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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오디세이', 놀란이 재해석한 고전…영웅 아닌 인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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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영웅담은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얼개를 가지고 있다. 출발-입문-시련-귀환-각성-성장으로 이어지는 영웅 서사에는 반드시 시련과 역경이 있으며 각성과 성장이 동반된다. 이 구조는 오늘날 전 세계 영화 팬을 열광케 한 히어로 무비의 골격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영웅 서사의 원형과 같은 작품이다. 총 24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오디세우스가 등장하는 건 5권부터다.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1권~4권)로 먼저 연 뒤 오디세우스의 모험담(5권~12권)을 펼친다.

놀란은 오디세우스가 없는 혼돈의 이타카로 시작해 오디세우스가 귀환한 이타카로 앞 뒤를 맞추는 수미쌍관 구조를 짰다. 이 사이를 채우는 건 전쟁의 기억을 담은 오디세우스의 플래시백과 모험으로 점철된 귀환의 여정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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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은 놀란의 영화 세계를 대표하는 테마다. '오디세이'에서도 인물의 시점으로 시간을 나누고, 기억을 섞어 오디세우스의 고단한 퇴근길과 텔레마코스와 페넬로페의 지난한 기다림을 교차로 스크린에 펼쳐낸다. 전쟁이 끝났지만 집에 못 가는 오디세우스, 남편을 기다리다 벼랑 끝에 몰린 페넬로페,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텔레마코스가 끝내 한 공간에 모이는 구조다.

유구한 고전은 크리스토퍼 놀란스럽게 재해석되고 재조립됐다. 오디세우스의 고단한 귀향길은 '인터스텔라'와 '덩케르크'가 떠오르고 속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은 '오펜하이머'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 작전이라는 지략을 펼쳐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지만 오만과 판단 착오로 인해 신들의 분노 사고 이로 인해 고향에서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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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타카에는 왕비인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한 남정네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이들은 구혼을 핑계로 이타카를 점령하며 재산을 축내고 있지만 페넬로페는 '제우스의 법'(낯선 타인을 따뜻하게 존중하고 대접하라는 고대 규범)으로 인해 이들을 내쫓지 못한다. 참다못한 텔레마코스는 어릴 때 헤어져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게 위한 길을 나선다.

'오펜하이머'로 염원하던 아카데미를 품은 크리스토퍼 논란이 차기작으로 '오디세이'를 선택한 건 다소 의외로 여겨졌다. 그는 왜 이 해묵은 영웅담을 스크린에게 소환하고자 했을까. IMAX 필름 카메라로 구현한 172분의 장대한 서사시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며,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한 폭력적인 수단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헬레네 왕비는 그럴듯한 명분이었을 뿐 이 전쟁의 바탕엔 부유한 도시국가를 향한 그리스의 야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욕망의 충돌이 남긴 거대한 희생과 깊은 상처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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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은 '오디세이아'라는 고전을 재해석하고 해체해 자신만의 서사를 써 내려갔다. 놀란의 '오디세이'에서는 신이 아닌 인간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전쟁의 환희가 아닌 상흔을 표현하는데 몰두한다. 전작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를 세계 대전을 종식시킨 영웅이 아닌 파괴의 신으로 그리며 그의 죄의식을 파고든 것과 비슷한 결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그는 매일 악몽을 꾸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놀란은 오디세우스를 불세출의 영웅이나 지략가로 묘사하지 않고 PTSD를 앓고 있는 패잔병처럼 그린다. 기억을 잃고 칼립소의 섬에 머물 때에는 분절된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이며 '나는 누구인가'로 고뇌한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분노를 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싸웠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떠돈다. 이처럼 놀란은 고전 속 영웅을 깨부수고 해체해 불완전하고 한없이 연약한 인간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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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신의 대한 묘사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병사들이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에게 잡아먹히고, 마녀 키르케가 인간들을 돼지로 만든 모험담 등은 사실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며 공포 영화의 텐션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시작부터 "마법이 존재하던 시대"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그러나 놀란은 신의 존재와 전지전능함을 시각적 스펙터클로 구현하기보다는 에너지와 분위기로 느끼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들 폴리페모스를 죽인 오디세우스에 대한 포세이돈의 분노는 바다의 거센 풍량으로, 오디세우스의 기억을 빼앗고 7년간 섬에 잡아둔 바다의 여신 칼립소의 마법을 로투스라는 열매로 표현한다.

단, 지혜의 여신 아테나만큼은 시각화했다. 젠데이아가 연기하는 아테나는 오디세우스 곁을 맴돌며 그가 하는 선택과 그가 느끼는 죄책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위로하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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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온 후반부 펼쳐지는 '증명의 시간'도 흥미진진하다. 얼굴을 가린 채 이타카에 잠입한 오디세우스는 무임 승차하듯 왕좌에 앉으려 하지 않고, 권력의 공백과 권위의 추락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매 작품마다 액션신 연출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온 놀란 감독이지만, 이 시퀀스에서의 투박한 액션은 오디세우스의 처한 역경의 처절함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돼지치기 에우마이우스와 충견 아르고스와 조우하는 장면은 뭉클함까지 선사한다.

오디세우스를 연기한 맷 데이먼과 페넬로페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는 관록의 연기로 영화 내내 감정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특히 해서웨이는 페넬로페를 인내와 끈기를 갖춘 여성을 넘어 주체적이고 강단 넘치는 인물로 묘사하며 캐릭터를 재해석하다시피 했다.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와 아테나 역을 맡은 젠데이아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선 대체불가의 연기를 펼쳤지만, 이 장엄한 시대극에선 다소 가볍게 느껴진다. 특히 지혜의 여신으로 분한 젠데이아는 하나의 표정으로 일관해 역의 상징성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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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캐스팅 논란은 영화를 보고 나면 희석된다. 원작 파괴라며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흑인 헬레네'는 미미한 비중과 활약으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왜 루피타 뇽오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명분은 '다양성'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물론 원작 자체가 신화를 기반으로 하기에 고증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적잖고, 일부 동의하는 바다.

루피타 뇽오와 함께 '미스 캐스팅' 논란을 일으킨 엘리엇 페이지는 우려와 달리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와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스 병사 시논 역을 맡아 트로이의 목마 전략에서 큰 역할을 한다. 시논은 오디세우스의 죄책감을 의미하는 상징인 동시에 안티노오스의 저열함의 증거로 기능한다. 이른바 '전우의 망령'이라 칭할 수 있는 장엄한 시퀀스에서 엘리엇 페이즈는 강렬한 연기로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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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무용담, 문학 속 영웅담은 과장으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놀란은 CG와 특수효과로 대서사시를 시각화하지 않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해 내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모로코, 그리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를 돌며 고대 그리스의 풍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의 경우 CG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6m 크기의 실물 거인 퍼펫을 만들어 구동했다. 트로이의 목마와 오디세우스의 함선도 모두 실제 크기로 제작해 해변과 바다에 띄웠다.

'오디세이'는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분량을 아이맥스 70㎜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다만 국내에는 아이맥스 70㎜ 필름 영사 시설을 갖춘 극장이 없어 디지털 변환 버전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 일반 디지털 아이맥스는 1.90대 1 화면비를 제공하지만 용산 CGV 아이맥스관은 '오디세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1.43대 1의 화면비를 지원한다. 현재로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의도한 대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상영관이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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