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현대자동차는 의미 있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름 하여 ‘마음 드림’ 행사. 현대차 고객들을 직접 만나 불만을 듣고,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현대차가 고객을 직접 만나 설명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하지만, 이전 두 번 행사가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국내에서 가장 큰 자동차 인터넷사이트 중 하나인 ‘보배드림’ 회원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보배드림’엔 현대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회원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저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더 컸습니다.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그런 자리가 아닌 냉철하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오가는 모습을 예상하며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 고객을 배려하지 않은 행사장 선정
하지만, 기대가 아쉬움으로 바뀌는 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불편하게 느낀 건 행사장 위치였습니다. 행사장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한 호텔로,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직전 거리로 700미터가량 떨어져 있었습니다.
차를 이용해도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현대차 측은 접근성이나 카메라 설치 등 행사진행에 있어서 편의성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둘러보는 일정이 있어 동선을 고려해 행사장을 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행사가 평일 저녁에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행사장을 서울 동남쪽에 치우친 강남보단 접근성이 더 좋은 서울 중심부로 정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직장과 개인적인 일정으로 개별적으로 행사장까지 이동하는 참석자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현대차는 행사장을 행사 전날에 통보했고, 일부 회원들은 그마저도 장소 공지 문자도 받지 못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 실수로 참석자 명단에서 제외돼 행사장에 가지도 못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행사장 위치 선정부터 안내까지, 고객에 대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 ‘준비된 설명’의 불편함
회사를 대표해 행사장에 나온 사람은 현대차 곽진 부사장이었습니다. 곽 부사장은 국내영업본부장으로 국내 영업을 총괄하는 수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고객이 이런 고위급 임원의 얘길 직접 듣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를 사측이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는지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신선함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행사 진행 대부분이 사측이 준비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쳤기 때문입니다. 행사 시작은 인터넷으로 사전에 받은 질문 접수 집계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해 사측이 미리 준비한 영상물과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논란이 된 내수용-수출용 차량 사양에 차이에 대해서도, 차량 충돌테스트 영상을 보여주며 사양엔 차이가 없다고 오랜 시간 설명했습니다. 설명은 길고 자세하고 꼼꼼했지만, “고객 여러분이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기대했던 참석자들은 실망스럽단 반응을 보였습니다. 서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열띤 토론을 기대했는데 ‘준비된 설명’을 강요받는단 기분까지 들었단 겁니다. 실제로 한 참석자는 “마치 ‘현대자동차학’ 강의를 듣는 거 같았다.”라고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우리가 원하는 건 설명이 아닌 질문이었다.”
행사 내용과 별개로, 사회를 맡은 사내 아나운서의 진행은 탁월했습니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능수능란한 진행으로 참석자들이 제대로 질문을 하지 못했단 점입니다.
“이제 다 이해가 되셨죠?”, “모르는 분들 없으시겠죠?” 회사 측에서 준비한 긴 설명과 진행자의 이런 반문에 참석자들은 질문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참석자가 했던 질문은 7개 정도였고, 그 가운데서 곽 부사장과 치열한(?) 언쟁을 주고받은 건 박병일 명장 고소 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차는 박 명장을 업무방해와 허위사실 유포로 박 명장을 고소했는데,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그나마도 곽 부사장이 “검찰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무죄로) 판단하겠지만, 현대차의 입장도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라고 대답을 얼버무렸다가 참석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옳다. 잘 모르면 떠들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아 기분이 나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설명이 아닌 질문이었다. “라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물론, 시간상 질문을 많이 받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사 시간을 늘리든지, 그게 여의치 않다면 영상 상영을 시간을 줄이고 질의-응답시간을 늘렸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 “이전 행사 때도 이랬어?”
행사가 싱겁게 끝났기 때문일까요? 행사를 마친 회원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전 행사도 그랬어?” "보배드림"이란 이름 때문에 긴장해서였을까요? 블로거의 날카로운 질문과 그에 대한 솔직한 회사 측의 답변, 이런 걸 기대했던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고객을 직접 만나 설명하겠다며 행사를 준비한 회사 측 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또, ‘민낯’으로 진심으로 고객들을 만나겠다는 진정성도 의심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행사가 자주 있는 게 아니라면, 또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려면 더 과감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 “우리 의견이 당신 의견과 다를 때 더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감정 관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워싱턴대 존 가트만(John Mordecai Gottman) 교수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행복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옳아지고 싶습니까? (Do you want to be happy or right?”) 가트만 교수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답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설령 당신이 옳다고 해도 그걸 무리하게 강요하면 서로 느끼는 감정은 나빠질 수밖에 없단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객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회사 측의 노력은 치열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대학 경영학과 수업을 듣는 거 같았다.”라고 말한 한 참석자의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을 겁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특히, 우리 의견이 당신 의견과 다를 때 더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I will listen to you, especially when we disagree.)” 청이득심(聽以得心), ‘누군가의 말을 잘 들음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그런 발전된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