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러시아로부터 명태를 수입하는 J 수산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한·러 합작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러시아 수역에서 조업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12개 합작회사 가운데 한 곳입니다. 러시아 회사와 합작을 한 회사는 관세 특혜가 있습니다. 즉 명태를 수입할 때 부과되는 관세 22%를 전액 면세받을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04년 10월 해양수산부로부터 한·러 합작회사 공식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 뒤 현재까지 총 58차례에 걸쳐 러시아산 냉동명태 3만5천 톤을 수입해 관세 138억 원을 감면받았습니다.
● 정부 공식 한·러 합작 수산물회사는 유령회사로 드러나…업계 최초 적발
그러나 J 수산이 만든 한·러 합작 수산물회사는 10여 년 만에 유령회사로 드러났습니다. 이 회사 대표 정 모 씨는 러시아 수산물회사인 I 수산 명의를 도용했습니다. 이전에 I 수산 소속 선박이 부산항에 입출항하면 각종 업무를 대행해주는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쌓아 놓은 친분을 이용해 I 사의 등기부 등본을 입수한 후 가짜 합작 수산회사를 설립한 겁니다.
정 씨는 설립허가 서류에 I 사와 지분 50 대 50으로 투자한 것처럼 주주 및 자본금 난을 위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자본금은 미화 2천 달러에 불과했고 발행 주식도 2천 주에 불과했습니다. 또 합작회사의 자격 심사를 위해 러시아에서 폐기 처분 직전인 노후 선박 1척을 2천만 원에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해역에서 명태 조업을 하는 선박은 4천 톤급 이상이지만 이 선박은 5백 톤급에 불과했습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서류와 폐기 직전 선박으로 정 씨는 해수부로부터 공식 한·러 수산물 합작회사로 지정돼 관세 면제 혜택이 있는 명태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허가 이전에는 정 씨는 선박 대리점을 운영했지만, 수산업에 종사한 이력은 없다고 부산세관은 밝혔습니다.
● 총 138억 관세 포탈…공소 시효 10년 이내만 108억 원 혐의 인정돼
유령 합작회사를 설립해 허가를 받은 뒤 J 수산은 본격적으로 명태 수입에 나섰습니다. 러시아 수산회사에서 명태를 일반 구매 수입을 할 때는 관세 22%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합작회사가 그들이 소유한 선박을 투입해 명태를 잡으면 러시아 정부에서 인정해준 쿼터 배정물량으로 인정돼 100% 면세가 됩니다.
부산 세관 조사 결과 J 수산은 지난 2004년 이후 현재까지 모두 58차례에 걸쳐 냉동명태 3만5천 톤을 들여왔습니다. 이 가운데 특가법상 공소시효 10년 이내인 2006년 이후 반입 물량은 2만5천 톤입니다. 실제로는 포탈 규모가 더 크지만, 관세 108억 원을 포탈한 혐의만 인정됐습니다.
부산 세관은 J 수산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러시아 해역에서 자신의 선박으로 조업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애당초 폐기 직전의 노후선박으로는 조업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대신 러시아 명태 판매회사로부터 명태를 공급받아 합작 수산물인 것처럼 서류를 위장한 겁니다. 이 노후 선박의 운항 기록을 보면 부산항에 3일 동안 단 한 차례 체류한 적이 있을 뿐 그 어떤 기록도 없다고 세관은 밝혔습니다.
● 명태 수입 관련 서류 모두 위조돼…명의 바꿔치기 수법
러시아 명태를 수입해 들여와 관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해양수산부에 구매계약서와 1일 어획 보고서, 원산지 증명서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J 수산은 이들 서류 모두 위조했습니다. 즉 실제로 명태를 구입한 러시아 판매회사에서 보내온 서류를 가지고 자신이 명의 도용한 유령회사로 명의를 바꿔치기해 조작한 서류를 해양수산부에 제출한 겁니다.
이러한 조작 횟수는 지난 2004년 이후 11년 동안 58차례나 이릅니다. 아주 상습적으로 밥 먹듯 해 온 겁니다. J 수산이 명의 도용한 러시아 I 수산회사도 J 수산 대표 정 씨와 친분 관계로 인해 묵시적 동의를 해 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산세관 외환조사과 문을열 팀장은 “J 수산과 러시아 I 수산과 명태 수입 계약을 하면서 시세 단가보다 좀 높게 계약을 체결한 정황이 보인다”며 “명의도용 사실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관세 22% 탈세에 대한 일정 지분을 보장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 해양수산부 허술한 허가 절차와 검증 시스템 비판 도마 위에
J 수산이 11년 동안 탈세 부정을 저지르는 동안 해수부는 지난 2010년 12월 단 한 차례 현장 실사를 한 적 있습니다. 산하 용역 기관에 의뢰해 현지 조사를 시킨 겁니다. 그러나 실사 결과는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났고 이 회사는 적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J 수산은 한 달 전에 실사 계획을 통보받고 해수부에 신고한 유령회사 주소지 바로 옆에 동일한 간판을 달고 짝퉁 회사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현지 고용한 러시아 직원을 내세워 실사를 받게 했습니다. 현지 실사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겁니다.
형식적인 검증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이 회사가 실제로 조업 선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만 살펴보았다면 쉽게 파악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선박 운항에 필요한 조업 관리와 선원 조달, 선용품 조달 및 선박 운항 일지 등을 점검해 보면 알 수도 있었습니다.
부산세관은 러시아 영사관을 통해 러시아 합작사의 실체를 확인하고 유령회사를 파악했습니다. 또 유명 회계 법인을 통해 다시 한 번 추가 검증을 해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부가 처음 합작회사 허가 서류를 검증하면서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의문이 일고 있습니다. 11년 동안 58차례에 걸쳐 1일 어획 보고서와 구매 계약서 원산지 증명서 등 조작된 보고서가 제출됐는데도 한 번도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 남는 문제는? 다른 합작회사도 전수 조사해야
우리나라 원양업체는 1991년 ‘한·러 어업협정’ 체결 이후 명태 조업을 위해 러시아 수역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2001년 러시아가 ‘민간 쿼터제’를 도입해 자국민 위주로 쿼터를 배정함에 따라 우리 국적 선박에 대한 쿼터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러시아와 합작 법인을 설립해 명태를 포획하면 관세 100%를 감면해 주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러시아로부터 배정받은 명태 쿼터는 총 20만 톤입니다. 이 가운데 2만 톤은 국적 회사 소속 4척에 배정돼 있습니다. 나머지 18만 톤 가운데 16만 톤은 J 수산을 포함해 12개사 28척이 합작회사 형태로 허가받아 배정됐습니다. 나머지는 일반 배정 2만 톤을 수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일반 배정 물량은 관세 22%를 부과합니다.
그런데 J 수산의 경우처럼 무늬만 합작회사처럼 등록해 놓고 실제로는 조업을 하지 않는 유령회사를 운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부산세관은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검증 절차가 너무 허술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수부와 상의해 전수 조사도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또 앞으로 허가를 할 경우 러시아 합작 상대사에 대한 더욱 엄격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명태 수입 때마다 제출하는 서류에 대한 검증 작업도 더욱 엄격하고 전문화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부산세관 문 팀장의 말처럼 “합작 조업 선박도 없고 합작 수산회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합작 수산물도 없는, 모든 게 가공되고 조작된 업계 초유의 유령합작사건” 다른 업체는 없는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