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5일(현지시간)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자료사진)
기록적인 폭염이 덮친 북아프리카 튀니지가 순환 정전에 들어가자 대규모 항의 시위가 분출되는 등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중해에 접한 튀니지는 최근 기온이 섭씨 45도를 웃도는 이례적인 폭염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노후화된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렸고, 국영 전력회사는 순환 정전을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단수까지 함께 벌어졌습니다.
최근 튀니지 곳곳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청년 시위대는 도로를 봉쇄하고 타이어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 권한 강화에 나선 지 꼬박 5년을 채운 지난달 25일에는 수도 튀니스에서 수천 명이 참가한 반정부 집회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사이에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감옥과 물가 상승만 있다"고 외쳤습니다.
사이에드 대통령을 향한 이같은 실망감 표출은 5년 전 그의 권력 집중 조치를 환영했던 분위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FT는 평가했습니다.
당시 그는 부패 척결과 국정 혼란 종식을 명분으로 내세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조치를 단행했음에도 많은 국민이 이를 지지했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의 발원지인 튀니지는 중동·북아프리카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1년 초 23년간 집권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당시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정치 혼란과 경제 침체가 있었지만, 2019년 대선에서 법학 교수 출신 사이에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혼란을 끝낼 '구원자'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척결을 명분 삼아 2021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입법부, 사법부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킨 뒤 이듬해 개헌으로 대통령에게 국가권력을 집중시켰습니다.
특히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과 행정부 수반 임명권뿐 아니라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을 부여한 데다가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이 의회의 신임 투표도 거치지 않도록 해 일각에서는 쿠데타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비판 세력과 야권 인사 수십명이 장기 복역형으로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2024년 대선에서 90.7%의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당시 투표율은 28.8%로 아랍의 봄 이후 치른 대선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누적된 경제난과 공공서비스 붕괴에 대한 불만이 정전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경제성장률 등 전반적 경제 지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37%를 웃도는 청년 실업률과 식료품을 중심으로 높은 물가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싱크탱크 타흐리르 중동정책연구소의 사하르 메크메크 팀장은 "국민들은 삶이 후퇴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전기와 물 공급 중단은 현대 튀니지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전의 배경에 사보타주(고의 파괴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전력·수도 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투자 부족과 재정난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