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비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추진하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추석 후 유통업계 합동 할인) 행사가 업계와의 충분한 협의나 준비 과정 없이 진행되면서 계속 잡음과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최대 50∼80%" 등의 홍보 문구가 난무하지만 할인율 기준은 모호하고, '졸속' 논란에 놀란 유통업계가 추가 세일에 나서자 이미 상품을 구입한 고객들은 한순간에 '호갱'(호구+고객·어수룩해서 이용당하는 손님) 처지가 됐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오영식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가한 일부 유통업체들은 정가를 부풀린 뒤 그 기준으로 할인율을 적용해 소비자는 결국 평소 시중 가격보다 더 비싼 값에 할인 상품을 샀습니다.
오 의원이 제시한 실례를 보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상품으로 96만 원에 판매된 정가 172만 원짜리 TV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서 78만 원에 살 수 있었습니다.
한 대형마트에서 1천290원짜리를 1천200원에 판다고 광고한 초코과자의 실제 최근 1개월간 평균 가격은 900원대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할인율 뻥튀기' 문제는 이미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위해 정부가 할인율 표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순간부터 예견됐다는 게 유통업계의 지적입니다.
지난달 22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가 배포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개최' 시행 관련 첫 보도자료를 보면, 정부는 "업체들이 참여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애로·건의 사항을 관계부처가 공동으로 사전에 해결했다"며 대표 사례로 '표시광고법 규제 적용 예외' 건을 들었습니다.
현행 표시광고법 하위 고시는 '자기가 공급하는 상품을 할인 또는 가격인하해여 판매하고자 하는 경우 허위의 종전거래가격을 자기의 판매가격과 비교해 표시·광고하는 행위'를 부당 표시광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종전가격은 '당해사업자가 당해상품과 동일한 상품을 최근 상당기간(과거 20일 정도)동안 판매하고 있던 사실이 있는 경우로서 그 기간에 당해 상품에 붙인 가격'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쉽게 말해 할인 시점으로부터 이전 20일 정도는 유지된 가격을 기존 가격 기준으로 제시하고, 그로부터 정확한 할인율을 밝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보도자료상 '조치 현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 행사(블랙프라이데이)를 특별한 경우로 인정해 해당 규제(표시광고법에 따른 종전가격) 적용을 제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광고하는 할인율에 대해서는, 기존 '종전가격 20일 유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추석 관련 할인행사가 끝난 뒤 곧바로 블랙프라이데이 할인 행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두 행사 사이에 20일 정도 종전가격을 유지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그래서 한시적으로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기간에는 추석 할인행사 이전 가격 등을 기준으로 할인율을 표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사실 업체가 이 한시 예외 규정을 악용하려고 들면, 오히려 평상시보다 비싼 가격으로 짧게 몇 일 동안만 팔다가 이 가격 기준으로 높은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율을 표시해 '미끼'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20일 규정을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불법 할인율 부풀리기를 공정위가 봐주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불공정행위가 발견되면 추석 전 가격이나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 1일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된 이후 "할인 품목과 할인율이 제한적이라 통상적 가을세일과 다를 게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유통업계가 고육지책으로 준비한 '추가 세일'도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반발이 일자 오늘(6일) 주요 유통업체들은 일제히 보도자료를 내고 "블랙프라이데이 할인 브랜드를 늘리고 할인율도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