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실적으로 변동성을 잠재울 것이라던 기대가 과도했던 것일까? 삼성전자의 '사실상 서프라이즈' 2분기 영업이익에도 코스피는 8천선을 내줬고, '30만 전자'도 무너졌다. 개미투자자들은 오늘도 매수에 나섰지만 외국인은 큰 물량의 한국 반도체주를 매도하면서 불안감은 한층 강화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한때 10% 이상 급락했다가 6.92% 내린 29만6천원에 마감했고, SK하이닉스 역시 장중 11.22% 내린 208만원까지 하락했다가 6.06% 내린 220만1천원으로 마감했다. 간밤 뉴욕증시가 상승했고, 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한 상황이어서 코스피의 이날 큰 폭 하락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시장 참여자들의 고민은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 반도체 투톱의 역대급 호실적이 선 반영되고 있다곤 하지만, 장기 계약 등으로 이미 내년까지 수요가 단단한 흐름에서 '반도체 산업 고점'. 즉 '피크 아웃'을 우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이는데도 그 우려가 너무 빨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단기간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과 주가 조정 기간을 거쳐, 이달 중순부터 다음 달까지 이어지는 빅테크 들의 성적표를 기점으로 하반기의 2차 상승기로 갈 것인지 여부를 가늠하는 올 여름이 될 전망이다.
3년 치 이익 한꺼번에 벌었지만..예상 밖 '셀온(Sell-on)'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잠정 영업이익 89조4천억 원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지난 3년간의 합산 영업이익(82조9천억 원)을 넘어선 실적이다. 지난해 동기보다 1천810% 증가한 것으로 증권사들의 전망치였던 84조5천억 원을 여유 있게 상회했다. 좀 더 따져보면 미국 엔비디아나 애플도 분기 최대 영업익 기록이 각각 535억 달러(약 82조 원), 509억 달러(약 78조 원)으로 사실상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최대 실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2분기 실적은 직원들의 성과급 충당금을 반영한 것이어서 이를 제외하면 106조 원에 달한다.
사실 지난 1분기 실적도 '어닝 서프라이즈'였지만 당일 주가는 하락한 바 있다. 좋은 호재가 발생해도 매도가 나오는 시장의 '셀온'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우선 나온다. 호실적이 예상되면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른 상태였고, 그만큼 '재료소멸' 인식에 따른 차익실현 심리가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증권가에선 "발표치는 전망보다 다소 잘 나온 수준이지만, 100조 원 실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큰 상황에서 심리적으론 서프라이즈 효과가 반감됐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각에선 종합 IT기업인 삼성전자의 매출 구조상, 비메모리 반도체와 모바일 등 DX부문의 상대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설명도 나온다. 그럼에도 주가 하락폭이 컸던 것은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시장 환경의 변화 조짐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예외 없이 이어지는 외국인 매도세 때문이다.
반도체 고점 논쟁이 시작된 시점에 주의를 끈 데이터는 트렌드포스의 D램 가격 전망이다. 올 3분기에도 D램 반도체는 매우 부족한 공급 상태가 예상되지만, 가격 인상률은 전 분기보다 13~18%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었다. 2분기의 인상률이 58~63%에 비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다. 이는 수요 폭증에 따른 가격인상 폭이 자연스럽게 진정되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론 반도체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PC 등 필수 소비자 기업들의 사정과 맞물려 있다. 최근 애플의 경우, 반도체 가격 부담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산 메모리의 구입 승인을 미국 정부에 요청한 바 있는데, 이는 한국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의 독주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D램 가격 상승을 반영해 스마트폰과 같은 제품가격을 올리면 판매량이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 반도체 소비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 한계에 어느 시점에 도달할 지는 주의 깊게 예측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뉴스는 '메타'의 사례였다. AI 시설투자에 올인해 왔던 하이퍼 스케일러 기업이 데이터센터 '컴퓨팅' 자원 일부를 외부에 판매하는 전략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결국 절대 부족한 상태로 인식된 AI 시설투자가 과잉 상태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메타 측에서 공식화한 방침이 아닌데도 블룸버그가 보도하면서 예상보다 큰 파장을 불렀다. 이런 우려대로 메타의 AI 컴퓨팅 용량이 남아도는 상황이라면, 메타는 엔비디아의 GPU 같은 AI가속기 칩을 더 사들일 필요가 없고, 여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우려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데이터센터를 임대하는 마케팅은 아마존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이다. 막대한 시설투자를 하면서 주주들과 시장에선 투자에 따른 수익성의 현실화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기 때문에, 완성된 시설을 이용해 클라우드 서비스로 수익을 내며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다. 메타는 그동안 다른 하이퍼스케일러들과 달리 자체 AI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컴퓨팅 인프라(데이터센터) 구축을 진행해왔는데,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 진입해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시장에 큰 악재로 작용한 메타 이슈는 해프닝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다시 돌아보면 애플의 중국 반도체 구매 움직임도 비싼 한국 반도체 공급을 대체한다는 엄포지만, 또 한편으론 필수적인 반도체 수급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과연 악재일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큰 맥락에서 대세의 흐름을 벗어난 이런 이슈들은 막대한 시설투자 비용 부담에 시달리는 AI 빅테크들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자국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반이 약한 미국 업계와 미국 언론, 행정부에선 가파르게 상승하는 대만, 한국산 D램가격과 공급구조를 견제하려는 심리가 강해지고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10일로 다가온 하이닉스의 美상장은 또 다른 고비국내 증시는 이번 주 또 하나의 분수령을 맞는다. SK하이닉스의 뉴욕증시 ADR 상장은 10일로 예정돼있다. SK하이닉스의 기존 한국 주식을 미국 장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새 보통주를 발행해 예탁기관에 맡기고, 미국 투자자는 그 주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ADR(주식대체증서)을 사고파는 구조다. ADR은 국내 보통주와 일정 비율로 연결돼 있어, 가격도 국내 보통주 가격과 환율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①이번 ADR 상장은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 우려를 동반한다. ADR 발행 규모는 42조 원 규모인데 신주 1천7백만 주 정도로 기존 주식 수 대비 2% 정도의 주식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그만큼 투자수요가 나타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 시장에서 새로 형성될 평가와 수급 효과를 지켜봐야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②또 하나의 핵심은 미국 반도체주와 같은 시장에서 비교된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가 나스닥에서 거래되면 마이크론, 샌디스크, 씨게이트 등 미국 증시에 상장된 메모리·저장장치 기업과 나란히 평가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압도적인 밸류에이션 매력도, 이익의 규모, 기술력의 우위 등을 감안할 때 재평가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이익 대비주가 수준에서 미국 반도체주보다 낮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전망을 바탕으로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의 12개월 선행 PER은 TSMC 23.1배, 마이크론 11.2배, 일본 키옥시아 10.6배로 집계됐다. 반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7배, 6.0배에 그쳤다. 해외 3사 평균과 비교하면 SK하이닉스는 약 56%, 삼성전자는 약 60% 할인받고 있는 셈이다. 개미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 증시에서 SK하이닉스가 본주 대비 높은 가격으로 거래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국내 보통주 환산 가격보다 높게 거래되면 미국 투자자 수요가 국내보다 강하다는 것이고 국내 주가의 상승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주가가 이미 뉴욕증시 상장의 효과를 선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와 같은 '셀온'이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이런 흐름이 나타나면 다음주 반도체 주가는 다시 큰 변동성을 맞게 될 우려가 있다.
하반기는 이제 시작..주요 변수는?현지시간 8일에 나오는 미 연준의 FOMC 의사록은 케빈 워시 의장이 취임한 후 첫 FOMC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FOMC 구성원들이 인플레이션에 큰 경계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 자체로 매파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7월로 접어든 하반기 한국 증시의 최대 변수는 미국 금리 인상 움직임의 강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 연준의 금리인상 기조가 강화될 경우,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미 행정부의 지원이 개입되지 않으면 일종의 한계 상황을 맞는 빅테크 기업이 생겨날 수 있다. 계속되는 오픈AI의 재무구조 이상설은 큰 불안요인이다. 외국인들의 한국주식 매도 흐름을 강화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국내외 반도체 주식 보유자들의 차익실현 심리와, 특히 국내 시장의 경우에 주가 급락시 나타나는 반대매매, 그리고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에 따른 주식 매도 부담이 AI투자와 관련한 부정적 뉴스에 따라 산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 하나의 부담은 환율이다. 계속된 원화 가치 약세는 외국인 매도세의 요인이고, 국내 금리인상 압박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예고한대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미국과의 금리 차이 축소의 효과가 기대되지만, 미 연준이 금리를 서둘러 올린다면 효과가 사라진다.
7월 단기적 조정 시기를 지나면, 코스피는 다시 상승기조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에 따른 목표주가가 여전히 높고, 장기계약 등 반도체 수요의 강도를 신뢰할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 1만 선을 돌파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실적 전망과 수요는 탄탄하지만, 코스피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심리 부담과 레버리지 ETF의 변동성이란 약점 때문에 하반기에는 작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주가가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한국 반도체 관련 주가가 미국 증시에 역으로 영향을 주는 구도가 형성됐다는 점도 변동성을 더 키우는 양상이다.
큰 줄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투자 강도의 지속성이 될 것이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지난 달 800억 달러가 넘는 증자(주식발행)를 결정했는데, 그동안 여유 현금을 활용하던 패턴에서 이탈한 것으로, 빅테크 간의 AI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한 단계 더 나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반도체 수요가 당분간 더 강해질 것임을 기대할 수 있지만, AI주도권의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시점이 D램 수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피날레가 다가오는 것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당장 오는 16일 TSMC의 실적발표부터 MS와 아마존, 구글, 8월의 샌디스크와 엔비디아 실적발표는 반도체 고점을 예상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빅테크들이 이번 분기에도 시설투자 지출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슈퍼사이클은 안정적으로 이어지겠지만, 변화가 생길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이른바 반도체 랠리의 정점은 산업적으로는 이르면 내년 2027년 하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8년까지도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AI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 위주로 관련 인프라의 병합과 함께, 수요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주식시장의 정점은 이보다 선행할 수밖에 없다. 주가의 정점은 수치상으로는 내년 상반기로 예측 가능하지만, 실제 고점은 올해 하반기 10월을 대비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산업의 정점을 통해 주가 흐름을 예상하는 것이 투자자들 입장에서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