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스템은 3.0, 현실은 0.5…‘정부 3.0’의 현실
정부 1.0 : 정부 중심, 효율성이 핵심 가치, 관 주도의 동원 방식, 일방향 행정서비스 제공, 직접 방문이 주된 수단.
정부 2.0 : 국민 중심, 민주성이 핵심 가치, 제한된 공개 및 참여, 양방향 행정서비스 제공, 인터넷이 주된 수단.
정부 3.0 : 국민 개개인 중심, 확장된 민주성이 핵심가치, 능동적 공개 및 참여, 능동적 공유 및 능동적 소통, 양방향 맞춤형 행정 서비스 제공, 무선인터넷과 스마트 모바일이 주된 수단.
요즘 관공서에 가면 ‘정부 3.0’이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 운영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삼겠다고 밝혔던 것이죠. 개방과 공유를 핵심 가치로 한다고 합니다.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해 조작적 정의를 했습니다. 그것이 앞서 소개한 ‘정부 1.0’,‘정부 2.0’과의 비교를 통한 ‘정부 3.0’ 설명이었죠.
방법론으로서 ‘정부 3.0’의 첫 번째는 정보공개입니다.(정부는 ‘능동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정보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 정부 스스로가 ‘정보 3.0’의 중점 추진과제의 첫 번째로 ‘공공정보 적극 공개로 국민 알권리 충족’을 꼽고 있죠. 정부 정보공개포탈(www.open.go.kr) 첫 화면에 ‘정부 3.0’이라는 단어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관공서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정부 부처 간 경진대회도 한 ‘정부 3.0’. 제대로 되고 있을까요?
● 전자파일 하나에 8만원…돈 때문에 제한되는 알권리
지난 달 저는 서울 각 구청에 관내 불법주차 단속 현황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자료는 엑셀 파일 형식으로 메일이나 정보공개사이트를 통해서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죠. ‘고질적인 주차난’이라고 ‘고질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민감할 것도 없고, 각 구청이 이미 축적하고 있는 자료였습니다.
대부분이 구청들이 자료를 공개했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수료였습니다. 엑셀 파일 하나를 공개하는 대가로 몇 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구청들이 속출했던 겁니다. 많게는 8만원을 부과한 곳도 있었죠. 25개 구청 자료를 모두 취합하려면 수수료로만 수십만 원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알권리가 제한되는 상황이 된 거죠.
구청들은 법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근거에는 전자파일과 관련된 규정은 없었습니다. 이를 묻자 해당 파일을 출력하면 몇 장 정도가 될 텐데, 그것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부과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벌어지지 않은, 아니 메일로 보내면 되기 때문에 벌어지지 않을 상황을 가정해 수수료를 부과했다는 것이었죠. 어이없어 하는 저에게 관행이다, 조례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담당자는 말했습니다.
안전행정부는 전자파일로 정보를 공개할 때 파일 크기 당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랬을 경우 8MB 정도의 엑셀 파일 공개 수수료는 700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과 더 넓은 접점을 가지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상당수는 ‘정부 1.0’ 수준에도 못 미치는 조례와 공무원들의 자세로 몇 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기초자치단체가 정보공개를 할 때 수수료는 조례에 근거) 중앙 정부는 경진 대회까지 개최해 가며 ‘정부 3.0’을 외치며 국민의 알권리를 강조하지만, 현실은 돈 때문에 알권리가 제한되는 ‘정부 0.5’ 정도 수준에 있는 겁니다.
● 부산세관이 조선소에 연락한 까닭은?
비싼 수수료지만 그래도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한 앞서의 사례는 나은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하는 버티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산에는 많은 수리조선소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선박의 건조보다는 수리를 주목적으로 하는 조선소입니다. 그런데 많은 수리조선소가 산재하다보니 세관에서 일일이 나가 통관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산세관은 수리조선소들과 MOU(상호양해각서)를 맺고, 세관이 해야 할 통관 업무 등을 조선소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권한의 일부를 위임했습니다.
걱정이 생깁니다. 식당 주인이 손님을 제대로 단속할 수 있을까? 혹시 제대로 소지품 검사 등을 하지 않아 선원들이 흉기나 무기를 들고 외출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실제 부산에서는 총기를 휴대한 러시아 선원이 도심을 활보하다 붙잡힌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부산세관에 MOU를 맺은 수리조선소 명단과 감독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부산 세관은 모든 정보를 비공개했습니다. MOU를 맺은 조선소 이름은 스스로가 보도 자료를 통해 밝히기도 했었는데도 말이죠. 부산세관은 조선소의 영업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의신청을 하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정보공개가 최소 30일 간 미뤄진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조선소 측, 그러니 제3자가 의견등록을 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소는 정보공개청구가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의견등록을 했을까요? 부산세관이 정보공개 청구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합법적입니다. 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보공개법은 정부나 공공기관에 공개가 청구된 정보가 제 3자와 관련 있을 때, 제 3자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의 대부분이 해당 기관이 아닌 제3자와 관련된 것인데, 모든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제3자에게 알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입법취지를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공개가 청구된 정보가 제3자의 기술 관련 내용 등 영업비밀과 관련이 있을 때로 한정되어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럴 경우 정보를 공개해도 될지 당사자에게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 제3자에 대한 통보와 의견접수 과정이 있는 거죠.
그렇다면 왜 부산세관은 수리조선소에 정보공개가 청구됐다는 사실을 통보한 것일까요? 조선소 명단은 자신들이 보도 자료를 통해 부분적으로 이미 밝혔던 정보이며, 자신들의 이행상황을 점검한 것의 공개여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일 텐데, 왜 조선소에 해당 정보를 공개해도 될지 의견을 구한 것일까요?
부산 세관의 비공개 결정에 이의신청을 한 날, 부산 세관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홍보담당관실 직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체 다 공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담당 부서에서 공개하기를 꺼린다.” 제3자 의견 등록으로 공개가 30일 이상 지연된다는 통보가 온 뒤, 다시 부산 세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는 전체 다 공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또 이야기 했는데, 담당 부서가 공개하기를 꺼린다.”
조선소 감독 임무를 맡고 있는 담당 부서와 조선소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담당 부서의 공개 거부 등으로 7월 17일에 공개를 청구한 정보를 계절이 바뀐 9월 5일에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의 2달만입니다.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속히 정보를 받길 바랍니다. 시의성을 놓친 정보는 빛을 바래기 마련이죠. 왜 부산세관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정보를 공개했던 걸까요?
● 서울 마포구청, 엉뚱한 자료 내놓고 큰 소리…창조적인 꼼수
2달 가까이 걸렸지만, 부산세관의 경우는 요청한 자료를 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마포구청 경우는 어떤 방식으로 공개가 거부될 수 있는지, 시스템보다 담당자들의 태도가 정보공개에 있어 왜 더 중요한지, 그리고 정보공개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서두에 말했던 주정차단속 관련 정보공개 청구 건입니다. 서울 마포구청에도 동일하게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어떤 형태의 자료를 요청하는지 담당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 형식이 담긴 파일도 청부해서 청구를 했죠. 마포구청은 몇 백 원 수준의 수수료만 부과하고 흔쾌히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결제를 하고 열어본 파일 형식이 이상했습니다. 엑셀 파일이 아닌 한글 파일이었습니다. 파일을 열어보니, 청구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엉뚱한 자료였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엉뚱한 자료가 왔다. 제대로 된 자료를 보내 달라.” 그런데 답변이 더 엉뚱했습니다. “이미 수수료도 내지 않았냐? 결제도 끝났다. 어쩔 수 없다.” ‘결제’를 강조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서 결제 라인에 있는 사람에게 바로 잡아줄 것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엉뚱한 자료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럴 경우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선관위 등 개별적으로 정보공개를 운영하는 곳을 제외하고, 공공기관이나 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통로는 정부 정보공개포탈(www.open.go.kr)이 유일합니다. 정보공개를 청구 받은 기관은 요청받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일부만 공개를 하기로 결정하면, ‘비공개’ 또는 ‘부분공개’라는 형식으로 처리합니다. 이럴 때 요청자가 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 하면 다시 한 번 고려해 달라고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이의신청 결과에도 승복하지 못 하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라는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보공개포탈은 정부나 행정기관이 엉뚱한 자료를 내놓고, ‘공개’라고 처리한 것에 대책은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겠죠.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청은 그런 당연한 일을 창조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창조적인 꼼수로 정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죠.
● 시스템은 3.0, 마인드는 0.5…‘정부 3.0’의 현실
시스템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쪽으로만 변화하지는 않죠.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편안함을 취하려는 사람, 관행에 기대 시스템의 변화를 거부하며 시스템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시스템을 변화시킬 때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라고 강조되는 이유죠.
‘정부 3.0’도 마찬가집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행사를 한다고 해서, 경진대회를 한다고 해서 시스템이 자리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3.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1.0’과 ‘2.0’이 충실히 이행되어야 합니다. 충실한 ‘1.0’이 엉성한 ‘3.0’보다 더 좋을 결과를 내는 경우도 많죠. ‘정부 3.0’도 탄탄한 ‘정부 1.0’ 없이는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 3.0'이 되었든, '정부 1.0'이 되었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죠.
열린 정부와 투명한 정부를 추구한다는 '정부 3.0'시대.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두가 아는 것 같은데, 정작 '정부 3.0'을 앞장서 외치는 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부 3.0'을 알리는 포스터와 현수막만 지나치게 많이 걸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