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외부에 공문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공문에 대한 결재 권한은 A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공문 내용을 작성할 권한은 B에게 있습니다. B가 공문 초안을 작성해 A에게 보내면, A는 내용을 검토한 후 결재 여부를 결정합니다. 결재할 경우 공문은 외부에 발송되고, 결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공문은 발송되지 않습니다.
사고 실험 - 어떤 경우에 공문이 발송될 가능성이 높을까?이와 관련해 두 가지 상황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상황은 B가 작성한 공문 초안을 A가 직접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A는 결재할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B에게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공문 발송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직접 공문 내용을 수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상황은 B가 작성한 공문 초안을 A가 직접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A는 B에게 공문을 수정 및 보완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만, 공문 내용을 자신의 뜻에 맞게 직접 수정 및 보완한 후 발송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두 상황 중에 A가 공문을 발송할 가능성은 어느 쪽이 더 높겠습니까? 두 번째 상황에서 공문이 발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문 내용에 대한 최종적 수정 및 보완 권한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공문이 외부에 발송될 경우 공문 내용에 대한 '책임'은 결국 결재권자인 A의 몫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상황에서 A는 자신이 직접 최종적으로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없었던 공문에 대해 책임을 부담해야 합니다. 반면 두 번째 상황에서는 자신이 직접 최종 수정 및 보완한 공문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첫 번째 상황이라면 A는 B가 보내온 공문이 - 또는 몇 차례 수정 요구를 거쳐 B가 다시 제출한 공문이 - 자신의 뜻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경우에만 발송하기로 결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B가 보내온 공문의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뜻에 맞게 공문을 직접 수정 및 보완한 뒤 발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접 수정/보완할 수 없는 수사 결과…'책임'지려 할까?이상의 사고 실험은 검사의 기소 여부 판단과 보완수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기서 A는 '검사', B는 '경찰(사법경찰관)'에 해당합니다. A가 공문 발송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검사의 '기소 여부 판단'에, B가 공문 초안을 작성하는 것은 경찰의 '수사'에 각각 대응합니다. B가 보낸 공문 초안을 A가 직접 수정 및 보완할 수 있는지 여부는 경찰(B)이 송치한 수사 결과(공문 초안)에 대해 기소권자인 검사(A)가 직접 보완수사할 수 있는지 여부에 해당합니다.
이를 통해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게 될 경우 검사의 기소 여부 판단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검사는 자신이 기소 결정한 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입니다. (불기소 결정을 하면 법정에 가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검사는 자신이 직접 보완수사(수정 및 보완)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하는 데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처음부터 수사한 것도 아니고 - 보완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어도 - 자신이 직접 최종적으로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없었던 내용에 대해 법정에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법경찰관이 보내온 수사 결과가 별다른 수정 없이도 법정에서 유죄를 받을 정도로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기소 결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사 보완수사 폐지되면 '불기소' 늘어날 것물론 경찰이 송치한 수사 결과에 대해 검사가 직접 수정 및 보완(보완수사)할 수 없는 경우에도 검사는 수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최종 수정 및 보완(보완수사)할 수 있는 경우와 수정 및 보완을 요구(보완수사 요구)하더라도 경찰이 자신의 뜻대로 보완해 줄지 장담할 수 없는 경우 중 어느 경우에 기소 결정을 하기가 쉬울지는 명백합니다. 검사의 보완수사 권한이 사라지면 불기소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설사 불기소율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기소를 위해 수사 완성도가 높아질 때까지 보완수사 요구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기소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늘어날 것입니다.)
불기소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범죄가 발생해도 범죄자(가해자)가 기소되어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중에서도 나쁜 짓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법리적으로 범죄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은 범죄, 구성 요건이 상대적으로 추상적이어서 법률가의 개입이 필요한 범죄에 대한 불기소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기, 보이스피싱, 코인 범죄, 주가조작,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이후에는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지금보다 낮춰서 예전이라면 기소하지 않았을 정도의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기소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 경우 불기소율 자체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검사가 기준을 낮춰 기소하면 결국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비율이 올라갑니다. 불기소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무죄율이 높아지면 검사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검사가 기소를 위한 기준을 낮출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범죄자 처벌 어려워져…범죄 피해자만 억울억울해지는 사람은 범죄 피해자입니다. 검사의 보완수사를 통해서 경찰 수사 결과가 수정되고 보완됐다면 상대적으로 쉽게 기소가 이뤄졌을 만한 사건의 경우에도 보완수사 폐지 이후에는 불기소 처분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2021년 수사권 조정 이후 이미 심각해진 형사사건 절차 지연 현상 역시 더 악화될 것입니다.
대응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보완수사권 폐지 이전에 검사가 수행했던 기능, 즉 법률가 관점에서 수사 결과를 수정 및 보완하는 기능을 대신 해줄 변호사를 범죄 피해자가 선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동안은 법정에서 유죄를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수사 결과의 완성도를 높이는 후반 작업(보완수사)을 검사가 담당해 왔지만,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된다면 피해자가 직접 법률가를 고용해 추가로 증거를 수집하거나 법리 구성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작업을 맡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소권자인 검사가 직접 수정 및 보완하는 것보다 효율적이지는 않겠지만 기소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법은 될 것입니다.
보완수사 폐지는 '검찰 민영화'따라서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는 일종의 '검찰 민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보완수사권이 폐지되어도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기능, 법정에서 공판을 수행하는 기능 등은 남게 되니 검찰의 모든 기능이 민영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사 절차와 관련해 지금까지 검사가 수행했던 핵심 기능 중 하나(보완수사)가 민영화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습니다.
법률을 개정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한다고 해도, 그동안 검사가 보완수사를 통해 수행했던 기능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에 에어컨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고 해서, 한여름에 에어컨을 이용하고자 하는 공공기관 이용자들의 수요(필요)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국가가 고용했던 법률가(검사)가 수행했던 기능(보완수사)을 법률 개정으로 폐지한다면, 개인은 해당 기능에 대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돈을 주고 법률가(변호사)를 선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검찰 보완수사 폐지를 통한 '검찰 (핵심 기능의) 민영화'입니다.
'검찰 민영화'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것문제는 모든 범죄 피해자가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검사가 보완수사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사의 보완수사가 폐지되면 그동안 검사가 수행했던 기능(보완수사)까지 피해자가 선임한 변호사가 담당해야 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범죄 피해자와 선임할 수 없는 피해자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피해자에 대한 사건은 기소될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검사의 보완수사가 폐지된 이후 벌어질 이와 같은 상황은 의료보험 제도가 고도로 민영화된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의료보험 제도가 민영화된 몇몇 국가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이 병원 가는 일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였다면 큰 고민 없이 병원을 찾았을 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당장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치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완수사권 폐지로 검찰 핵심 기능 중 일부가 민영화되면 이와 같은 비슷한 상황이 우리나라의 형사사건 처리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습니다. 대형 로펌을 선임할 돈이 있는 사기꾼은 빠져나가고, 법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은 아예 수사기관을 찾지 않고 포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의료 비용이 무서워서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병원을 찾지 않는 어떤 나라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반드시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핵심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면 사회적 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보는 법입니다. 모든 민영화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보완수사라는 핵심 기능의 민영화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입니다.
거의 모든 전문가 집단이 반대…재검토 필요어떤 사람들 말처럼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되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도 의료 비용이 무서워서 병원 가기를 꺼리는 국민이 많은 나라도 있고, 도심지 치안이 불안해서 밤 10시가 넘으면 외출하기 어려운 곳도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에서도 사람들은 상황에 적응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줄 정책을 강행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당장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경제적 약자들이 병원 가기 어렵게 만드는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형사 실무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전문가 집단이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검사 보완수사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보다 신중하고 책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