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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통화 긴축의 역사…'패닉과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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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통화 긴축은 공포의 대상이다.

가깝게는 지난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Bloodbath)이, 멀리는 1930년대 대공황의 충격은 현재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2004년 금리 인상처럼 당시는 무난하게 지나갔다고 여겼지만 수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후폭풍이 불어닥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7일(현지시간)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늦추기로 한 것은 이런 과거의 경험을 어느정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미 채권가격 폭락에서 멕시코 외환위기까지 1990년대 초반 미국에는 저금리 기조가 상당기간 이어졌다.

1990년 1월 8.25%였던 기준금리가 1992년 9월 3.0%까지 떨어지고 이후 16개월간 동결됐다.

그러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이끌던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994년 2월 24일 사전 신호 없이 정책방향을 급선회했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1년간 3% 포인트나 올렸고 한 차례에 0.75% 포인트나 인상하기도 했다.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국채 10년 물 금리는 1994년 1월 말 5.7%에서 그해 연말 7.8%로 2.1%포인트나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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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중남미 국가의 주식 폭락에 이어 '테킬라 위기'로 알려진 멕시코의 외환위기로 연결됐다.

중남미 국가들은 저금리 시대였던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유동성이 들어온 덕분에 주가가 폭등한 상태였다.

멕시코는 30배, 아르헨티나는 20배 이상 올랐다.

그러나 미국 금리 인상 후에 미국 발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통화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 자금이 썰물같이 빠져나가면서 양국의 주가는 1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멕시코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중남미 전역이 고통을 겪었다.

그 여파는 1997년 동남아에 이어 한국의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 2004년 미국은 2000년 IT 버블 붕괴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상당 기간 1%대 초저금리를 유지하다 2004년 6월부터 긴축에 들어갔다.

그린스펀 의장은 1994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 해 1월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금리를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낮게 유지할 계획"이란 문구를 삭제해 시장에 사전 신호를 보냈다.

인상 속도도 2년의 기간을 두고 한 번에 0.25%포인트씩 17차례로 나눠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였다.

그 결과, 각국 주가는 인상 때마다 사전에 조정을 받다가 막상 직후에는 상승 전환하는 흐름을 보였다.

당시 미국의 경기 호조와 중국의 호황 등으로 세계 경기가 양호했던 시기여서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의 여파가 잘 흡수됐다.

그러나 문제는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했다.

2006년부터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더니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다.

저금리로 인해 형성된 주택시장 버블과 부실한 미국 금융시스템 문제가 겹친 것이다.

◇1980년대 인플레 잡다가 중남미 외환위기로 오일쇼크가 덮친 1970년대 말에 미국은 경제 성장률은 낮은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1979년 1월에 취임한 폴 볼커 의장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펼쳤다.

4월 첫 FOMC를 시작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해 10%였던 금리가 1981년 5월에는 20%로 뛰어올랐다.

볼커 의장은 물가를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미국 금융시장은 약세를 보였고 국민들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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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때도 미국의 금리 인상은 중남미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1970년대 미국 은행들은 저금리 시대의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대출에 적극 나섰고 빚을 내서 경제를 일으키려던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으로부터 단기 채무를 잔뜩 빌렸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다소 후퇴하자 채무 상환이 힘들어졌고 1982년 멕시코가 먼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다른 남미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외환위기에 몰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1930년대 대공황의 악몽 미국의 1929년 대공황과 1937년 2차 대공황 모두 긴축 정책에서 유발된 측면이 있다.

미국은 1차 대전 후 상당한 호황을 누렸다.

전쟁 피해가 없던 미국으로 유럽 등지에서 자금이 믈려오면서 유동성이 풍부했다.

RCA(라디오 코프 오브 아메리카) 주가가 1920년 1.5 달러에서 1929년에는 400배 수준으로 치솟는 등 증시에 광풍이 불었고 부동산 투기도 심해졌다.

연준이 1928년부터 2월부터 갑자기 긴축에 들어갔지만 버블은 이미 너무 부풀어 있었다.

1929년 10월 월가 대폭락이 벌어졌고 경제는 대공황에 들어갔다.

미국은 경기 회복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대다가 1936년에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판단하고 유동성 회수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세운 것으로 결론났다.

증시가 급락하고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서 대공황은 1930년대 말까지 계속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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