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이름난 휴양지인 보드럼의 한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아딜 드미르타스에게 '그날'은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해변에 인접한 직장인 호텔에 출근해서 바쁘게 영업 준비를 아딜은 친구의 비명 소리를 듣고 호텔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비명을 지른 친구 옆에 달려간 아딜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3살이나 되었을까 싶게 작고 어린 꼬마가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그대로 바닷가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꼬마가 자신의 숨진 모습으로, 단숨에 전 세계에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운 아일란 쿠르디였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했어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팔과 다리, 얼굴이 살아 있는 듯 했어요. 아마 물속에 빠진 지 한 시간도 안된 듯 보였어요. 전 미처 감지 못한 아이의 눈을 가만히 감겨줬어요." (아일란 쿠르디 최초 발견자 아딜 드미르타스의 말)
아딜은 비명을 지른 친구와 함께 구급차를 불러 꼬마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미 꼬마는 오래전에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밤에는 잠도 오지 않구요. 꼬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아일란 쿠르디 최초 발견자 아딜 드미르타스)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적인 마지막 모습은 난민 문제를 취재하던 여성 사진기자인 닐류페르 데미르에게도 포착됐습니다. 파키스탄 난민들이 그리스로 가는 상황을 취재하러 가던 그녀 또한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과 마주했던 겁니다. 그녀는 겁에 질리고 슬펐지만, 사진을 찍어서 이 비극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합니다.
"그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알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일란 쿠르디 최초 촬영자 닐류페르 데미르)
데미르가 찍은 사진은 순식간에 SNS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아일란 쿠르디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 땅 시리아 코바니에 묻혔습니다. 쿠르디의 아버지는 쿠르디의 마지막을 이렇게 전합니다.
"타고 가던 배가 위아래로 끊임없이 흔들렸어요. 결국 배는 뒤집어졌고 우리는 모두 물에 빠졌죠. 제 팔에는 아일란과 그의 형 갈립이 매달려 있었지요. 저는 아이들이 바닷물을 먹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죠. 사력을 다해 팔을 들어 매달려 있는 아이들이 숨을 쉬게 했어요. 그때 아일란이 "아빠, 제발 죽지 말아요"라고 말하며 비명을 지르더니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 숨을 거뒀어요." (아일란 쿠르디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의 말)
막내 아일란을 비롯해 아내 레한, 다섯살 맏아들 갈립을 한번에 잃은 가장 압둘라는 살기 위해 등졌던 고향 시리아에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을 고향에 묻은 압둘라는 "가족들 무덤을 지키다 이곳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총리는 일단은 헝가리를 통해 들어오는 난민들은 제한 없이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합니다.
IS에 의해 죽음의 땅이 된 시리아를 떠나겠다는 시리아인들은 수백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시리아 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등 내전으로 초토화된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는 유럽, 그 중에서도 생존이 보장되는 독일과 북유럽으로 가고야 말겠다는 난민들이 수를 헤아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사실 유럽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난민 문제는 해결책을 내놓기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잘 사는 독일 등 EU 강대국 들에게 무조건 난민을 받으라고 마냥 국제사회가 압력을 넣기에는, 난민의 숫자가 도무지 가늠이 안 될 만큼 많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 문제는 EU 그리고 국제사회에 '인간애'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중요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중동의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상황을 국제사회는 그동안 외면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대륙의 문제'이니 '그 대륙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대륙'에서 죽지 않으려 '그들'이 유럽으로 필사의 이동을 하면서 중동의 난민 문제는 이제 유럽, 아니 전 국제사회의 '이슈'가 됐습니다.
그렉시트, 브렉시트 등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 득실로 싸웠던 EU, 그리고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제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매우 고귀한 명제를 놓고 자신들의 품격을 어떻게 드러낼까요? 부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이들 앞에 천박한 품격을 드러내지 않길 기대합니다. 그래야만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살리려는 아버지를 걱정한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