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난다는 새, '알바트로스(Albatrosss)'.
이 바닷새는 바람을 타고 날기 때문에 강한 바람이 불수록 그 바람을 타고 아주 높고 멀리 온 세상을 누비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때문에 어부들은 예로부터 이 새가 고깃배 근처를 날면 풍랑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날아와서 어부들에게 머지않아 폭풍우가 몰아칠 테니 미리 대비하라는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셈이죠.
2년 전 자신의 모교에 있던 이주열 교수가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됐을 때 경제계 안팎 평가는 '알바트로스' 그 자체였습니다. 각종 경제현안에 대해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오랫동안 경험하고 풍파를 몸으로 막아온 35년 정통 한은맨이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 경력은 화려합니다. 한은의 꽃이라는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현 통화정책국장), 부총재보, 부총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이 총재 내정에 시장이 더 환호(?)한데는 화려한 경력에, 뛰어난 능력도 갖췄기 때문입니다.
정책기획국장 시절인 2005년 하반기는 곳곳에서 거품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이 꺼낸 카드는 예나 지금이나 금리인상. 그러나 부동산 가격은 금리인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자, 그는 시중은행 지급준비율을 끌어올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지급 준비율은 시중은행이 예금 중 예금 인출 요구에 대비해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을 말하는데, 이를 끌어올리면 은행의 돈줄을 죄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아무도 생각 못했기에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자산버블을 걷어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은행자본확충 펀드를 통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금융시장을 안정시킨 것은 그의 능력과 식견을 보여준 백미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그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고비고비마다 해법을 제시하는 알바트로스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2년이 지난 현재, 안타깝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당초 기대만큼은 아닌 듯 합니다. 우선 시장에선 이 총재가 매파(긴축 신호)인지, 비둘기파(완화 신호)인지 헷갈려합니다.
"금리, 척 하면 척"이란 부총리의 너스레에, 세 차례의 금리 인하로 화답했던 이주열 총재가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내는 것에 시장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에게 '차선변경(금리인하에서 인상) 타이밍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이 같은 평가에 이 총재로선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춰왔지만, 더 이상 경기를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지 않고, 가계부채만 늘리기 때문에 금리를 더 이상 낮추지 않는데, 마치 일관성 없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게 말이 되냐'며 억울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은이 중심을 잡고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란 점에서, 이 총재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듯 하다는 부분은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금리만 만지작 거리면서 돈을 풀거나 죄는 통화정책에 대한 변화를 모색해봤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성장, 저물가가 깊어지고, 돈맥경화가 심각한 우리나라 경제구조에 맞는 맞춤형 통화정책에 대해 한국은행이나 이 총재가 얼마나 고민을 했냐는 겁니다.
물론 통화정책이란 게 현재를 파악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고도의 판단력을 요구하는 힘든 일입니다. 돈을 푸냐 마냐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밑그림을 다시 그리라는 요구는 다소 얼토당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리를 낮춰 돈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렵고 힘들더라도 고민하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가능성, 자금 필요성 등을 따져서 돈 필요한 곳에 중앙은행이 직접 지원해주는 방안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례로 한은이 중소기업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지원중개대출을 20조원으로 확대한 게 대표적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 총재가 보여 온 행보는 기대했던 알바트로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맞춤형 해법을 찾아, 시장에 적극 대응하던 한국은행 부총재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게 비단 저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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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CNBC 조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