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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출정했던 아단성은 아차산 아닌 단양 온달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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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온달 장군이 출정했던 아단성은 서울 아차산이 아니라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으로 보는 게 맞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장창은 제주대 교수(사학)는 오늘(4일) 단양군 평생학습센터에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협의회 충북지회 주최로 열린 '단양 신라적성비 학술회의'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장 교수는 "온달이 출정한 아단성 위치를 놓고 논란이 많다"며 "고구려가 6세기 후반 온달을 앞세워 되찾으려던 지역이 '계립현과 죽령 서쪽'이고, 계립령(경북 문경시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를 연결하는 고개)과 단양 온달산성 주변에 온달 관련 설화와 전설이 아차산성보다 더 많은 점을 고려하면 아단성은 지금의 온달산성으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백산맥 북사면이 남사면보다 경사가 완만해 능선의 북쪽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지리적 조건을 감안할 때, 신라와 고구려의 각축기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단양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단양의 신라 적성비의 건립 시기와 관련해서는 "550년 정월과 3월 벌어진 신라의 도살성·금현성 함락, 진흥왕의 낭성 순수, 이사부의 군사 행적을 분석한 결과, 신라가 550년 중후반 무렵 적성 지역에 진출한 뒤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진흥왕 5대비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석입니다.

신라가 소백산맥 이북 지역에 진출하면서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을 점령한 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웠습니다.

건립 연대를 놓고 '545년 이전', '545~550년', '551년 이후' 등 크게 세 가지 설로 갈려 있습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적성비 건립 시기에 대해 "창녕 진흥왕 척경비나 황초령비와는 달리 외곽선이 없어 이들 비석보다 오래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며 "550년 이전 건립된 것이 분명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 교수는 비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관등 변화를 통해서도 건립 연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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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51년 9월 거칠부와 함께 한강 유역 공략에 나섰던 비차부의 관등이 삼국사기에 대아찬(5위)으로 남아 있는 데 비해 적성비에는 아찬(6위)으로 기록돼 있다"며 "비차부가 아찬으로서 551년 9월 이전 벌어진 적성 공략에 참전해 그 공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아찬으로 승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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