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있는 이 고풍스런 건물, 며칠 전 뉴스에서 소개해 드렸었는데 기억하실런지요? 워싱턴을 '화성돈'이라고 부르던 대한제국 시절 대미 외교를 위해 설치했던 공사관으로 지금으로 치면 주미 대사관입니다.
일제에 빼앗겼다가 100여 년 만에 되찾아서 이제 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하기 위한 첫 삽을 떴는데요, 이 곳엔 자주 외교를 향한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우식 특파원의 취재파일입니다.
[오수동/국외문화재재단 사무총장 : 자주독립 외교의 역사의 현장이고, 한미 우호의 요람입니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공사관이 세워질 당시 조선은 러시아와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청나라의 내정간섭으로 미국에 상주 공사관을 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 주미공사관의 지시 아래에서만 대외업무를 수행한다는 조건부로 공사 파견을 허락받았는데요, 두 달간 배를 타고 일단 미국으로 도착한 공사단 일행은 자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이런 조건부 허락을 무시하고 당시의 22대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의 국서를 전달했습니다.
건물을 임대해서 공사업무를 시작한다고 통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888년 첫 주미 공사관이 탄생한 건데요, 3년 뒤에는 고종이 아예 자신의 개인 사재를 털어 건물을 사들였습니다.
그 당시 외교 예산의 50%에 해당하는 2만 5천 달러라는 거금을 쏟아부었으니 자주 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이토록 어렵사리 마련한 공사관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기능을 잃어버렸고 그로부터 5년 뒤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단돈 5달러에 이 건물을 어느 미국인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 정부가 다시 40억 원을 주고 이곳에서 거주하던 한 미국인 부부로부터 건물을 재매입한 겁니다.
대한제국 주미공사관은 한반도에서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구한말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등 격변의 시기를 목격하고, 또 한 차례 화재까지 겪었는데요, 그런데도 그 시절 워싱턴에 들어선 30여 개 국가의 상주 공관 중에서 유일하게 내외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1년간 진행될 복원 작업이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격동의 시대를 다시 조명하고 평가하는 제대로 된 역사의 작업이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