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근로정신대 갔다 왔다고 말 못했어요. 집안 식구들도 몰랐어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수기업 '후지코시'에 강제로 징용됐던 이자순(83·여)씨는 22일 부평아트하우스에서 열린 '평화도시만들기 인천네트워크 주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게 듣는다' 강연에서 '근로정신대'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1945년 2월 그는 "일하면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꽃꽂이도 배울 수 있다"는 군산공립소화심상초교 교장의 말만 믿고 일본 도야마로 건너갔다.
한 달간 군인과 같은 훈련 생활을 하던 그는 후지코시에 징용돼 베어링 속을 닦는 일을 6개월가량 했다.
그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다. 한 공기도 안 되는 밥, 단무지, 된장국, 빵 3개가 하루에 먹는 전부였다"며 "고향에서 가져온 옷을 일본 농부들에게 팔고 얻은 콩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해 해방 이후 두달이 지난 10월 이씨는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주먹밥 2개를 쪼개 먹으며 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왔다.
고향인 군산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모두 몸을 피한 상태였다.
그는 "우리 사회는 위안부하고 근로정신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근로정신대를 위안부라고 생각한다"며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비로소 입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공동대표는 "사회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숨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많다"며 "할머니들에게 더 넓은 역사의식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이 할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28년 설립된 후지코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 소녀 1천여명을 일본 도야마 공장에 강제로 끌고 가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피해자들은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도야마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재판소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됐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0월 근로정신대 피해자 13명과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 18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1인당 8천만∼1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바 있다.
이씨는 현재 인천에서 유일하게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단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