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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하자 베이너 하원의장…'노동계층 공화당원' 신화 저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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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에서 강경 보수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3번째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저소득 노동계층 출신이면서 미 의회 최고위직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49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레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조그만 술집을 운영하는 부모의 12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베이너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부모의 일을 돕는 등 청소년 시기부터 직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그러면서도 가족 중 최초로 대학을 졸업한 베이너는 소규모 플라스틱제품 판매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뒤 승진을 거듭하면서 사장에까지 올랐다.

기업인으로 입지를 다진 베이너는 1985년 오하이오 주 하원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1990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11연임 가도를 이어가면서 정치인으로서 자리를 굳혀갔다.

초선의원이던 베이너는 1990년 다른 6명의 초선의원과 함께 하원 의사당내 우체국과 은행의 비리를 없앤 일로 '갱 오브 세븐(Gang of Seven)'으로 불리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베이너는 공화당 안에서 당시 유력 정치인이던 뉴트 깅리치의 '공화당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1년 하원의장이 된 베이너는 그러나 정치현안을 주도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무조건적인 감세 같은 강경 노선만을 고수하는 공화당 보수파 사이에서 점점 입지를 잃어 왔다.

2012년의 '재정절벽', 즉 예산안 합의 실패에 따른 정부지출 자동삭감 위기 때부터 2013년의 연방정부 부분업무정지(셧다운) 사태,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오바마케어) 시행 같은 사안에서 공화당은 무리한 강경 노선으로 일관하다 어쩔 수 없이 협상에 나서는 행태를 되풀이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베이너 하원의장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11월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너 하원의장이 간신히 3선에 성공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국토안보부 예산안, 오바마 정부에 대한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부여, 이란 핵합의 등에서 공화당이 잇따라 오바마 정부의 뜻을 꺾지 못하게 되면서 지난 7월에는 공화당 하원의원이 베이너 의장의 사퇴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베이너 의장의 지도력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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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분석가들은 베이너 의장이 사퇴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더 이상 '반란'을 당하기보다 차라리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베이너 의장의 퇴진이 공화당 내 자중지란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가들은 예상했다.

강경 보수파들의 극단주의 목소리가 득세할 경우 공화당에 대한 국민 신뢰는 더욱 저하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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