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 람페두사 그 이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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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참사가 발생한 원인으로 유럽연합의 미온적인 대처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2013년 지중해에서 참사가 잇따르자 당사국인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에 공동 대처를 제안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당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상태였는데, 지중해 난민까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연합은 이런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난민 구조 기금을 지원하는 미봉책을 내놨습니다. 이탈리아의 난민 구조와 밀입국 조직을 단속하는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 작전을 지원하는데 월 9백만 유로를 지원했습니다.

이나마 지난 해 말 지원이 끝나고 ‘트리톤’ 작전으로 바뀌었는데 트리톤 작전에 대한 지원은 마레 노스트룸의 1/3 수준에 그쳤습니다. 마레 노스트룸 작전으로 지난해에만 10만에서 15만 명의 난민이 구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참사에 유럽연합의 지원 축소가 결정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UNHCR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3만 5천여 명의 난민과 이민자가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중 2만 3천500명은 이탈리아로, 1만 2천 명은 그리스에 도착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금융위기에 시달리는 가운데 이제 1분기가 지났을 뿐인데 난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사를 계기로 4월 23일 유럽연합 정상들이 회의를 가졌습니다. 지중해 난민들에 대한 대책회의였는데, 결론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결정 사항을 보면 트리톤 작전에 마레 노스트룸 수준의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방점은 오히려 군사작전 쪽으로 찍혔습니다. 지중해 참사의 원인을 밀입국 조직의 무리한 난민 수송으로 보고 이런 조직들을 단속하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20일 열린 외무, 내무장관 회의에서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까지 검토됐습니다. 지중해 난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보다는 오히려 난민 문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속내를 보인 것입니다.

지금 유럽은 극우파의 득세와 함께 이슬람 테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파리 샤를르 엡도 테러를 비롯한 일련의 이슬람 세력에 의한 테러와 IS의 현실적인 위협 등이 중첩되면서 반 이슬람 시위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난민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독일에서도 반 이슬람 시위가 확산되자 이에 맞서는 반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위협들이 내재화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현 집권당인 사회당이 극우파인 국민전선 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변까지 벌어졌습니다. 국민전선은 과거와 달리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책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반 이민, 반 유럽연합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지난 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연합 탈퇴와 엄격한 이민 제한을 외치는 극우정당이 전통의 보수, 노동 양 당을 꺾더니 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도 10%대의 지지율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속에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이민에 대한 반발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난민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줄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이른바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협상을 하고 있는 그리스는 카메노스 국방장관이 채권국과 대치 상황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리스에 들어온 난민을 유럽 각국으로 보내겠다고 위협까지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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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은 이민자들이 처음 들어온 국가가 이들을 받을지 아니면 원래 자기 나라로 돌려보낼지 1차적으로 심사를 하도록 돼 있습니다.(더블린 규정) 만일 그리스가 별다른 심사 없이 지금 국내에 있는 모든 난민들에게 이민을 허가하면 이들은 유럽연합 내 어느 나라라도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런 위협이 현실화된다면 지금 유럽연합을 묶고 있는 쉥겐 협정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가 난민들에게 이민을 허가하고, 이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면 지금은 쉥겐 협정에 따라 이들을 막을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유럽 국가들이 이런 상황을 꺼리기 때문에 지금은 철폐된 국경 검문을 부분적으로라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상황 발전에 따라서는 쉥겐 협정 자체가 무효화되는 일이 일부의 상상에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난민 문제는 이렇게 유럽연합의 존재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각국이 양해하면서 난민들을 일정 부분 수용해 왔지만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리비아에서만 수십만 명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난민정책이 엄격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보다 더한 참극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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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30일) [논

유럽에서 망명자를 수용하는 태도가 가장 열린 국가는 독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지난 해 3분기에 6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데 이어 4분기에도 그 이상의 난민을 받았습니다. 위 표는 EASO의 2014년 4/4분기 보고서에 나온 표입니다. 다른 유럽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독일이 압도적으로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참사를 대하는 자세도 열려 있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베를린에서 비정부기구들과 한 회의에서 "유럽의 관문인 지중해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목숨을 잃어가는 희생자들이 더 이상 없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이런 참사는 우리의 가치에도 어긋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메르켈 총리도 내부에서 반 이슬람 정서가 계속 확산된다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UNHCR은 ‘2014 망명의 추세‘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을 명시했습니다. 2013년과 2014년을 비교하면 일본은 2014년에 5천 명을 받아들여 그 전해보다 53% 더 망명을 허용했습니다. 한국은 2013년 1천600명에서 2014년에서 배가 넘는 3천300명을 받아들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세계적으로 평균 45% 정도의 망명 허용 증가율을 보였는데 한국과 일본은 이런 비율을 훨씬 뛰어 넘어 더 많은 인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류에 대한 기여는 선진국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UNHCR이 한국을 이렇게 적시하는 데에는 한국도 난민 수용을 더 과감히 하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지금 같이 지중해의 참극이 이어지면 결국은 한국이나 일본도 지중해 난민들을 나눠서 부담하라는 세계적인 요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지중해 난민이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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