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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원순-신연희, 술잔 부딪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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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과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이 말이 제일 간명하더군요. 양 측은 서울시와 강남구가 연관된 사안마다 매번 충돌합니다. 어떨 땐 의견 대립을 넘어 감정의 골까지 드러내기도 합니다. 

구룡마을 사건부터 비롯된 갈등은 올해 한전 부지 개발 공공기여금 사용 문제로 소송전을 불사하며 충돌하더니, 메르스 사태 대처 방식에선 감정적인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강남구가 서울시에서 분리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고, 서울시장 비방댓글 전담팀을 운영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판이니, 이만하면 박원순-신연희 갈등이 올해 서울시 핵심 뉴스 중 하나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출입기자들 뿐 아니라 다른 구청장들 사이에서도 널리 회자됩니다. 두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두 사람 얘기가 늘상 화젯거리가 되곤 합니다. 혹자는 신연희 구청장이 정치적 노림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트집을 잡고 있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자치구 중에 제일 돈 많은 강남구가 여러모로 서울시에 섭섭할 수 밖에 없다는 말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어쨌거나 저쨌거나 두 사람은 흔히 정치적 앙숙, 견원지간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년 중 가장 밤이 깊다는 동짓날인 지난 22일 밤, 서울 시내 모처에서 작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용산구 한남동 모처에서 조촐한 모임 행사가 있었는데, 박 시장과 서울시 25개 구청장이 모여 시구정 간담회를 하는 연례행사, 쉽게 말해 송년회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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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은 부부동반 자리이기 때문에 박 시장과 남성 구청장은 부인을, 여성 구청장은 남편을 대동하고 참석합니다. 시장과 구청장의 간담회, 또는 구청장들끼리 모이는 간담회가 종종 있지만 이런 부부동반 모임은 연중 이 때 딱 한 번이라고 합니다. 이날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구청장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구청장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평소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간담회 참석을 잘 안하는 편입니다. 구청장들끼리 모임에도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사를 주최한 서울시측은 신 구청장은 물론 신 구청장 남편 자리까지 당연히 마련해놨지만, 신 구청장이 이번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다른 구청장들의 예상이었습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박 시장과 으르렁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오고 싶은 마음이 없을거라 생각한 거죠.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신연희 구청장이 송년회 자리에 나타난 겁니다. 당연히 다른 여성 구청장처럼 남편을 대동한 채 모임 시간에 꼭 맞춰 도착했습니다. 사실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인 신 구청장의 남편 김 모 씨는 구청장들 사이에선 꽤 익숙한 인물입니다. 구청장들을 상대로도 전혀 거리낌없이 자신의 할 말은 다 하는, 다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 구청장의 예상 밖 등장에 함께 참석한 구청장들은 반가워하면서도 혹시나 송년 모임자리에서 가시돋힌 언사가 오갈까 노심초사했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불식시킨 건 다름 아닌 신 구청장의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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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희 강남구청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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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여성 구청장들 남편 모두에게 한 말씀 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 구청장 남편 차례가 돌아오자 갑자기 주섬주섬 준비된 원고를 꺼내들었다고 합니다. 꽤 정성껏 정리한 원고를 들고 남편 김씨가 발언을 시작했는데요, 원고를 준비했다는 건 즉석에서 생각나는대로 말했다기보다는 미리 이런 말은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현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남편 김 씨의 발언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 씨는 박원순 시장을 모 대학원 강의 때 한번 봤는데 송년 모임에서 다시 봐서 반갑다는 인사로 발언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으레 그러려니 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이 좌중을 놀라게 했습니다. 김 씨는 박 시장에게 "제 안사람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으신 걸로 안다"고 한 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겁니다.

듣기에 따라선 사과로 읽힐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김씨의 이 발언이 나오자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신 구청장의 표정을 재빨리 쳐다보게 됐는데, 신 구청장은 남편의 발언에 전혀 불편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박원순 시장도 김 씨의 발언에 마음이 풀렸는지, 강남구청장 내외와 따로 나와 술잔을 부딪치며 함께 건배사를 하며 연신 싱글벙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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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분위기는 시종 일관 웃음꽃이 만발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흘렀다고 합니다. 다른 구청장들도 신 구청장에게 "와줘서 고맙다. 오늘 특히 더 고맙다"는 말을 연신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예상 밖 상황이었던지 저에게 이 날의 상황을 전해 준 구청장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송년회 자리에서의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이지만, 올 한해 박 시장과 신 구청장의 관계를 놓고 봤을 땐 이마저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올 한 해 두 사람이 웃고 지낼 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제발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다른 구청장의 발언을 놓고 보면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도 올 한해 적잖이 불편했다는 얘깁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단지 좋은 게 좋은 거다, 모든 일에 허허 웃고 대강 넘기자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자치단체끼리 의견 대립과 충돌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런 충돌을 타협하면서 해결해가는 게 리더의 몫 아니겠습니까? 

말이야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런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는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송년회의 예상 밖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단지 비공개 모임 자리뿐 아니라 공식석상에서도 이어지길 바라며, 내년엔 박원순-신연희 갈등 뉴스가 더 이상 회자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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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엽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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