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짧은 단편적인 연극. 2.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우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어사전에서 '촌극'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나오는 뜻풀이입니다. 상식적으로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어이없는 상황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요. 최근 금융가에서 한 편의 촌극이 빚어졌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김재천 주택금융공사 사장입니다.
지난 4월 말,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김재천 사장을 만났습니다. 이날 김 사장은 "작년에는 안심전환대출에 많은 공을 들였다"며 "올해는 정부 차원에서도 관심이 높은 '내집연금 3종세트'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야심차게 밝혔습니다. 또한 "세계무대 진출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며 보폭을 넓히겠다는 포부도 드러냈습니다. 간담회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 기자간담회 후 10여일만에 사의 표명한 김재천 주금공 사장
하지만 불과 10여일 후, 김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조직의 청사진을 그리며 열변을 토하던 CEO가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는 이야기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김 사장에게 확인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금융위원회 관계자로부터 "사의를 표명했다고 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성과연봉제 도입'이었습니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노사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김 사장은 임원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한 겁니다. 주택금융공사의 한 임원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서 김 사장은 "이렇게 도입이 안 되면 사장이 사표를 쓰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하고, 그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임원은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해결하지 못한 데 책임감을 느낀 것 아니겠느냐"라며 김 사장을 두둔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CEO가 느꼈을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 지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더구나 금융위가 성과연봉제 6월 말까지로 성과연봉제 도입 데드라인을 제시한 상태에서, 그가 느꼈을 압박감은 매우 컸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 일주일만에 다시 업무 복귀…“CEO의 기본 어겼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감안한다고 할지라도, 650여 명의 직원들을 이끄는 수장이 보여준 행동이라 하기엔,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그가 연락을 끊고, 잠적(?)을 하는 동안 "금융위로부터 심한 압박에 시달리던 김 사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는 이야기부터 "금융위원회가 사표를 받지 않고, 반려한 것으로 안다"는 등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야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촌극 한 편이 벌어진 겁니다.
이 촌극의 결말은 어찌 됐을까요? 결국 김재천 사장은 지난 10일 임원단 회의를 소집해 공식적으로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같은 날 오전,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 공공기관장 간담회에도 참석했고요. 일주일간 지속되던 무성한 소문이 마침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의 주인공인 김 사장은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촌극의 결말다웠습니다.
◇ 임기 반환점을 돈 김재천 주금공 사장
김재천 사장은 한국은행에서 금융시장국장, 조사국장, 부총재보를 지낸 ‘정통 한은맨’ 출신입니다. 지난 2009년 주택금융공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4년 10월에 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10개월째 공석이던 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에 직무대행을 하다가 임명된 겁니다. 금융권 인사들은 "보통 공기업 CEO는 '낙하산 인사'인 것이 관행인데, 부사장으로 왔다가 사장까지 가게 된 케이스는 드물다"며 "운이 좋은 경우"라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또 ‘한국은행 조사통’ 출신답게 꼼꼼함이 필수인 주택금융공사 사장직을 잘 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김재천 사장은 오점을 남기게 됐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해도 신중해야 한다는 CEO의 기본을 어겼기 때문이죠. 김재천 사장은 3년 임기의 절반을 마치고, 반환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성과연봉제 도입’ 입니다. 금융당국이 정한 마감 시한이 한 달 남짓 않았고,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주택금융공사 노조는 최근 총회를 열고, 86.1%의 반대로 성과주의연봉제 도입 안건을 부결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은 오롯이 CEO의 몫입니다. 그가 오점을 털어내고,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지켜보겠습니다.
[CEO X-File] 모럴해저드 vs 마녀사냥…대주주 책임 어디까지?
[CEO취재파일] '수학'에 빠진 게임사 CEO
[CEO취재파일] 국세청·檢 칼날 위에 선 '우정학사' 이중근 부영회장
(SBSCNBC 김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