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이 그쪽(북한)보다 상황이 나을 텐데 죽은 줄 알고 포기해서 동생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우리 측 상봉단에 포함된 전주의 임옥남(86) 할머니는 동생을 먼저 찾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을 훔쳤습니다.
임 할머니의 동생 옥례(82)씨는 17살인 1950년 고향인 전북 완주군 삼례읍 하리에서 "북으로 가면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북한군의 꾐에 북으로 따라 올라갔습니다.
임 할머니는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그렇게 아버지를 조르고 많이 울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며 "6남매 중 둘째딸을 공부시키기에는 부담이던 시절이라 결국 공부를 못 시켰고, 6·25때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동생이 북한군을 따라갔다"고 동생과 헤어진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머리가 좋고 똑똑했던 여동생에 대한 기억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홀연히 떠난 동생을 65년간 못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임 할머니와 가족들은 집 떠난 동생을 기다렸지만 이내 소식이 끊겼습니다.
가족들은 '똑똑한 아이니까 꼭 다시 찾아올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동생 짐을 정리하다가 공부에 대한 포부와 중학교 진학을 못한 슬픔 등이 빼곡히 적힌 일기장을 발견했다"는 임 할머니는 "아버지께서 그걸 보시고 평생을 '내가 공부를 안 시켜 딸을 잃었다'며 슬퍼하셨다. 항상 베갯잇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셨던 게 기억난다"고 울먹였습니다.
임 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동생을 위해 옷과 내복, 양말, 치약, 칫솔 등을 손수 준비하며 상봉할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비교적 건강해 거동도 불편하지 않다는 임 할머니는 "만나면 먼저 찾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아버지와 오빠가 얼마나 기다리고 그리워하셨는지를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혼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간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