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인트로
00:14 "볼펜도 핸드백도 완판"…한때 지지율 71% 다카이치 신드롬
01:02 한 달 새 12%p 뚝…지지율 둑 무너뜨린 '황실전범'
01:58 "생판 남이라도 남자 왕"…분노 부른 '아이코 배제'
03:12 "아소 가문에서 왕이 나온다?"…강행 처리 뒤의 입김
04:48 "시장이 출산휴가 갑니다"…헌정 사상 첫 실험
07:07 "한국은 규정조차 없다"…젠더 격차 101위의 자화상
도쿄입니다. 오늘은 요즘 일본에서 진검 승부를 벌이고 있는 세 명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일본은 선진국이지만 성 역할에 있어서는 여전히 격차가 큰 나라입니다. 특히 정치로 가면 더 그렇습니다.
1. "볼펜도 핸드백도 완판"…지지율 71% 다카이치 신드롬
여기에 균열을 내고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첫 여성 총재가 됐고요, 다음 달에 일본이 내각제를 시작한 이후 140년 만에 첫 여성 총리가 됐습니다. 첫 여성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기대는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총리 취임 직후 지지율은 71%로, 2000년 이후 4번째로 높은 총리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가 쓴 볼펜이 불티나게 팔리고, 출근할 때 들었던 핸드백도 동이 났습니다. 한국에도 우호적인 태도로 접근하면서 강성 보수 이미지를 불식시켰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
"한국 김 너무 좋아하고요. 한국 화장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도 보고 있고요."
2. 한 달 새 12%p 뚝…지지율 둑 무너뜨린 '황실전범'
취임 이후 줄곧 지지율 6, 70%를 유지하며 식을 줄 모르던 다카이치의 인기가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일본 의회에서 황실전범 개정안이 처리된 직후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이 급락한 겁니다. 지난 20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한 달 전보다 10%p 떨어졌고, 그 일주일 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도 12%p나 하락했습니다. 한 달 만에 내각 지지율이 10%p 이상 떨어진 건 2022년 기시다 내각 당시 통일교 관련 의혹이 불거졌던 이후 처음입니다. 요미우리는 지지율 급락 이유에 대해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는 황실전범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황실전범은 일본 왕위 계승과 왕실 구성을 정한 법입니다. 민생과는 큰 관계가 없죠. 그런데 왜 민심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요.
3. "생판 남이라도 남자 왕"…분노 부른 '아이코 배제'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한마디로 왕위 승계권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왕족 16명 중 일왕 승계가 가능한 남성은 3명인데, 사실상 승계가 가능한 젊은 남성은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인 히사히토 친왕 한 명뿐입니다. 왕위는 부계 남성만 승계할 수 있는 원칙 때문에 만일 히사히토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후계가 끊기게 됩니다. 해결책은 두 가지였습니다.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 등 여성도 왕이 될 수 있게 하거나, 2차 대전 직후 왕실 축소로 배제된 옛 왕족 중 남성을 양자로 들이는 겁니다. 여론은 '여성도 왕이 될 수 있게 하자'였지만, 정부 여당은 옛 왕족 남성 입양을 택했습니다. 소탈한 이미지로 인기가 많은 아이코 공주에게 승계권을 주는 대신, 나루히토 일왕의 36촌에서 38촌, 그러니까 사실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인 남성을 양자로 들여 기필코 남자 왕을 세워야겠다고 한 정부 여당에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여성 일왕'에 대한 지지는 73%에서 85%로 한 달 만에 10%p 이상 올랐습니다. 내각 지지율이 내려간 딱 그만큼 여성 일왕에 대한 찬성 여론이 올라간 겁니다.
4. "아소 가문에서 왕이 나온다?"…강행 처리 뒤의 입김
특히 국민들이 더 분노한 건 이번 강행 처리에 아소 다로 전 총리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아소 전 총리의 여동생은 노부코 왕비로 지난 1980년 결혼을 통해 왕족이 됐는데요, 현재 왕족 중 고령자와 미혼을 빼면 양자를 입적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실제로 노부코 왕비가 옛 왕족 남성을 입양하고 그 양자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들은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루히토 가문이 아닌, 아소 가문에서 왕이 나올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당내 기반이 약한 다카이치가, 자민당 내 유일한 파벌을 이끌고 있고 자신을 총리 자리에 올려놓은 아소의 요구를 거절하긴 힘들었을 거란 추정도 나옵니다. 아무튼 정치권의 유리 장벽을 뚫고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된 다카이치가 '여왕'은 절대 안 된다는 자민당 강성 보수의 손을 들어주는 아이러니한 장면, 직접 설전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다카이치 총리와 아이코 공주와의 대결 구도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 27일 의회에서 여성 일왕을 포함해 왕실 승계 방안을 논의할 자문회의 설치 요구가 나왔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당장 그럴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황실전범 개정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지지율의 둑이 한 번 무너진 만큼, 정권이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한다면 정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만일 다수 국민들의 목소리가 보수 우익 세력을 넘어서고 이를 통해 '여성 일왕' 가능성이 열린다면, 그 의미는 단순히 왕실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겁니다.
5. "시장이 출산휴가 갑니다"…헌정 사상 첫 실험
한 지방 도시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교토부 야와타시의 가와타 쇼코 시장 이야기입니다. 30대인 가와타 시장은 지난 20일 출산휴가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가는 출산 휴가이지만 일본 지자체장 중 헌정 사상 처음이어서 전국적인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가와타 시장은 3년 전 33살의 나이에 전국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됐을 때 이미 화제가 됐었습니다. 취임 이후에도 보육 환경 개선과 인구 문제 해결을 핵심 과제로 추진해왔는데요, 지난 5월 임신 소식을 알리면서 출산 예정일인 9월 전후로 넉 달간 출산 휴가를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가와타 쇼코/야와타 시장
"임신 사실을 안 건 올해 들어서고요, 출산휴가를 갈 예정입니다."
시장에 대해선 출산휴가와 관련한 아무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야와타시 직원들과 같은 16주 휴가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휴가 기간에는 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으로 시정을 이끌고, 가와타 시장은 시 공무원들과 전화와 화상회의를 통해 소통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방안을 마련했지만 선출직 공무원의 출산 휴가라는 점에서 응원과 동시에 무책임하다, 사퇴하라는 비난도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가와타 시장의 생각은 명확했습니다. 만일 리더십을 가진 직위라고 해서 출산휴가를 금지한다면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연령대 여성을 고위직에서 배제하자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가와타 쇼코/야와타 시장
"리더십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녀를 갖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지속되고 그로 인한 경제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산휴가 규정조차 없는 건 선출직 여성 공직자가 극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여성 지자체장은 광역단체의 4.3%, 기초단체의 3.7%에 불과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와타 시장처럼 임신할 수 있는 젊은 연령대는 더욱 적을 겁니다. 가와타 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번 일을 통해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육아, 출산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6. "한국은 규정조차 없다"…젠더 격차 101위의 자화상
가와타 시장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처음엔 일본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국도 선출직 공무원의 출산휴가 규정이 없는 겁니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지난해 국회의원의 경우 출산휴가 규정이 도입되기라도 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20대, 21대 국회에서 의원직의 출산휴가를 도입하는 법안이 발의는 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습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북유럽과 뉴질랜드 등은 선출직 공무원의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젠더격차지수에서 한국은 148개국 중 101위, 일본은 118위를 기록했습니다. 남녀 불문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는 얼마나 절박한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취재 : 문준모, 구성 : 김수형, 촬영 : 한철민 문현진, 영상편집 : 홍진영, 디자인 : 이수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