 낮아진 수위 때문에 승하선 연결로 경사가 급하다며 승객들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다른 업체 매표소에서 일하는 마르코는 "우리 회사는 작은 여객선만 운항해 아직 괜찮다. 대형 선박을 운항하는 KD는 피해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생이라는 그는 "수위가 지금의 세 배는 돼야 한다. 보다시피 화물선 운항도 많이 줄었다. (상류 쪽) 본이나 코블렌츠 같은 곳은 여기보다 상황이 더 나빠 화물선이 못 다닌다고 한다"고 걱정했습니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시작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1천233㎞를 흐르는 라인강은 독일 서부 공업지대에 석유제품과 철광석, 곡물 등 원자재를 실어 나릅니다.
철강업체 티센크루프와 화학업체 BASF 등 독일 제조업을 상징하는 업체들이 강을 따라 들어서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을 일궜습니다.
평소 강을 따라 쾰른을 오가는 화물선은 하루 400척 정도입니다.
그러나 독일 내륙 수운의 약 80%를 담당하는 물류 동맥이 가뭄으로 막히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독일 경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여름철 크루즈를 중심으로 관광업 비중이 큰 강변마을 경기에 미칠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독일 싱크탱크들은 이번 가뭄이 경제성장률을 0.1%포인트에서 많게는 0.4%포인트까지 깎아 먹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당초 기대한 0.5% 안팎 성장 전망마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라인강을 통해 로테르담에서 뒤스부르크 공장으로 원자재를 공급받는 티센크루프는 지난달 쇳물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독일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라인강 인근 지역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리터당 최대 11센트(181원) 비쌌습니다.
베렌베르크은행은 독일 소비자물가가 일시적으로 0.5%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