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올란도에는 디즈니 월드 말고도 세계 최대 규모의 놀이 공원 시월드 파크가 있습니다. 이곳의 간판 프로그램은 뭐니뭐니해도 범고래 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조련사와 범고래가 한몸이 되어 펼치는 환상적인 쇼는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는 일등 공신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최근 여기 살고 있는 가장 유명한 범고래 한 마리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원 앞에서는 매일 범고래 포획을 그만두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우식 특파원이 취재파일을 통해 전했습니다.
[스콧 기어하트/시월드 수의사 : 범고래의 질환이 만성적이며 점차 악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될 겁니다.]
시월드 측에서 이례적으로 범고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미리 발표했습니다. 이제 35살 정도밖에 안 된 범고래 틸리쿰이 눈에 띄게 무기력해진 데다 폐 속에서 박테리아 감염이 일어났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틸리쿰은 바로 영화 <블랙피쉬>의 실제 모델이 된 범고래입니다. 6년 전, 베테랑 여성 조련사인 돈 브랜쇼를 공격해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사고의 주인공인 겁니다.
당시 틸리쿰은 쇼를 마친 뒤 갑자기 물 위로 튀어 올라 관객들이 보는 코앞에서 조련사의 팔을 물더니 그녀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또 이것 말고도 공연장에 빠진 시간제 대학생 조련사와 20대 남성의 사망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틸리쿰이 정확히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생동물로서의 그의 본성과 바다에서 어부들에게 불법으로 끌려와 혹독하게 거친 훈련 과정을 알면 그 원인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데요, 틸리쿰은 1983년 2살 정도 된 새끼일 때 북대서양 아이슬란드 부근에서 다른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붙잡혀왔습니다.
그리고는 덩치 큰 범고래들과 함께 조련을 받았는데, 어린 틸리쿰이 실수를 해서 다 같이 음식을 못 먹고 벌을 받는 일이 종종 있자,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범고래들이 물어뜯고 할퀴어도 도망칠 곳이 없으니 꼼짝 못 한 겁니다. 때문에 틸리쿰은 한 10년 가까이 수조의 금속으로 된 문을 이빨로 갉아서 치아에도 이상이 생겼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고래처럼 지능이 뛰어난 동물의 경우 야생에서 포획돼 인간에게 조련될 겨우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시달리고, 또 자연상태에서 보통 50년에서 80년인 범고래의 수명도 사육될 경우 그 절반에 그친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돌고래 제돌이 사건으로 불법포획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틸리쿰은 원래 아메리칸 원주민 치누크족의 말로 친구라는 뜻의 단어라는데요, 친구가 어쩌다가 살인 고래로 변해 짧게 생을 마감하게 됐는지, 이번 틸리쿰의 비보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