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취재파일] "인생은요, 정말 살아볼 만한 것…지천명에 이르니 진정 행복해요"

지난 7월 발레리나 공식 은퇴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말하는 ‘행복의 의미’


Google 즐겨찾기에 SBS뉴스 추가
모바일 스토리[Story] 보기
사진 5장 사진 슬라이드(좌우로 이동 가능)
모바일 스토리[Story] 보기

발레리나 강수진. 이름 석 자 만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예술가는 흔치 않다. 30년 넘게 강수진은 한국 발레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인 동시에 세계 발레계에서도 인정받은 최고의 무용수였다. 그녀는 2015년에 한국 나이로 딱 50세가 되는 2016년 7월에 독일 공연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공언했고,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켰다.

남편의 생일날이기도 했던 지난 7월 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고별공연 ‘오네긴’을 성공리에 마치고 한 달이 훌쩍 지난 뒤 강수진을 만났다. 정상의 발레리나에서 스스로 내려온 강수진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주 국립발레단 예술 감독실. 강수진은 날렵한 하이힐에 커리어우먼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정장을 입고 책상에 앉아 골똘히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발레리나보단 오랜 기간 일 해온 프로페셔널 행정가 같았다. 은퇴공연을 했으니 좀 한가하게 그간의 발레 인생을 정리하며 여유를 누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오전에는 국립발레단 단장으로서 각종 행정적인 사무를 처리하고, 오후에는 곧 막이 오르는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스파르타쿠스’의 연습을 직접 챙기고 지도하느라 잠시의 짬도 없이 바빴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은퇴 공연이 끝나고 쉬지를 못했어요. 그러니까 쉰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쉴 줄을 모르니까. 하하하. 몸은 쉬지 못했지만, 정신적 여유는 굉장히 커요. 은퇴 공연이 너무나 아름답게 끝났고, 상상 이상으로 그날 (은퇴 공연 당일)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고, 저한테는 정말 마지막까지 최고의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그걸 이뤄서 여한이 없어요.”

광고
광고 영역

안타깝게도 아직 국내 팬들은 강수진의 독일 고별 공연 영상을 보지 못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측에서 9월 10일 이후에 강수진 마지막 무대 영상을 공식적으로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무대를 직접 본 이들은 강수진 발레 인생의 최고의 무대였다고 입을 모았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지 꼭 30년 만에 은퇴하는 강수진에 경의를 표하며 발레단 동료와 스태프 전원은 무대에 올라 붉은 장미를 강수진에게 건넸다.

그녀에겐 인생의 중요한 국면을 마무리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홀가분함보다는 자신의 일에 한껏 몰입하는 이가 풍기는 에너지가 강했다. 이제 그녀의 에너지가 집중된 곳은 국립발레단. 예술 감독으로 취임한 지 3년 째. (공식직함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지만, 국내에서는 예술감독을 통상 단장으로 호칭. 강수진 본인 역시 단장으로 자신을 지칭해서 본 취재파일에선 강수진 단장으로 표기합니다)

그러나 강수진이 처음 단장으로 취임할 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15살 때 한국을 떠나 수십 년 간 외국에서만 생활한 터라 국립예술단체 수장을 맡기엔 너무 한국 정서를 모를 수 있다는 시각이 팽배했던 것.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사실 모든 분들이 다 우려했어요. 많은 분들이 쉽지 않을 거라고. 한국의 정서나 문화가 제가 떠났을 때 하곤 완전히 다르잖아요. 또 세대들도 다르고. 유럽의 정서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걱정했죠. 그런데 배우니까 또 되더라고요. 그리고 전 묻는 것에 겁을 안내는 스타일이에요. 처음에 와서 모르면 발레단 직원들에게 뭐든 물어봤죠. 발레단 직원들은 제가 모르는 상황에서 전폭적으로 도와줬어요. 사실 발레든 단장직 수행이든 제가 모르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배워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것은 똑같아요. 발레도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열심히 배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전 단장직도 같은 식으로 접근했어요. ‘열심히 배우자!’ ”

기존 발레단 직원들의 전폭적 지지와 본인의 노력이 더해졌다고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새로운 일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힘들진 않았을까? 국립예술단체의 수장으로서 관료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새로운 일을 접할 때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을 무척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는 분들이 많죠. 근데 너무 크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어요. 제가 만약 처음부터 욕심을 내서 ‘난 단장이니까, 단장답게 해야지’ 이랬다면 힘들었겠죠. 그러나 전 단순해요. 이런 성격이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욕심을 내서 ‘내가 모든 걸 다 잘 해야지’ 이러면 당연히 스트레스죠. 물론 저도 잘하고 싶은 마음 항상 있죠. 책임감이 있으니까. 대신 저는 오늘 습득한 것이라도 소화하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단장 일에 도전했어요. 대신 잠을 줄였죠. 그만큼 단장직에 필요한 행정적인 부분들을 공부해야 하니까.

강수진은 해보니까 행정일과 발레일이 아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사실 발레는 항상 머리를 써야 해요. 작품의 모든 안무를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습득하기 위해선 일단 머리로 모든 동작들을 외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먼저 해야죠. 그래야 몸이 자연스럽게 그 동작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발레단 단장일도 모든 사안들에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기본 사항을 완벽하게 파악을 한 뒤 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한테는 아주 유사하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처음에는 예산을 들여다볼 땐 액수의 단위가 익숙했던 유로가 아니어서 살짝 헷갈리긴 했지만. 하하하 ”

이제 수십 년 간 떠나있던 한국에 다시 와 생활한 지도 3년 째. 올해 한국 나이로 딱 지천명에 이른 강수진은 부쩍 나이 얘기를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살다 자신의 나이를 깨닫고는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강수진은 달랐다. 지금의 나이가 너무 좋고, 이 나이가 되니 진심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다고 얘기하는 말할 때 그녀의 눈빛은 참 아름답게 반짝였다.

“인생은요, 정말 살아 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오십 줄이 다 되니 정말 행복해요. 대신 제가 젊었을 때는 이런 말 못했어요. 고생을 하면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이 겪고 나니 인생의 행복은 참 작은 부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전 일로는 단원들이 너무 잘하고 있을 때, 극도의 행복감을 느껴요. 개인적으론 아침에 일어나서 쑤시는 곳이 없고 몸의 컨디션만 좋아도 일단 기쁘고, 남편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영화를 볼 때, 키우는 강아지랑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뒹굴뒹굴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해요. ”

국립발레단의 최근 공연작인 <스파르타쿠스>는 일찌감치 전석 매진. 최근 국립발레단 공연은 90% 이상 표가 팔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강수진은 자신이 단장이 되고 나서 한번도 발레는 보지 않은 분들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발레 공연을 처음 봤다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기뻤단다.

“발레,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보세요. 꼭 평을 안 하셔도 좋아요. 그냥 느끼면 되는 거죠. 그냥 보시고 느끼시면 되는 거예요. ”

광고
광고 영역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명성과 박수 갈채를 한껏 받은 강수진은 항상 꽃길만 걸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녀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무려 10년 동안 뒷줄에서 군무만 추던 시절도 있었다.

강수진은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진짜 행복은 멀리, 대단한 곳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을 때도, 독일 최고의 영예인 궁정무용가 칭호를 받을 때도, 은퇴 공연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때도 물론 행복했지만, 건강하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때 진짜 행복하다고 말했다.

“Today is a new day, 제가 항상 하는 말이죠. 우리에게 살아갈 하루가 주어진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에요. 어제는 어제일 뿐 오늘은 또 새로운 나예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 말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를 충만하게 사시길. ”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과 관련된 더 많은 취재내용은 9월 3일 오전 7시 40분 SBS <뉴스토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발레, '변방' 에서 강국으로-국립발레단 약진의 비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최효안 기자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