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진/사회자: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소설가 김훈 씨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 서문에 나오는 작가의 자전거 찬가인데요. 작가의 문장을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우리가 김훈의 글을 읽을 때 세련된 언어로 그린 삶의 풍경이 우리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다들 공감하시죠? 대한민국 최고의 문장가 김훈 작가가 이 가을 새 책과 함께 독자 앞으로 돌아왔는데요. <라면을 끓이며>라는 친근한 제목의 산문집입니다. 김훈작가 직접 모셔서 말씀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훈/ 작가 :
네 김훈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예.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 목소리 듣게 됐는데요. 건강하시죠?
▶ 김훈/ 작가 :
반갑습니다. 네
▷ 한수진/사회자:
요즘도 자전거 많이 타시고요?
▶ 김훈/ 작가 :
자전거 타기 아주 좋을 때죠.
▷ 한수진/사회자:
아 그렇죠. 근데 선생님 얼마 만에 새 책으로 독자 앞에서 서 신거죠?
▶ 김훈/ 작가 :
한 3년이 넘은 거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그동안 뭐하셨어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것 같은데요.
▶ 김훈/ 작가 :
장편소설을 쓰려다가 완결을 못하고 미뤄놓고.. 그러고 있었죠. 완성을 해야죠.
▷ 한수진/사회자:
이번에 나온 책이 산문집이잖아요. 그동안 써오셨던 산문집에 쓰셨던 내용도 다소 들어있던 것 같은데요.
▶ 김훈/ 작가 :
네 제가 그동안 낸 산문집이 여러 권 있는데, 그동안 3권을 정리해서 없애버리고 그중에서 글 몇 편을 추리고 새로 쓴 글들을 보태가지고 엮어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선생님 왜 그 3권의 책을 없애버리려고 하세요?
▶ 김훈/ 작가 :
세월이 지나면 풍화되고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글이 바스러져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몇 편은 더 챙겨 놓고 나머지는 버렸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래요 글들이 바스러졌다... 그런데 선생님 이번에 책 제목이 인상적이던데요. <라면을 끓이며>?
▶ 김훈/ 작가 :
제목 괜찮아요?
▷ 한수진/사회자:
네. 어떻게 선생님도 종종 라면을 끓여 드시는 거예요?
▶ 김훈/ 작가 :
전 어렸을 때부터 소년 시절부터 라면을 많이 먹었죠. 우리 그때 63년에 처음 나왔거든요. 중학교 때 라면뿐 아니라 짜장면 무슨 이런 것을 장복을 했습니다. 인이 박인 겁니다.
▷ 한수진/사회자:
장복을 하셨어요. (웃음)
▶ 김훈/ 작가 :
장복. 장복
▷ 한수진/사회자:
참 오랫동안 드셨다는 말씀이신데, 근데 책 제목을 이렇게 잡으신 데는 뜻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김훈/ 작가 :
난 끓이며 끓인다는 동사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영어로 말하면 보일(boil)이거든요. 그냥 물이 끓는 물리적 현상을 말할 뿐이에요. 그죠? 라면은 우리가 끓인다고 할 때는 그 음식을 준비하는 개인의 삶이 거기 들어가 끓인다는 동사에는, 라면은 누구나 끓일 수 있어요. 봄나물이나 이런 건 전문가들이 엄마나 부인들만 할 수 있잖아요. 너무 어려워서.
▷ 한수진/사회자:
네 쉽지 않죠.
▶ 김훈/ 작가 :
라면은 누구나 끓일 수 있는 개인의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음식 만드는 동작이죠. 그래서 <라면을 끓이며>라고 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자전거 여행>에 보면 봄나물을 먹으며 라는 글도 있잖아요?
▶ 김훈/ 작가 :
봄나물은 나는 끓일 수가 없어요. 집사람이 해줘야 먹기만 하고 그거는 굉장히 섬세한 거거든요. 라면은 누구나 어린애도 끓일 수 있으니까 누구나 개인의 체험 속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동작이죠. 라면 끓인다는 건.
▷ 한수진/사회자:
먹으며, 끓이며 이렇게 다른 의미가 있네요. 또
▶ 김훈/ 작가 :
엄청 큰, 천지 차이가 있는 거죠.
▷ 한수진/사회자:
천지차이가 (웃음) 아니 근데 선생님 라면이 가지고 있는 함의 좀 더 정확하게 말씀해주세요.
▶ 김훈/ 작가 :
라면은 그냥 공업적으로 대량생산되는 음식이고 그리고 또 싼 음식이잖아요 800원이니까 그거보다 싼 음식은 아마 없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대량으로 소비하고 낱개로 소비하고, 개별적인 것인 동시에 집합적인 것이죠. 대중사회에 한 대표적인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라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러면 선생님, 이 책에 보면 챕터가 밥, 돈, 몸, 길, 글 이렇게 5개의 간명한 단어로 나누어져있잖아요. 그것도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요?
▶ 김훈/ 작가 :
그것은 다 인간의 일상을 말하는 거죠. 일상, 매일 매일의 생활 하나의 챕터로 삼은 것입니다. 라면도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죠. 저는 일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글이나 정치나 철학이 생활에 바탕을 상실하면은 그것은 다 허위이거나 관념이거나 인간에게 무익한 언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생활과 사실의 바탕을 확보하는 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러면 선생님, 먹는 다는 것,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김훈/ 작가 :
구석기 때부터 그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구석기 시대의 연장들 있잖아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 이런 거 있어요. 신석기 때가 되면 돌도끼 돌칼 이런 거 있잖아요. 박물관에 가면 다 있어요. 돌도끼 손잡이 돌칼 손잡이 보면 그걸로 사냥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렸던 남자들의 체취가 남아있어요 잘 보면. 그걸 보면 이게 나의 동료라고 생각해요. 이게 정말 나하고 똑같은 인간이 구석기 때부터 살아있구나 싶은 눈물겨운 생각이 들죠. 우리의 친구 나의 동료, 그런 걸 알 수가 있죠. 그건 영원한 거예요 밥벌이라는 건. 박물관에 가서 한 번 보세요. 돌도끼 돌칼을. 박물관에 가서 왕관만 보지 말고 고려자기 신라자기 왕관 무슨 이런 거보지 말고 그런 생활용품을 잘 보세요.
▷ 한수진/사회자:
선생님 그래서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표현을 하신 적이 있잖아요.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부리지 말고 주접떨지 마라.
▶ 김훈/ 작가 :
당당히 벌어와야 되는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돈과 밥의 두려움을 알아라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 김훈/ 작가 :
그것은 굉장히 엄숙한 문장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돈이란 인의예지의 기초다. 더 나아가서 이런 단언도 하셨던데요.
▶ 김훈/ 작가 :
그렇죠. 나는 돈이나 밥 건강 이런 게 말하자면 현세적 가치라는 거잖아요. 영어로 말하면 월드리(worldly) 현세적인 것 좀 더 폄하해서 말하자면 세속적인 것. 나는 이 현세적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경멸하고 물질로부터 자기가 초연한 듯 한 언동을 하는 사람을 나는 싫어해요. 돈은 소중히 여기고 돈을 귀하게 여기고, 돈을 잘 쓸 줄 알고, 이런 사람들을 나는 좋아해요. 배금주의를 하자는 게 아니고 돈의 소중함을 돈의 고귀함을
▷ 한수진/사회자:
돈을 버는 것이 절대적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게 좀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비루해보이지만 사실상 그게 존엄한 것이지만 그게 궁극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 김훈/ 작가 :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 먹고 산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겁니다. 이건 노동을 통해서 자기의 인격을 완성할 수가 있어요. 노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고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직업이라는 것은 그 일을 해서 밥을 먹는다고 해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에는 사회적 가치가 있어야 해요. 그 노동을 통해 자기를 구현할 수 있어야 그게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 단지 그걸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직업이 되기가 부족한 것입니다. 물론 밥을 못 먹는다면 그것도 직업이 되기는 어렵겠죠 그것도
▷ 한수진/사회자: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요즘 젊은이들 안타깝지 않습니까?
▶ 김훈/ 작가 :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사회적으로 기여를 하거나 그야말로 보람을 느껴보거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돼 있는데
▶ 김훈/ 작가 :
이것은 모든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는 거예요. 나 같은 늙은이한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겁니다.
▷ 한수진/사회자: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 김훈/ 작가 :
그렇죠 이것은 완전히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거예요. 왜냐면 젊은이들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지금 완전히 박탈당해 있으니까. 기성세대들의 절대적인 양보가 필요해요. 이 세상은 어쨌거나 젊은이들의 것이 되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는 자연사해야 되요 자연사 때가되면..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삶의 법칙이죠. 근데 젊은이들을 학대하고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게끔 배척해가지고 젊은이들이 세상에 끼지를 못하고 세상의 저 변두리 변방을 해매고 있으면 우리 사는 희망이 없는 거예요. 기성세대의 아름답고 절대적인 양보가 필요한 거예요.
▷ 한수진/사회자: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절대적인 양보가 필요하다.
▶ 김훈/ 작가 :
양보를 사회적으로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것 이런 일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거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 현재 정치적 리더십은 어떻게 보이세요?
▶ 김훈/ 작가 :
정치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인간의 노동을 보호해야하는 것입니다. 노동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정치권력이 아니에요. 그것은. 젊은이 이렇게 취직을 못해서 헤매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서 기성세대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리더십이 정말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죠.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끼지를 못해가지고 갈팡질팡하고 우왕좌왕하고 이런 거를 보니까 슬프고 답답하더군요. 우리가 젊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난했는데 그래도 젊은이들은 희망이 있었어요. 사회에 참여할 수가 있고 열심히 일하면 살 수가 있다는 희망이 있었죠. 지금 이렇게 풍요로운 사회가 됐는데
▷ 한수진/사회자:
먹고 살만해졌는데요.
▶ 김훈/ 작가 :
먹을 것이 너무 풍요로운 세상이 됐는데 여기서 다시 젊은이들이 소외당하는 것은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이런 일들이
▷ 한수진/사회자:
그렇죠. 우리 기성세대들 모두의 책임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말이죠. 선생님 팬들 중에서는 <칼의 노래>라든지 <남한산성>같은 이런 묵직한 역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 사실 많이 계시잖아요. 우리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또 준비하고 계시다고해서 많이들 기다리거든요.
▶ 김훈/ 작가 :
지금은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옆으로 밀쳐놨는데 기력을 회복해서 또 해야죠.
▷ 한수진/사회자:
많이 힘드시겠지만 선생님 조금만 힘을 내주십시오. 정말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김명순:
고맙습니다. 날짜를 박아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제일 급한 사람은 접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 한수진/사회자:
네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명순: 고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 한수진/사회자:
<라면을 끓이며> 라는 새 산문집 펴낸 김훈 작가와 말씀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