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5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초성2리 경원선 철길 옆에 조그마한 안내판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49년 전 몸을 날려 철로가 파손된 것을 기관사에게 알려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을 구한 소년 '의상자'를 알리는 안내판입니다.
사건은 1966년 8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동네에 살던 18세 소년은 해질 무렵 친구 집에 놀러 가던 길에 미군 중장비가 건널목을 통과하면서 앞에 장착된 육중한 삽날로 철로를 파손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양쪽 철로 레일 2개가 뽑혀버린 것입니다.
이 소년은 미군 차량 운전자가 안전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미군은 차량을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소년은 디젤 열차가 1㎞가량 떨어진 한탄강 철교를 건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열차가 그대로 건널목을 통과하면 건널목에서 탈선,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소년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열차는 급정거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소년은 흰색 속내의를 벗어 깃발처럼 흔들며 열차가 오는 방향으로 철길을 내달렸습니다.
그럼에도 열차는 멈출 기색이 없었습니다.
100∼150m를 달려 열차와 충돌하기 직전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은 반사적으로 철길 밖으로 몸을 던졌고 철길 옆에 설치된 철조망에 부딪치며 다쳤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열차는 날카로운 금속성 파열음을 내며 100여m를 더 달리다 사고지점에서 불과 2∼3m 전방에 멈췄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이 열차에는 휴가나 외출을 나온 장병 등 수백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기관사와 역장은 소년에게 '큰일을 했다'며 수일 내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1년이 다 된 뒤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철도청(당시 서울철도국)에 진정서를 냈고 그 보름뒤인 1967년 6월 30일에야 감사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소년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49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에 다시 드러나게 됐습니다.
최근 주인공인 이명수(67) 씨의 사연을 지인에게 들은 진명두 청산면장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돼야 한다며 기념 안내판을 세운 것입니다.
당시 청산면은 포천군에 편입돼 있어 연천군에는 관련 기록이 없었습니다.
진명두 면장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로운 일을 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데 이명수 씨도 그 중 한 명"이라며 "이명수 씨의 행동을 어린 학생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 알리고 1일 강사로도 초빙할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동두천 시에 거주하며 불우이웃 돕기 등 각종 봉사활동을 펼치는 이명수 씨는 "50년이 다 된 일인데 연천군에서 안내판을 세워 기념해줘 감회가 새롭다"며 "정부 차원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의사상자를 예우하는 시스템을 갖췄으면 한다"고 심정을 밝혔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