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의회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숨지게 한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하는 결의를 최근 채택하자 독일과 터키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3일 영국 BBC방송은 '아르메니아 학살'은 여전히 민감한 문제로 남아있다면서 역사학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터키는 다른 국가들이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려는 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은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오스만제국 당시 수십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나톨리아에서 시리아 사막 등으로 집단 이주해 굶주림과 병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망자 수를 놓고는 천차만별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사건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150만명이 죽었다고 주장했으나 터키는 30만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제학살학자협회(IAGS)는 백만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1948년 제정된 유엔 헌장에는 집단학살을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국가, 윤리, 인종 또는 종교 단체를 파괴할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많은 국가와 역사학자들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학살이 조직적으로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상당수다.
1943년에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낸 폴란드 유대인 변호사 라파헬 렘킨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수준의 반인륜 범죄로 규정했다.
터키 정부는 당시 잔혹행위가 저질러진 것은 맞지만,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없애려는 조직적인 시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터키는 당시 전쟁 중에 많은 무고한 무슬림 터키인들도 죽었다고 말했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1차 대전 때 러시아가 오스만제국을 침공하자 게릴라 활동을 벌였던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군에 가담한 이후 발생했다.
오스만제국의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가 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송을 지시한 1915년 4월 24일부터 18~50세 아르메니아 남자들이 강제 징집됐으며,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군사훈련과 공사현장에 동원돼 집단 사살되거나 과중한 노동과 질병, 기아 등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부녀자와 노약자 등은 메소포타미아 사막으로 추방돼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1919년부터 1920년에 오스만제국의 일부 고위 관료들이 이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했다.
'아르메니아 학살'과 관련해 현재 아르헨티나,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우루과이 등 20개국이 '학살'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의회와 유엔 인권 소위원회에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해 '집단학살' 대신 다른 용어를 쓰고 있다.
터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사건을 '20세기의 첫 집단학살'이라고 언급하자 교황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한편, 아르메니아 학살 논란에도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2009년 10월에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한 협상에 사인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회 비준을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