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전인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일본은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1846~1926)의 지휘 아래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야만적 국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구마모토의 낭인 기쿠치 겐조(1870~1953)는 살해 가담자 중 하나이면서 이후 광복에 이르기까지 무려 52년간 조선에서 언론인 등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시해 사건은 물론 이후 한국사 왜곡과 유린에 앞장선 인물로 꼽힙니다.
"칼로는 왕비를 죽이고, 펜으로는 한국사를 유린했다." 오는 20일 공식 출간하는 이화여대 역사학 박사 하지연 씨의 '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는 이 같이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를 안겼던 주범 기쿠치의 활동상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출간사에 따르면, 저자는 흔히 쓰여온 '시해' 란 표현을 쓰는 데에서부터 신중할 것을 주문합니다.
기쿠치가 자신을 포함한 낭인 무리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1896년 집필한 '조선왕국'에서 그러했듯이 이에는 명성황후 살해의 주모자들이 대원군 세력임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입니다.
기쿠치가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명을 받아 1910년 펴낸 명성황후의 일생에 관한 저술 및 '조선잡기'(1931)와 '근대조선이면사'(1936) 등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 조선 집권층의 정치적 무능력함과 부패상을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춘 역사 왜곡의 전형들입니다.
그의 역사 왜곡이 폭넓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건 을미사변 현장에 있던 장본인이면서 흥선대원군과도 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어온 배경과 무관치 않습니다.
대중적인 전파력이 강한 통속적이면서 쉬운 문체 구사력 또한 그의 곡필이 우리 근대사에 가한 왜곡과 굴절의 굴레를 쉽게 떨어낼 수 없도록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는 기쿠치로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합리화하는 일본 보수 우익 세력 저변의 역사 인식을 발견합니다.
기쿠치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후에도 "본인이 실덕한 탓에 죽었다"고 합리화했듯 스스로의 범죄에 대한 인식에 앞서 상황논리와 합리화로 일관하고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입니다.
저자는 스스로의 집과 식구를 지키지 못한 집주인의 책임 또한 간과될 수 없다며 일본의 보수화에 냉철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