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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육탄 영웅' 다시 꺼낸 북한…'자폭 미화' 닮은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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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화구 막았다"…50년대 육탄영웅 띄우기

평양시 서성구역에 위치한 북한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흰 셔츠에 빨간 넥타이 혹은 장식 리본이 달려있는 교복 차림을 한 대학생 무리가 최근 이곳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24일 저녁 뉴스를 통해 소개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일, 북한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7월 27일 기념일을 앞두고 진행된 사상 교육 캠페인의 일환이었습니다. 기념관에는 30여 개의 전시관과 홀이 있는데, 이날 둘러봤다고 소개된 곳은 620여 명의 자료가 전시된 '영웅홀'입니다. 선택을 받은 인물들은 620여 명 가운데 24명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육탄 영웅'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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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탄(肉彈). 몸을 탄알로 삼아 적진을 공격하는 행위나 혹은 그 행위를 하는 몸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기념관 강사는 한 소대에서 3명의 '육탄 영웅'이 배출된 사례도 있었다면서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이들을 추켜세웠습니다. 화면에 잡힌 '위훈' 설명을 보면 김옥근이라는 인물은 "1950년 12월 25일 양구군 추곡리 일대에서 적의 화구를 막아 구분대의 돌격로를 열어 놓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강사는 "몸이 그대로 육탄이 됐다", "적 기관총을 가슴으로 막아섰다"는 등의 설명을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교육을 받은 청년은 "육탄 영웅의 삶은 우리 청년 대학생의 가슴속에 당과 수령, 인민을 위해 바친 삶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고 호응했습니다. 집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체주의 특성이 반영된 탓인지, 정작 인터뷰를 한 대학생 개인의 이름은 소개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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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파병엔 '조국의 별'…이어지는 영웅 만들기

이번 행사를 보면 러시아 쿠르스크 일대 파병과 자폭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1950년대 육탄 군인들의 기록이, 올 4월 문을 연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에는 러시아에 파병갔다가 수류탄을 던져 숨진 군인들의 기록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 도중 자폭한 이들을 조국의 별이라고 부르며 영웅으로 또다시 미화해 왔습니다. 김옥근의 사례처럼 이들이 숨지게 된 과정도 영상 등을 통해 소개한 바 있죠. 리광은이라는 인물은 부상당한 자신을 구하러 오는 전우들이 쓰러지자 수류탄으로 자폭을 시도했고, 한 차례 실패하자 다시 수류탄을 머리에 대고 자폭했다고 합니다. 리홍남이란 인물은 지뢰 제거 시간이 부족해지자 지뢰밭을 몸으로 돌파해 길을 열었다고 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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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육탄 사망 사건을 다시 조명하는 것과 러시아 파병군의 자폭 사례를 영웅담으로 소개하는 것. 시대와 장소는 달랐지만 북한이 강조하는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찌 보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의 행위를 가장 이상적인 충성의 행위로 반복해서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를 기리는 행위는 비단 북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은 희생을 기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실제 전장의 모습은 북한의 선전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국정원이 지난 해 1월 국회 정보원회에 보고한 데 따르면 북한군 전사자의 메모에는 생포되기 전 자폭하거나 자결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불러낸 육탄 영웅, 이유는?

북한이 지금 '육탄 영웅'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어 보입니다.

첫 번째는 정례적 요소입니다. 지금이 매해 하는 집중적인 사상 교육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한국 전쟁이 벌어진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까지를 '반미 공동 투쟁 월간'으로 운영합니다. 실제로 이 기간에는 청년과 학생들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대대적인 교육이 실시됩니다. 전쟁 노병들이 학교를 찾아가 당시의 전투 경험을 들려주며 조국을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식입니다. 행사 도중 노병이 인공기를 청년들에게 넘겨주고, 청년들이 이를 넘겨받으며 각오를 외치는 것은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입니다. 24일 조선중앙TV에서도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평양관광대학에 90대 참전 군인이 강의를 하는 영상이 소개됐습니다. 90대 참전 군인은 "피로 사수한 깃발을 높이 날릴 것"을 당부했고, 학생들은 그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기간 북한은 거대한 안보 교육의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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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최근의 국제적인 안보 환경입니다. 지금 북한 바깥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여러 개의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이 전쟁들 모두 군사력 지표만으로 승패가 결정 나지 않고 있습니다. 전력의 상당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승리는 없었고, 전쟁은 장기화하는 중입니다. 드론, 호르무즈 해협 등의 변수가 결정적이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쪽의 버티는 힘 역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북한이 한반도에서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해 이런 교육을 강화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전쟁을 지켜보면서 유사시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무기와 병력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사상적 결속과 전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다시금 절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러시아 파병군의 희생을 대대적으로 영웅화한 데 이어 한국 전쟁 당시 '육탄 영웅'까지 불러낸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읽힙니다. 명령에 전적으로 따르고 적에게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태도, 이런 것들을 미리 미리 심어두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소구력은 얼마나? 북한도 '요즘 사람'은 다르다는데

다만 이런 교육이 청년들을 포함해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소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함경북도 한 소식통이 계급 교양 사업이 한층 강화된 6월 "그 소리가 그 소리고, 한 소리를 또 한다고 생각하는 참가자들이 많다"며 피로감을 느낀다는 주민들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입에서도 "일부 일군(꾼)들 속에서 요즘 사람들은 지난 시대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면서 당 사업에서도 사상적 요인보다 물질적 측면에서 집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북한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 있는 듯 보입니다. 극단적인 희생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렇지 못한 사회로 북한 역시 변화하고 있는 상황임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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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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