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높지 않은 시골마을의 산 중턱에는 사람의 뼈가 나온다는 소문에 휩싸인 동굴이 하나 있다.
외지인들은 사람 뼈에 대한 소문을 듣고 동굴을 찾아왔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 동굴이 전국의 10대 공포체험 명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 중에서 이 동굴 안에 들어가 볼 생각을 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동굴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뼈와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그 이유를 짐작케 했다.
이곳에 수많은 유골들이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불과 십 수 년 전. 그 전에는 50년간 아무도 이 동굴의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 신문사 기자는 "저기에서 6. 25 때 사람들 많이 죽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주민들이 자세하게 얘기를 안 해주더라고. 쉬쉬하고."라고 말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왜 5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뼈 동굴 이야기를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것일까.
지역 주민들은 "(당시 아이들은) 두개골 갖다놓고 이렇게 뼈를 사람처럼 맞추는 놀이도 하고 그랬죠."라고 증언했다.
지역 주민들은 그곳에서 뼈가 자주 발견되었다고 했다. 수십 년 전, 아이들은 그 뼈를 가지고 놀았고, 외지에서 왔다는 의대생은 실습용으로 뼈를 가져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동굴에서는 왜 이렇게 많은 뼈들이 나오는 것일까?
이 지역에는 ‘뼈 동굴’에 이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50년도 더 지난 과거에, 이 지역에는 핏빛 개울이 나타났었다고 사람들은 증언했다. 그리고 당시 지역 신문의 기자가 취재를 나오기도 했었다. 이 현상은 하루 이틀로 끝나고 만 것이 아니라, 무려 1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고 했다.
지역 주민 "개울이 있는데 그 개울에 핏물이 거의 1년 이상 갔어요. 그 물로 빨래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하고."
지역 신문 기자 "그 물로 밥을 해 놓으니까 피비린내가 났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이 붉은 물줄기는 사람들의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오랜 시간 마을을 가로질러 흘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산중턱에 위치한 소문의 뼈 동굴이 나왔다고 했다.
왜 이 마을에서는 무시무시한 핏빛 물줄기가 흘러야만 했던 것인지 취재진은 동굴을 직접 찾았다.
제작진이 동굴에 있는 뼈를 조사한 결과 사람 뼈가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된데다 땅에 오랫동안 묻혀 있어 DNA 분석도 어려웠다. 유골 주변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탄피들이 발견됐다.
경남 코발트 광산의 학살은 놀랍게도 경찰(정보수사과, 사찰계)과 육군본부 정보국 CIC(지구, 파견대)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고무신과 밀가루에 혹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좌익단체로 몰아가며 반정부 활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전문가들은 최소 1800명에서 최대 3500명 이상이 이 동굴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역 주민들은 "트럭을 싣고 사람들을 데리고 갔고 내려올 땐 빈차였다.
매일 총소리가 났다"며 "다데굴(수직굴)에서 사람들을 총으로 쏘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이런 게 보였다"고 증언했다.
지금까지 500여구의 유해가 발견됐지만 더 많은 시신이 여전히 굴 속에 남겨져 있다. 57년만에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유해를 수습하긴 했지만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유해발굴 활동도 중단됐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아직도 억울해하고 있다.
비극적 전쟁에서 국가기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인 만큼 국방부가 진행하고 있는 유해발굴사업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도 수많은 유골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묻혀 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