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이브닝 브리핑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성패의 관건 [이브닝 브리핑]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현실과 유리된 개혁의 말로

11세기 중국을 지배하던 송나라(북송)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거란, 서하 등 북방 세력의 위협으로 막대한 국방비 지출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대지주의 토지겸병, 특권 사대부의 기득권 강화, 고리대금의 횡행으로 자작농 계층이 허물어지면서 세수는 갈수록 줄고 국가 재정 기반은 약화됐습니다. 구체제로는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개혁이 절실했습니다. 이때 개혁 정치가인 왕안석이 신법(新法)을 들고 나왔습니다.

신법은 부국강병을 기치로 내세워 대지주·대상인의 수탈 방지와 민생 안정, 특히 자작농 보호를 목표로 했습니다. 춘궁기에 국가가 저리로 농민들에게 곡식, 자금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도록 한 청묘법, 백성이 직접 부역을 지는 대신 일정한 세금을 납부하면 그 재원으로 전문 부역자를 고용한 모역법, 국가가 직접 재화의 매입, 판매에 나서고 시장 거래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균수법과 시역법 등을 시행했습니다. 명분이 있었고 의도가 선했으며 의지도 강했지만 결과적으로 신법은 실패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묘법은 부패한 지방 관리가 실적을 올리려고 농민들에게 대출을 강요하면서 수탈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모역법 역시 세금을 올림으로써 백성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균수법과 시역법은 국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시장의 자율적 조정 기능을 해치는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가뜩이나 신법이 못마땅했던 구기득권 세력은 개혁을 지지하던 황제가 죽자 대부분의 신법을 폐기하고 구법을 되살렸습니다. 거센 반동에 사회 체제는 신법 시행 이전보다 더 악화됐고 결국 북송 멸망의 단초가 됐습니다. 신법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개혁이 현실과 유리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2. 보완수사권 폐지 놓고 우려·반발

① 줄줄이 사의 표명

광고
광고 영역

정성호 법무장관이 사실상 사의를 분명히 했습니다. 정 장관은 오늘(27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사의 표명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큰 틀에 있어서 검찰 개혁이 대부분 완료됐기 때문에,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민주당이) 보완수사권 폐지를 발표하기 전부터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수술도 했고 상당히 심각한 수면 장애가 있다. 그런 측면을 고려해서 (사의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장관은 그 동안 범여권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부작용을 우려하며 전건 송치 등 경찰을 견제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고수했습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일부 강경한 입장의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끝내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하자 장관직 사의의 뜻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조만간 사의를 밝힐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법조계와 검찰 안팎에서는 구 직무대행이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지켜본 뒤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구 대행은 그동안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부작용 우려를 정치권에 전달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변에 무력감을 호소해 왔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②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시민단체· 언론도 '이건 아닌데'

'장윤기 사건' 이후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한 우려는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만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률 수정안을 내놓았습니다. 나아가 진보 성향의 피해자 단체, 시민단체로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치 목소리가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진보 성향의 언론들도 보완책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요지부동입니다.

③ 민생에 영향을 줄 구멍은 막아야

이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걱정은 사건 처리 지연과 '핑퐁 수사'로 인한 범죄 피해자의 고통입니다.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지 못하고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만 남게 될 경우 사건이 검찰과 경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수사 기간의 장기화로 피해자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구속 기간 만료 등으로 범죄자에 대한 적시 처벌을 어렵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 범죄 대응력 약화와 사회적 약자 보호의 공백도 우려합니다. 복잡한 경제·금융 범죄나 권력형 비리 사건의 경우 공소 유지를 맡을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지 못하면 기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 보완이 부실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아동·장애인·성폭력 사건 등 피해자가 자력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검사의 적극적 혐의 입증 노력이 제한될 수 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새로운 권력 집단이 될 경찰에 대해 견제 장치의 실효성 문제도 큽니다.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과정에서 경찰의 수사 종결권이나 수사 독점에 대한 검증 수단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권력 오남용이나 수사 무마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장윤기 사건'에서 이런 우려가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3. 개혁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는 '국민의 지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개혁의 성패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명분을 이루는 동시에 그에 따른 부작용을 얼마나 정교하게 예방해 국민이 실질적 효용감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앞서 제기된 우려대로 현장의 수사 지연과 부실 처리가 누적된다면 국민적 불만과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 개혁이 실패한 것처럼 사회적 갈등만 극대화된 채 개혁 자체가 동력을 잃거나 거센 반동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사는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약자 사건이나 공소 유지에 직결된 최소한의 예외적 보완 조치를 명확한 통제 하에 허용하는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형사사법 서비스의 질이 개선됐다고 느끼는 국민들로부터 검찰 개혁'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 수많은 개혁의 성패는 명분의 거창함이나 의도의 순수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로 "현장에서 실제로 잘 작동하는가"에서 갈렸습니다. 수사·기소 분리 개혁 역시 거대한 명분 제시를 넘어, 범죄 피해자 보호와 형사사법 절차의 효율성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교한 접근이 수반돼야 성공적 개혁이 가능합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외면한 채 명분만 내세워 밀어붙일 때 검찰 개혁은 이런 근본적 질문에 부딪힐 것입니다. "형사사법 시스템의 파탄과 피해자 방치라는 실리적 위기를 감수하고 '검찰 힘 빼기'에만 몰두하는 개혁은 국민을 위한 개혁인가? 정치인의 '제 잇속 차리기'인가?" 이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면 '불가역적 개혁'이 아니라 '불합리한 개혁'으로 지탄받으면서 그 반동으로 인해 더 큰 후퇴만 불러올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우상욱 논설위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광고
광고 영역
이브닝 브리핑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