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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구둣방천사의 마지막 가는 길은 따뜻했다"

* 대담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故 강상호 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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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진/사회자:

“친구 당신의 삶에 대한 의지는 우리들의 본보기였소!” “항상 웃음 잃지 않으시던 아저씨, 감사했습니다.” 서울 당산동의 한 구둣방에 이런 추모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30년 동안 이곳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故 강상호 씨입니다. 지체장애 1급이라는 불편한 몸으로 낮은 구두닦이, 밤엔 때밀이를 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돌봤던 강상호 씨는 3월 12일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가 떠난 자리엔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고 합니다. 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의 50년 지기 친구인, 이주이 씨 전화연결 해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이주이 씨 나와 계신가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네.

▷ 한수진/사회자:

사고 시간이 새벽 1시. 그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셨나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보통 11시 정도에 일이 끝나요. 그러면 2시간 정도 자기가 일하던 일터 주변에서 폐지 같은 걸 줍고 1시쯤이면 집에 귀가를 하죠.

▷ 한수진/사회자:

강상호 씨가 30년 동안 구둣방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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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네 맞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몸이 불편해서 초등학교 졸업만 하고 중학교 정도 나이부터 20대 중반까지 목욕탕에서 때밀이하고 구두닦이를 병행을 했어요. 20대 중반 이후에 결혼하고 나면서 구두박스를 운영했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낮에는 구두닦이 하고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새벽에 폐지도 줍고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네 맞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밤에는 때밀이 세신사로 일하시고. 정말 쉴 틈 없이 일하신 것 같아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 친구 일과는 그렇습니다. 구두닦이인데 세신공 그걸로 일하고 밤에 퇴근길에는 폐지를 주워서 그것을 한 달에 폐지 주우면 15만 원 전후 정도의 수익이 생겨요. 하루에 2~3시간 주우면. 그 돈으로 자기가 쌈짓돈을 주머니에 하루에 보통 팔면 5천 원, 6천 원 이 정도 벌게 되는데 그 돈은 자기 생계 유지하는 데 쓴 게 아니라 주머니 쌈짓돈처럼 모아놨다가 그 친구가 사는 지역이 임대 아파트 지역이에요. 생활하기가 열악한 분들에게 그때그때 몇 만 원씩 쥐어주는 그런 재미로 살았죠.

▷ 한수진/사회자:

이웃에 사는 어려운 분들에게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아니 본인도 그렇게 살림이 여유 있지는 않으셨다면서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본인이 지체장애 1급이고요. 배우자와 그 아들 또한 지체장애 1급, 2급 그래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아니면 그 배우자와 아들은 생활전선에 나설 수가 없으니까 생계유지가 안 되면 그런 지경의 살림이죠.

▷ 한수진/사회자:

그렇게 넉넉지도 않은 형편에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셨다는 말씀이시고요. 이 사고 소식을 접하고 많은 분들이 마지막 길을 지켜줬다고 들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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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 친구가 3일장을 치르면서 초등학교 친구들이 이틀 밤을 40여 명 정도가 밤을 새고 장지에도 30여 명 정도가 가고. 가족이 별로 없어요. 초등학교 친구들이 거의 모든 장례 일정에 동참을 했죠.

▷ 한수진/사회자:

그렇군요. 저희는 쓸쓸한 장례식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셨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그나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쓸쓸한 장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장례식은 굉장히 훈훈한 장례식이었죠. 그 친구가 주변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 도움을 줬던 사람들 또 주변에서 그 친구가 직업 전선에서 구두 세신공으로 일하면서 당산역 앞에 삼성 래미안 아파트 거기에 있는 주민들, 거기 가게 오던 분들 그 분들이 왔고 또 그 앞에 우리은행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은행 지점장 같은 분은 큰 형님처럼 훈훈하게 대해 주셨는데 인사이동이 있어서 부천 상동 지역으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화한하고 그 분이 직접 오고 또 우리은행 아가씨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유니폼을 입고 문상을 다녀가고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남들은 사람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초라한 삶이었다 이렇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장례식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만큼 주변에 많은 정을 베풀고 마음을 나눈 그런 분이었다는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고인과는 50년 지기 친구라고 하셨죠?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초등학교 동창생이니까. 초등학교 1,2학년 시절에는 어머님이 업고 다녔어요.

▷ 한수진/사회자:

늘 업고 등교를 했군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럼요. 3학년 이후부터는 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녔고. 오히려 나이 먹으면서 걸어 다니고 보행 능력이 좋아져서 그 이후에는 지팡이에 의존 안 하고 지팡이 의존 안하고 걷는 모습은 어렵게 이렇게 걸어 다녔어요.

▷ 한수진/사회자:

기억나는 일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신다면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어머님이 생존해 계세요. 어머님은 요양병원에 계신데 가족들이 알리지 못하고 있고

▷ 한수진/사회자:

충격을 받으실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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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럼요. 어머님한테 굉장히 효자였는데 그런데 저도 오랫동안 알고 있던 어머님인데 저도 그 사실을 6,7년 전에 알았던 것 같아요. 생모가 아니시더라고. 이 친구가 100일 정도 됐을 때 생모는 돌아가셨고. 병으로. 그 이후에 바로 새어머님이 오셔서 이 친구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셨어요. 이 친구 역시 그 어머님을 끔찍하게 알아요.

▷ 한수진/사회자:

새어머님도 잘 모셨던 그런 효자고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네 맞아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아직 그 어머님은 사고 소식도 모르고 있다 하는 말씀이시고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가족분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내분도 그렇고 충격이 참 크실 것 같은데요. 당장 생계도 걱정일 것 같습니다?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렇죠. 앞으로 생계나 여러 가지가 문제죠. 문제인데 참 가슴 아픈 건 우리가 사망 후에 입관이라는 절차를 밟잖아요. 입관 절차 때도 배우자가 정신이 맑지 않으니까 그냥 거기서 흐느껴 울기보다는 그냥 남편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거 내 신랑이야, 이거 내 신랑이야. 이렇게 되뇌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 남은 가족들도 걱정이네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이 가족들에 대해서도 또 우리 이웃들이 강상호 씨가 이웃들에게 나눠졌던 정을 되돌려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그래요. 너의 삶은 고단했지만 삶이 이뻤다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 친구 분이 많이 그리우실 것 같습니다.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 한수진/사회자: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이주이 씨/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 친구:

▷ 한수진/사회자:

구둣방 천사 강상호 씨의 50년 친구 이주이 씨와 말씀 나눴습니다. 평생을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살다가 떠난 강상호 씨 그의 삶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랑 남기고 떠난 1평 구둣방의 천사…추모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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