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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목숨 걸고 일장기에 덧그린 특별한 태극기

* 대담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황평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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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진/사회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황평우 관장과 함께합니다. 오래된 유산, 어서오세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 준비하셨어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 중에 특별한 태극기가 있어서

▷ 한수진/사회자:

특별한 태극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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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네 소개를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가, 등록됐다고 하죠. 근대 문화유산들이 한 열점 정도가 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쓰던 거, 또 최초로 만들었던 태극기 또 독립운동 때 쓰던 태극기 등 있는데 그 중에서 좀 특이한 게 있어서 소개해드리려고 한 건데요. 우리 불교계에 보면 만해 한용운 선생님은 독립운동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자료 조사를 하다보니까 만해 한용운 선생님은 사실 좀 학승이세요. 공부를 하시면서 저술도 많이 하시고 그런데 백초월 스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한수진/사회자:

백초월 스님. 잘 모르겠는데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네 많이 안 알려져 있어요. 이분을 보면 1878년생 고성출신이고요. 이분은 주로 보면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독립운동도 하시면서 군자금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모으고 직접 활동하면서 승려들 많이 모으고 이런 활동을 많이 하셨고 또 출가는 해인사에서 정통코스를 밟으셨던 분이에요. 그래서 이분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니까 재밌는 게. 재밌다 라기 보다는 너무 끔찍했던 게 이렇게 계속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사실 1939년도에 낙서 사건으로 구속이 돼요. 낙서가 뭐냐면 용산 철도 노동자 박남수라는 분이 철도에다가 1939년도 같으면 일제 서슬이 퍼럴 때거든요. 대한독립만세라고 철도에다가 쓴 거예요.

▷ 한수진/사회자:

우와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대단한 거죠. 그때 당시에, 근데 이걸 배후조종했다라고 해서 구속이 됐고, 그 다음에 3년 옥살이 하고 나와서 그 다음에 어떻게 했냐면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진관사라는 절에서 예를 들어서 법회 같은 걸 조직하면서 군자금을 모아요 이걸 직접 상해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거죠. 이런 활동을 하시다가 결국 해방을 못보고 1945년 봄에 청주 교도소에서 돌아가십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 다시 체포가 돼서 옥고를 치르다가 순교를 하셨군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이제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게 뭐냐면 진관사라는 절에서, 진관사 절이 뭐냐면 서울 근방의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 사실 시내 안에서는 모이면 일경들이 계속 단속을 하니까 서울 외곽에 나가서 사람들을 모으고 법회 활동을 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하는데 1919년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태극기도 그렸을 거고 사용을 했을 거 아닙니까. 재밌는 게 2009년에 진관사라는 절에 칠성각이 있습니다. 칠성각이라고 하면 사찰에서 가장 명당자리 중에 하난데. 전통적인 도교, 불교가 아니라 도교거든요. 도교 형태의 우리 토속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각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이 부실하니까 해체 공사를 했어요. 그런데 벽속에서 조그마한 봇 다리가 나온 거예요. 놀라서 펴 봤더니 그 안에 태극기가 있고 독립신문이 있고 일본 부역한 사람들한테 경고장이 있고

▷ 한수진/사회자:

잘 숨겨둔 거군요. 벽 속에다가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래서 이걸 조사해봤더니 2009년이니까 89년 만에 우리 눈앞에 나타난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면 1919년에 백초월 스님께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서울에서 하다가 계속 피해서 도망치다가 그 때 당시 진관사가 고양시, 고양 이였거든요. 일경이 그 쪽까지 쳐들어 온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들을 다 싸서, 만약 걸리면 감옥에 가서 또 옥고를 치르니까 싸서 건물에다 숨겨놓고 벽을 바른 거예요. 그래서 2009년도에 우리가 해체공사를 하다 보니까

▷ 한수진/사회자:

그게 그냥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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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대로 나타났는데 한 90cm정도 세로 70cm정도 되고 이게 보면 더 큰 의미가 있는 게 일장기에다가 우리 괘를 태극을 그렸어요. 무슨 얘기냐면 일장기, 당시 일장기를 훼손한다는 건 이건 목숨을 내놓고 하는 거죠. 일장기에다가 태극 괘를 그리고 옆에 건곤감리는 그대로 그렸어요. 지금의 태극기와 모습이 조금 다른데, 우리가 이거 좀 다르다 라고 했는데 사실 거기 보니까 태극기 그리는 양식도 방법도 임시정부에서 이미 배포를 다 했더라고요. 이미 임시정부에서 배포했던 태극기 양식에 따라서 정확하게 그렸는데요. 이 태극기가 약 100년 동안 밀폐된 공간에 있어서 좀이 조금 먹었는데 태극기가 문화재로 등록이 됐고,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선민중의 기와 세 강단 있는 모습이 가장 잘 표현된 어떤 우리 항일정신이 가장 잘 투영된 태극기가 이 진관사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서 오늘 소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일장기는 거부한다는 거네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일장기에다가 그릴정도면

▷ 한수진/사회자:

우리는 일본을 극복하겠다.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렇죠. 너네들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정신들이 사실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단순히 활동을 하고 폭탄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장기 상징물에다가 우리 태극기 괘를 그렸다는 건 태극을 그렸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죠.

▷ 한수진/사회자:

진관사 태극기 하면 저희가 백초월 스님을 알아둬야겠군요.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그래서 3.1절에 진관사도 한번 가보시고,

▷ 한수진/사회자:

가면 볼 수 있습니까?

▶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

지금은 주변에서 태극기를 건다고 합니다. 건다고 하니까 사실 우리 박물관에도 걸려는 있어요. 한번 직접 와서 보시면 아이들하고 우리 어르신들 보시면 굉장히 의미가 있는 태극기가 될 것 같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렇군요.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황평우 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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