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황 감독의 영화 만들기는 진짜를 향한 여정이다. 첫 장편 '양치기들'을 준비하면서 영화적 야심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는 감정을 집약한 결과물을 내놓으려 노력했다.
지난 2일 개봉한 '양치기들'은 거짓말을 파는 역할대행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전직 연극배우 ‘완주’(박종환 분)가 살인사건의 가짜 목격자 역을 의뢰받은 후 위험한 거짓의 덫에 걸려들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한 인물이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진실을 추척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거짓말의 파급력과 침묵의 파장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파수꾼', '짐승의 끝', '잉투기', '들개',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잇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 과정의 결과물이다.
단편 영화 '보편적 순간'과 '갑과 을'을 발표하며 재능을 인정받은 김진황 감독은 첫 장편 영화인 '양치기들'에 대해 자신이 겪었던 삶의 딜레마들을 투영했다고 했다.
그에겐 구조적으로 잘 짜인 이야기, 있어 보이는 형식미를 갖춘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진짜'를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진황, 기억해야 할 신인 감독의 등장이다.
Q. 역할대행이라는 소재가 흥미롭다.
A.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역할대행업이라는 직종을 생각하게 됐다. 영화의 시작은 개인적인 고민이었던 것 같다.
Q. 그 개인적인 고민이란 어떤 것인가?
A. 난 되게 솔직한 편인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더라. 이상하게도 거짓말이 인간관계를 좋아지게 하는 측면도 있지 않나.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주변에 연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나보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자신의 감정과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훨씬 많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나의 고민과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어떤 공통된 고민을 투영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장르적 요소가 들어간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Q. 역할대행업에 관한 취재는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진행했나?
A. 직접 업체에 물어보기도 하고 종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역할대행업이 아직 명확하게 시스템이 갖춰진 건 아니고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하더라. 레포트를 대신 써주기도 하고, 애인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더라. 그러나 그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배우가 현실에서 딜레마를 겪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면 충분했다.
Q, 거짓말의 파급력과 침묵의 파장에 대한 영화다. 초,중반까지는 사건이나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데도 긴장감이 유지된다. 사건 발생 전후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A. 그렇다. 영화든 소설이든 미스터리, 추리물, 스릴러를 좋아한다. 첫 장편 영화다 보니 미스터리물의 양식에 충실하게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 이야기를 하되 플롯이나 구조는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의 특징을 구조화해서 발전시키려고 했다.
Q. 새로운 얼굴과 매력을 보는 배우들의 재미가 큰 작품이다. 주인공 '완주'의 묘사에만 치중하지 않고 사건으로 얽히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딜레마를 다층적으로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다.
A. 한두 명의 주인공이 극을 끌고 가거나 주제를 전달하기보다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영화를 좋아한다. '양치기들'을 만들 때도 완주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을 통해서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담기길 바랐다.
Q.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말해 왔다.
A.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 일부분들을 캐릭터에 조금씩 투영했다. 나도 완주(박종환) 같은 태도로 살았던 적이 있고, 광석(송하준)처럼 타인을 외면했던 순간이 있었고, 영민(윤정일)처럼 아버지에게 의지하기도 했다.
Q. 박종환 배우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연기 톤, 이를테면 불안함, 날카로움 등이 '완주'라는 캐릭터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A.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잉투기' 때부터 눈여겨봤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는 0.1초도 다른 생각을 안 한다는 느낌이 드는 배우다. 배우가 대사를 하거나 명확한 동선이 있더라도 중간중간 진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박종환은 그렇지 않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Q. 차래형, 송하준, 윤정일 등 젊은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한 건가?
A. 차래형은 대학에서 단편 작업을 하면서 호흡을 맞춘 적 있는데 느낌이 좋았다. 무대 연기도 잘하는 배우다. 시나리오 집필 당시부터 명우 역을 염두에 뒀다.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는 반대로 극 전체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갈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광석과 영민 역의 송하준, 윤정일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연기에 부합하는 배우들이었다.
Q. 완주에게 갈등을 선사하는 살인사건에 대한 직접적 제시가 없다. 의도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A. 이야기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신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럴싸하게 자극적으로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대부분은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인데 살인사건 신의 경우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이기에 묘사한다 해도 가짜처럼 보일 것 같더라.
Q.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완주에게 안 좋은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데 반해 그것들을 수습하는 마무리가 명확하지 않다. 결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어떤 의도와 판단 때문에 흐릿한 결말을 채택한 것인가?
A. 원래는 좀 더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는 시퀀스들이 더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업 당시 완주의 선택이나 변화, 태도에 대해 내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명확히 모르는 것에 대해서 영화적 완결성을 위해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내 선택이 맞는 것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역시나 주변의 지적과 나의 우려대로 관객들이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이야기하시더라.
Q. 지도하셨던 교수들도 결말을 포함한 시나리오의 전반적인 요소에 대한 지적들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지적과 조언을 해주셨나?
A. 결말에 관련된 지적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분명 영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관객들이 있을 테고, 그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관객의 공감을 사고 교감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었다. 교수님들은 시나리오상의 빈틈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하셨지만 종국에는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다"라고 내 뜻을 존중해 줬다.
Q. 경험론자인가? 계속해서 모르는 것, 겪어보지 않은 감정에 대해서 다루는 걸 꺼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A. 경험해야 가장 온전하게 배울 것 같다. '아직은 경험할 때다. 섣불리 아는 척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주의다.
Q.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느낌이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묘사와 우리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A. 이야기에 있어 내 삶이랑 가까운 지점이 많을수록 더 공감하는 편이다. 리얼리즘 영화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물, 공간, 설정들이 좀 더 우리네 삶이랑 좀 더 비슷할 때 리얼리즘 영화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면 나는 그쪽에 관심이 많은 편인 것 같다. 그런 영화에도 장르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한다. 특히 미스터리 요소를 좋아한다.
Q. '양치기들'이라는 제목이 은유적이면서도 직접적이다.
A. 시나리오를 쓸 때 제목을 정하지 않고 쓰는 편이다. 학교에 시나리오를 제출할 시점이 돼 제목을 써야 했는데 거짓말하는 사람이 여러 명 나오니 '양치기들'이라고 적어 냈다. 본능적으로 떠오른 제목이다. 나중에 바꾸면 되겠지 했는데 결국 안 바꾸고 이 제목으로 개봉하게 됐다.
Q. 영화감독을 지망하게 된 순간은 언제인가?
A. 중학교 3학년 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단체 관람으로 봤다.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구나 싶더라. 그때부터 막연하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 남자답게 해병대를 갔는데 3일 만에 후회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군대 시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방법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24살에 연극영화과(연출 전공)에 들어갔는데 대학생활이 너무 재밌더라.
Q.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건 제작 과정의 체계적 교육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나?
A. 대학 졸업 후 한중일 합작 드라마 '스트레인지6'와 영화 '고사2'의 연출부 막내 생활을 했었다. 그걸 하면서 '아, 현장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됐다. 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지원했다.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Q. 사나이 픽처스에서 상업영화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A.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양치기들'이 초정받아 상영됐다. 영화에 '고석태'로 출연한 김종수 선배가 당시 부산에서 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 제작 사나이 픽처스)를 촬영하고 있었다. 영화를 좋게 본 선배가 사나이 픽처스 한재덕 대표에게 내 이야기를 했고, 만나게 됐다. 예전에 아카데미에 대표님이 특강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강의를 인상적으로 들었고, 왠지 나랑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Q. '신세계'로 대표되는 사나이 픽처스 특유의 색깔이 있지 않나. 본인이 지향하는 영화 스타일과 맞다고 볼 수 있나?
A. 딱히 남성성이 강한 영화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이성보다는 동성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기는 하다. 친구나 지인도 남자가 대부분이고 연애 경험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쪽의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명확하게 내 생각을 펼칠 수 있고 솔직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 여성의 시점으로 단편 영화를 만든 적 있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는 순간 진짜가 아니고 꾸며낸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이야기든 인물이든 내가 어느 정도 아는 게 아니면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Q. 엄태화, 홍석재, 안국진, 김정훈 등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상업영화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상업영화는 뭐라고 생각하나? 아니 독립영화와는 어떻게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나?
A. 음...어렵다. 확실한 것은 관객과의 교감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