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정부의 말대로 지난 연말에 나온 한일 외무장관 간의 위안부 문제 합의는 한일 관계의 의미 있는 진전인 것인지. 하지만,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이해해 보겠다는 다짐을 지키기가 힘들었습니다.
과거 일본 측이 내어 놓았던 입장들과 비교하니 이번 합의가 최선의 결과라는 우리 정부의 얘기에 의아함만 커져 갔습니다. 우리가 얻은 것은 최대한 크게, 우리가 내어준 것은 최대한 작게 해석해 보자. 하지만, 일본은 “배상금은 아니다”는 등의 명확한 말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기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념 담화에서 왜 이런 합의를 했는지 설명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30분 가까이 진행된 담화문 발표에서 ‘위안부’ 세 글자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연출됐다고 비판받는 기자회견에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온 최선의 결과였다.” 외교부가 홍보하고 있는 입장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군의 관여’, ‘아베 총리의 사과’, ‘일본 정부 예산 거출’. 외교부가 이번 합의의 3대 진전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것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해 온 3가지 조건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대통령의 말 대로라면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 사안이 이번 합의에서 실현된 것인데 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반발하고 있는 것인지, “어느 나라 외교부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리고 위안부 합의 이후,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우리 정부는 왜 반박 성명 하나 내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해 봤습니다. 왜 정부와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라고 이야기 하는지, 그리고 그 전제로 삼고 있는 ‘주어진 상황’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아봐야 왜 지금의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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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정부
협상 이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차는 컸습니다. 대통령은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주장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규명, 국회결의사죄,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이라는 7대 요구 사항이 이뤄져야 납득할 수 있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오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으로 위안부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 만약 돈을 내어놓더라도 민간자금 위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기존 입장에 더해 아베 정부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 한일 양국 간 위안부 문제 합의가 있을 경우 그것이 위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문제와 관련한 최종적 해결임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를 추가했습니다.
우리 측이 요구하는 법적 배상 혹은 법적 책임 인정은 일본이 오래 전부터 수용을 거부해 왔던 조건입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법적 배상과 진상 규명 등의 내용이 빠진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죠. 각자의 핵심 요구 사안이 상대의 핵심 이익과 충돌하는 이해 상충 상황. 이러한 상황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역대 정부에서 주요하게 다뤄졌지만 매듭지어지지 못한 이유가 한일 양국 간 현격한 입장차에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아무런 내용이 없는 합의가 이뤄지면 후폭풍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요.
전문가들은 위안부 문제는 시간에 구애 받으면 졸속 협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으니 서두르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와 연계해 올인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이번 북한 핵 실험과 같이 일본과 연대해야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역사 문제와 한일 관계를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시민사회계는 위안부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적극 연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가 인권 문제인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식의 요구를 감히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선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우리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다른 국가와 연대하며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제가 과문해서인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제회의 등에서 위안부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입장이 바뀔 일본 정부였으면 이 문제가 지금까지 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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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으로 실패한 한일 위안부 협상
전선이 불리하더라도 반드시 패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을 구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게 전쟁 지휘관에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일본 정부와 협상이라는 전쟁에 나서는 외교관들에게도 이런 숙명이 주어졌습니다. ‘주어진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리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죠.
로버트 퍼트남이라는 정치학자가 주장한 양면 게임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국가 간의 협상이라는 건 양국 정부 간의 게임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사회) 간, 그리고 국민이 정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국가 간 협상은 협상에 나선 대표의 결정만이 아니라 양국의 여론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국민의 반발 등을 뒷배로 협상 대표가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는 범위를 축소시킬 때, 즉 자신의 손을 묶는다면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양면 게임 이론은 설명합니다. 촛불 시위 등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해 재협상이 이뤄졌던 게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양면 게임 이론에 따른다면, 한일 위안부 협상에 들어가기 전 외교부는 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비판할 게 아니라,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가 간담회도 열고, 요구 사안을 받아 적는 퍼포먼스라도 하는 등 오히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했어야 했습니다. 아베 정부에서 나온 위안부 관련 발언, 아베 정부의 위안부 관련 입장에 피해자들이 얼마나 반발하고 있는지, 우리 국민의 여론이 어떤 지를 적극 알리면서 협상력을 높여야 했습니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 게 서로에게 좋은 거 아니냐. 그런데 현재 국민 여론이 굉장히 안 좋다. 일본이 조금 더 양보해 달라"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절차 없이 협상장에 들어갔다면 다른 전략이라도 제대로 구사했어야 했습니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본 건은 당시의
군 관여 하에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낸 문제이다. 정부는 이 기회에 다시 새롭게 그 출신지 여하를 불문하고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무수한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걸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진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우리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식인들의 의견 등을 참고하면서 향후에도 신중히 검토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 중략 ……………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겠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동일한 과오를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금 표명한다.”(고노담화엔 단어가 주는 자발적 느낌 때문에 우리가 이제는 쓰지 않는 ‘종군위안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명칭에 일본 측 시각이 담겨있다는 점을 고려해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밑줄은 기자가 추가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각각 1993년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었던 관방장관 고노와 1995년 일본 총리였던 무라야마가 담화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고노담화에는 이번 합의에는 없는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역사 교육까지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군의 관여’, ‘총리의 사죄’ 등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요 요구 사안이었다는 박 대통령의 말은 현실을 오도했거나 참모들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결과로 보입니다. 아무튼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는 협상 전 ‘주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준거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누군가 문제를 먼저 제기할 경우 그것이 준거점이 되어버린다는 개념입니다. 형사 재판에서 검사의 구형은 검사의 의견일 뿐이지만, 형량을 정하는 판사의 판단에 실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번 합의에서 우리 정부가 정말 위안부 할머니들의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면, 이런 주어진 상황을 적극 활용했어야 했습니다. 아베 정권이 고노담화를 재해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고노담화를 협상의 준거점, 앵커로 삼았어야 했습니다. 고노담화보다 진전된 입장을 내놓으라고 압박했어야 했습니다. 최소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한다’는 문구라도 합의문에 넣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진전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무리야마 담화의 존재라는 ‘주어진 상황’을 이용해 아베 총리의 사죄를 일본 외무상이 대독할 것이 아니라 직접 사죄 담화를 발표하도록 설득했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합의 사항으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것이라 아니라 일본 정부의 사죄가 다시 번복 되지 않도록 일본의 사죄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어야 합니다.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 불만은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게 그 수준의 이행을 요구하는 게 무리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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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타결’이 협상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앞서 얘기한 내용을 협상에 나섰던 외교관들이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국민 여론이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모른 채 자신들이 진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소위 전문가의 역설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면 이번 합의가 최선의 결과라고 내심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지금과 같은 합의를 하고,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반박 성명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지난해 11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양국 정상은 “위안부 문제를 가능한 조기에 타결하기 위해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연내 타결(2015년)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조기 타결을 주장하며, 연내 타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주장해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가능한 조기에 타결한다는 양국 정상 간 합의문은 일본 측 주장이 더 강하게 반영된 결과인 셈이죠.
그런데 왜 일본 정부는 언론 플레이까지 하면서 먼저 외무장관 간의 위안부 협상을 하자고 운을 뗐던 걸까요? 그 속내는 제쳐두고서라도 연내타결을 주장해 온 우리 정부는 이때부터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가 줄곧 주장해 온 ‘연내타결’이라는 목표를 이룰 기회를 일본이 먼저 준 것이니까요. 일본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에게 큰 선물을 줬다고 생색낼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겁니다.
다시 퍼트남의 양면 게임이론입니다. 국민 여론을 핑계로 협상팀의 손을 묶는 전략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 단점이 있습니다. 판 자체를 깰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양면게임이라는 기본서에 나오는 전략을 우리 협상팀이 활용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해서 든 연내(2015년)에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내 타결’이라는 주어진 상황이 협상팀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을 수도 있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우리 측이 먼저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제의했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연내 타결에 목을 맬 필요도 없는 일본을 붙잡기 위해서는 선물이 듬뿍 필요했을 겁니다.
‘최종적’에 더해 다시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불가역적’이라는 선물과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보너스, 그리고 혹시나 있을 일본 우익의 아베 정부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소녀상에 대한 언급까지.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나온 일본 총리와 정치인의 발언에 외교부가 비판 논평 하나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연내에 타결된 위안부 합의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부는, 그리고 대통령은 위안부 협상의 연내 타결(2015년)에 목을 맸던 걸까요?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46명밖에 남지 않은 현실을 고려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왜 지난 3년 동안은 아무런 진전을 못 이뤘던 건지, 2014년에는 그리고 2013년에는 절박함이 없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왜 ‘연내 타결(2015년)’에 집착했는지 다시 한번 설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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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 불가역적’, ‘비판 자제’는 일본 측의 현실적인 목표였을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번 합의에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보수화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아베 정권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이만하면 의미있는 진전을 이룬 거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결과가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합의 종용이라는 변수는 한일 양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우리에게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변수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보수화되고 일본’이라는 상수는 바꾸어 말하면 아베 정권보다 더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서 지금의 사죄를 뒤집을 수도 있는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이제 이 문제를 논의하지 말자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합의 결과에 넣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혹자는 또 말합니다. 비현실적인 법적 배상에 매달리지 말고, 이번 합의를 시작으로 차츰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자고. 민주당 정부에서도 받지 못한 법적 배상을 아베 정권에서 기대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도 수준의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고, 국제 사회에서 비판하지도 않겠다는 말을 받아내는 게 일본 측에게는 현실적인 목표였을까요?
한일 양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후 나라는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서 더 강한 국가를 만들자는 폭력적인 이야기가 ‘엄마’들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배의 기억을 직간접적으로 더 강하게 가지고 있을 ‘어버이’들이 같은 연배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있는 게 지금의 풍경입니다.
어느새 위안부 합의에 대한 찬반은 진보와 보수, 세대 간 갈등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풍경을 만든 위안부 합의는 정말 이렇게 밖에 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정부의 말대로 이게 최선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