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일본 만화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창 재미있게 보던 중에 전화를 주셨군요. 하하…." 만국공통어 '에스페란토' 탄생을 기념하는 '자멘호프의 날'인 15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장인 이영구(63) 한국외국어대 중국언어문화학부 교수는 유쾌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12월 15일 '자멘호프의 날'은 에스페란토를 창시한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태어난 날이다.
이 회장에 따르면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이날을 전후로 한 데 모여 에스페란토로 된 책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도 지난주 토요일 서울 우이동에 모여 156차 자멘호프의 날을 기념했다.
이날 이 회장은 일본 만화 '불새'(데즈카 오사무 작)의 에스페란토 번역본을 선물 받았다.
이 회장은 "만화책을 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에스페란토는 자국민끼리는 모국어를 쓰고 외국인끼리는 하나의 공통어를 쓰자는 취지의 '1민족 2언어'를 주장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인공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00만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1만명 이상의 에스페란티스토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은 "에스페란토는 평화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에스페란토 창시자 자멘호프 박사는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에서 태어났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 지역은 폴란드인, 러시아인, 독일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아 갈등이 심했다.
자멘호프 박사는 그들이 싸울 때면 막무가내로 각자의 언어로 고성을 지르는 것을 보고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해 에스페란토를 만들었다.
이 회장은 "평화를 가장 숭고한 가치로 여기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지금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지역인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제102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서울 한국외대에서 열리는데, 이는 평화를 강조하는 에스페란토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대회 기간 80여개국에서 온 2천여명의 참가자가 통역 없이 에스페란토로만 평화와 통일을 논할 예정이다.
각국 문화를 에스페란토 공연·전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 회장은 "에스페란토 정신은 언어가 전 인류를 관통하는 하나의 길이 되리라는 믿음"이라면서 "한국협회는 이 정신을 받들어 2017년 전 세계에서 오는 참가자들이 평양을 거쳐 기차 편으로 서울로 들어오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통일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정치·외교와 무관한 순수 문화행사를 위해 세계 각지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양을 통해 서울로 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에스페란토가 세계적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때는 1900∼1920년이다.
고종 황제도 에스페란토를 익혔고 박헌영, 작가 홍명희 등이 큰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1차 대전을 전후로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세계 공용어를 통한 평화'를 주창한 에스페란토가 주목받은 것은 평화를 좇는 인류의 본성을 나타낸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는 "'이슬람국가'(IS)가 테러를 벌이고 유럽에서는 극우민족주의가 세를 키우는 지금이 에스페란토를 통한 '파쪼'(Paco: 평화를 뜻하는 에스페란토)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