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몰아줄 테니까 그 대가만 챙겨줘”
지난 2007년 서울 이마트 본사 브랜드팀 소속 김 모 과장은 광고대행업체에 은밀한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이 대행업체가 매장 광고(무빙워크나 카트 등에 붙이는 광고)를 독점할 수 있도록 힘써 줄 테니 수익의 일부를 떼 달라는 얘기입니다.
광고대행업체 직원 A 씨도 처음엔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김 과장의 제안을 거절하면 회사의 매출이 급감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김 과장이 이른바 광고 갑질을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매달 400만 원 안팎의 돈을 상납 했습니다. 계좌로 꼬박꼬박 월급같이 들어오는 돈을 보고 욕심이 난 걸까요. 김 과장은 광고대행업체가 추가 광고를 수주할 때마다 더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늘어난 월 상납금은 최대 2, 3천만 원까지 뛰었습니다. 이렇게 김 과장이 7년여 동안 챙긴 돈은 20억 원에 달합니다.
● 일탈한 개인 비리인가, 조직 비리인가
‘이마트 광고 갑질’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김 과장의 계좌 추적을 통해 20억 원대의 자금 흐름을 포착하면서 이 사건은 수면 위에 올랐습니다.
일탈한 개인의 비리로 보였던 이 사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광고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법인 영업팀 소속 이 모 과장도 이 업체로부터 수억 원대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앞서 돈 받아 챙긴 김 과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것 말고는 이 업체와 전혀 관련 없는 이 과장의 뒷돈까지 마련하느라 업체는 진땀을 뺐다고 전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뒷돈을 받아 챙긴 두 사람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했다”며 “몇 차례 쑥덕쑥덕하더니 제돈 달라고 하듯 뒷돈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윗선의 비호 없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주장도 제기했습니다. 두 사람이 2007년 처음 돈을 받기 시작한 뒤 단 한 번도 담당 업무나 소속팀이 바뀐 적이 없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일개 과장이 수년 동안 그렇게 큰돈을 정기적으로 상납 받는 것을 윗선에서 모를 수도 없고, 나아가 비호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실제 미심쩍은 상황도 많았습니다. 뒷돈을 챙긴 김 과장이 주도해 소속 팀원들이 단체 골프를 치러 갔다든지, 고위임원들이 고급 술집에서 마신 술값을 김 과장이 대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이때 마다 김 과장은 업체 측에 “상납 받은 뒷돈을 혼자 먹는 게 아니다”고 수시로 말했고, 업체 측은 당연히 팀원들이 조직적으로 뒷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우려가 현실인 걸까요.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자 비리를 자백하는 고위 임원이 나타났습니다. 김 과장의 직속 상관인 모 상무가 해당 업체로부터 3억 원을 상납 받은 사실을 회사 측에 털어 놓은 것입니다. 말단 직원부터 고위 임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납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다만, 그 상납구조가 일개 팀에 그칠지 더 확대될지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볼 일입니다.
● ‘윤리 경영’ 강조한 이마트의 ‘앞뒤 안 맞는 해명’
이마트는 시쳇말로 이번 사건 탓에 조직이 ‘멘붕’에 빠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동안 윤리 경영을 강조해온 ‘이마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문제의 직원들이 ‘별종’이라 했습니다.
해당 직원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심정은 일면 이해했지만, 해명은 다소 의아했습니다. 해당 직원들에 대한 내부 감사 결과 돈을 받은 사실은 맞지만, ‘개별’적으로 업체에 접근해 ‘각자’ 돈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아래 직원이 돈을 받아 위에 돈을 떼 주거나 서로 짜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결국 이마트는 ‘조직적 비리’가 아닌 ‘일탈한 개인의 비리’라는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해명이 돈 준 업체가 목격한 상황과 동떨어졌다는 점을 차치하고도 이마트가 과연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진단’한 것인지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이마트라는 기업 전체가 이 한 업체를 상대로 뒷돈을 받아 챙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년 간 겁 없이(?) 뒷돈을 받아 챙기고도 고위 임원 자리에 오르고, 그 아래 직원들이 줄줄이 뒷돈을 받았는데도 ‘개인 비리’가 동시에 드러난 사건으로 결론 내린 점은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처방은,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정확한 진단’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마트가 지금이라도 곪아터진 상처의 뿌리가 어디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