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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가정서 사랑 속에" 어린이헌장 유린한 원영이 사건

'고른 영양·좋은 교육' 커녕 굶주림·폭력 시달리다 짧은 생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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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의 모진 학대를 당하다가 세상을 떠난 신원영군 사건 앞에 정부가 만들어 공포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도 무참히 유린당했다.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는 첫 항부터 "해로운 사회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원영이가 누린 것은 없었다.

어린이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는 고사하고 성인도 버티기 어려운 처참한 학대를 당하다 7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삶을 마감했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투영된 원영이 사건을 겪으면서 법률과 제도, 시스템만 탓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어린이헌장 속 구호라도 다시 읽으며 도덕적 무책임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린이헌장 주요 조항과 대비해 고통으로 얼룩진 원영이의 삶을 되짚어보았다.

◇ 제1항: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

원영이의 삶은 '따뜻한 가정'이나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9년 9월생 원영이는 만 4살도 되지 않은 2013년 8월 누나(10)와 함께 생모 품을 떠났다.

친부(38)가 이혼소송을 통해 친권과 양육권을 가지게 된 뒤 원영이 남매의 양육은 온전히 새엄마 김모(38)씨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본처와의 이혼 절차를 끝내기도 전에 동거부터 시작한 부부에게 아이들이 눈에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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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특히 핵가족화와 개인주의화에 따른 '이웃과 소통하지 않고 고립된 가정'에 대해 경고한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해체된 결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정신적 상처를 안고 성장하고 부모가 되고나서는 분노조절 장애 속에 폭력을 대물림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원영이 계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와 따로 살아왔다.

경찰이 압수한 휴대전화의 통화내역에는 남편 이외에 누구와도 통화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사회적 관계가 전혀 포착되지 않은 셈이다.

계모에게 모든 탓을 돌리기에는 월급 500만원을 받는다는 친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다.

이제 홀로 남은 원영이 누나(10)가 걱정이다.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지난해 4월 친할머니집 근처 초등학교로 전학온 누나는 친할머니와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정신적 충격으로 정상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 임시아동보호시설의 보호를 받고 있다.

◇ 제2항: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섭취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소견을 보면 숨질 당시 원영이 몸무게는 112.5㎝에 몸무게 15.3㎏였다.

2015년 경기도 학교 건강검사 표본조사 결과,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 평균 키는 121.5㎝, 체중은 24.4㎏이다.

원영이가 숨지고 한 달 후 부검 소견인 점을 고려해도 같은 또래 평균치보다 9.0㎝, 9.1㎏이 뒤지는 저성장 상태였다.

계모는 원영이를 지난해 11월부터 석달 간 욕실에 가두고 하루 한 끼만 주면서 수시로 때렸다.

'고른 영양을 섭취'하고 '질병 예방과 치료'를 받기는 고사하고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변기에 이마를 부딪쳐 다쳤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붕대만 감은 채 방치했다.

지난 1월 28일에는 원영이 온몸에 살균소독표백용 세제(락스)를 퍼붓기도 했다.

다량을 접촉하면 피부가 상하는 독성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시신에 남아 있는 이마 부위의 상흔과 섬유화 현상은 그때 생긴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몸이나 마음에 장애가 있는 어린이는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빗나간 어린이는 선도되어야 한다"는 어린이헌장 제10항은 배고픔조차 해결하지 못한 원영이에게 사치처럼 들린다.

평택보건소가 확인한 결과 4∼6세 때 받아야 하는 원영이의 의무 예방접종 기록이 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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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항: "어린이는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원영이가 공교육 혜택을 누린 것은 딱 석 달이었다.

잠시 사립 유치원을 다녔던 것으로 알려진 원영이는 2014년 9월 누나가 재학 중인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들어갔으나 무슨 이유인지 12월 초부터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를 따뜻하게 돌봐준 것은 지역아동센터였다.

2013년 겨울 지역아동센터 직원에게 얇은 옷만 걸친 채 목격된 원영이 남매는 겨울 내내 지역아동센터에서 허기와 외로움을 달랬고 이후 센터장이었던 박향순(67·여)씨 집에 두 달 정도 머물렀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는 교육시설이 아니라 돌봄시설이다.

원영이가 살아 있어도 초등학교 문턱을 밟아볼 수 있었을까.

취학통지서를 받고도 원영이 친부와 계모는 올해 1월 7일 신입생 예비소집에 데려가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독촉하자 일주일 뒤인 14일 입학유예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국, 신입생 입학식 다음날(3월 4일) 입학유예(의무교육학생관리위원회) 심의에 아들과 함께 출석하라는 독촉을 받고는 "아이가 열흘 전 없어졌다"고 둘러댔다가 꼬리가 잡혔다.

원영이가 겪은 고통의 삶을 돌아보면,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제8항),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제9항)는 선언은 허망한 구호로 들린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은 1957년 당시 보건사회부 의뢰로 한국동화작가협의에서 작성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내무·법무·문교·보건사회부 4개부처 장관 명의로 공포됐다.

이후 1988년 보건사회부는 시대에 맞게 일부를 개정해 전문과 11개항의 본문을 공포했다.

제정 당시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주어야 한다"는 등의 '피상적인' 내용을 시대에 맞게 개정해 어린이의 출산과 건강, 교육, 놀이, 노동 등에 대한 사회의 보호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린 원영이는 60년 전 1950년대를 살고 있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뼈아픈 자성의 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김은정 소장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돼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보면 어린이헌장 내용이 포함돼 담겨 있다"며 "이를 준거틀로 삼아 우리 스스로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을 재검검하고 정부, 지자체, NGO 등이 고위험군 가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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