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수소탄 실험' 여진
북한의 이른바 '수소탄' 실험에 동북아 정세가 출렁이고 있다. 첫 핵실험 뒤 요동을 쳤다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벌써 4번째 핵실험이고 진정 북한이 정말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수소폭탄은 핵무기 중의 핵무기로 5대 핵강국들만 보유하고 있다. 5대 핵강국은 공교롭게도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다. 북한이 터뜨린 것이 진짜 수소폭탄이라면 경악할 일이지만 미국의 핵무기 전문가들은 회의적 반응들이다. 미 행정부는 1주일이 지나도록 분석 중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는 13일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에 나선다. 오바마는 국내 이슈인 총기 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입법권을 가진 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미국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를 얼마나, 어느 선에서 언급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핵협상을 외교 치적으로 내세울 텐데 그러려면 북한 핵에도 답을 내놔야 한다. 올 3월에는 오바마 대통령 제안으로 창설된 핵안보정상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린다.
● B-52, 동맹국을 안심시켜라
미국은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차원에서 B-52 전략폭격기를 띄웠다. 태평양 전진 군사기지인 괌 섬에서 한반도로 날아와 휴전선 남쪽을 가로지르며 한 바퀴 돌고 갔다.
B-52는 B-2 같은 전폭기와 함께 가공할 핵전력이다. 핵무기를 수십 발 싣고 다니며 발사하거나 투하할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인 ICBM, 잠수함발사미사일인 SLBM과 함께 핵우산의 한 축을 이룬다. 핵우산에다 첨단 재래식 전력, 미사일 방어망까지 포괄하는 게 억제력이고, 자국의 억제력으로 동맹국까지 지켜 주겠다는 것이 확장 억제력이다.
물론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B-52에 핵무기는 실려 있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가는 즉각 과거 한국 정부가 했던 핵부재 선언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무엇보다 9.19 공동성명 위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옛 소련이 붕괴할 무렵 조지 H. W. 부시 행정부가 유럽과 한반도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던 정책에 배치된다.
B-52 투입은 그저 무력시위일 뿐이라지만 시위라도 이번에는 달랐다. 그 단단한 근육질의 몸체를 근접 촬영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줬다. 동맹국인 미국에 든든한 핵전력이 있으니 북한의 핵실험에 겁먹지 말고 안심하라는 취지다.
한반도에 핵 확장 억지의 기제는 이미 작동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 공격을 감행하려 한다면 미군 핵전력의 보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태평양엔 SLBM을 장착한 미 해군의 SSBN급 잠수함들이 숨어 있다. 알래스카엔 ICBM 기지가 있고 또 B-52 같은 전폭기가 몇 시간 만에 날아올 수 있는 것이다.
억지력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굳이 미국이 B-52를 친절하게 보여준 건 억지력에 더해 보장, 안심시키기(assurance, reassuarance) 차원에서다. CNN 방송에 나온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B-52 투입은 '안심 조치'였다며, 그것은 중요하다고 답했다. '억지력'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도 골치지만 핵실험 직후 한국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독자적 핵보유 주장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워싱턴에서는 과연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할 것인가가 북핵 못지않은 관심사다. 미국 핵억지력 증강의 명분이기도 하다.
● 핵강국들의 손가락질
그런데, 미군 B-52 전폭기 투입이 또 다른 차원의 파장을 낳았다. ‘수소탄 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공동의 대응안을 마련하기도 바쁜데 핵강국들이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국무부 취재진 앞에서 중국을 대놓고 비판했다.
“중국 나름의 접근법이 있었다. 미국도 동의하고 존중해서 그것을 시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작동하지 않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business as usual) 지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중국 사람들에게 분명히 전했다”며 비외교적 언사를 쏟아냈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도 시진핑 주석이 백악관 앞뜰에서 한 말이 있다며 중국을 압박했다. 지난해 9월 미중 정상회담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국이 걸핏하면 안정을 얘기하는데 핵을 가진 북한이 중국에 안정 시나리오는 아니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두 답변은 미국의 북핵 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 이란핵에 치중하느라 북핵은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항변이었다. 비판의 화살을 중국 쪽으로 돌린 것이다. (케리는 사실 의회에 쌓여 있는 외교 공직자 인준안을 빨리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하려 언론 앞에 선 것인데, 기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핵실험 직후 강경하게 대응하는 듯 했던 중국은 시간이 지나자 기존의 3원칙을 들고 나왔다. 왕이 외교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재론했다. 앞서 한국이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을 재개하고 미국은 B-52 전폭기를 띄운 뒤 나온 중국 측 반응이다.
러시아 쪽에서도 미국의 B-52 투입에 "독자행동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관련국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기다려야 하며 북한을 상대로 독자적 대응 조치를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핵강국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는 동안 웃고 있을 사람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유엔 안보리를 통해서든, 6자회담 대화 채널을 통해서든, 3자나 4자 협의를 해서든 관련국들은 진정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뭔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행위는 다른 쪽의 일방행위를 부를 수 밖에 없다.
어느 한 측이 북한의 핵실험 도발을 동북아 안보 지형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지형을 재편하기 위한 호기로 삼고자 한다면 단합된 대응은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