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미시간주 북부 작은 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68살의 전직 교사 몽고메리가 승용차 트렁크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온 몸에는 멍 자국이 선명했고 누군가가 성폭행한 뒤 트렁크에 산 채로 가두고 질식사하게 만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렇다 할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있던 한 정보원이 수사관에게 결정적인 제보를 건넸습니다. 22살의 피터슨이라는 청년이 그 할머니를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피터슨은 이미 성범죄 혐의로 구금된 상태였고 정신병력도 있었습니다. 수사관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고 피터슨은 결국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재판 끝에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18년만에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됐습니다. 피터슨의 변호사가 당시부터 사건 수사에 여러 문제가 있다면서 끈질기게 미시간 주 사법 당국을 설득한 결과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천인공노할 성폭행 살해범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지게 됐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사건 발생 당시인 1996년, 실마리를 찾지 못해 허둥대던 수사 당국은 정보원의 제보를 바탕으로 피터슨을 체포한 뒤 집요하게 추궁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재판에서 피터슨이 범행을 직접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상황까지도 실토했다며 그의 진술이야말로 결정적인 증거라고 밀어 부친 끝에 그가 종신형을 선고받게 했습니다. 하지만, 피터슨이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들(변호사와 그 가족)은 피터슨이 수사관의 집요한 질문을 들으면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을 뿐이며, 그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정신 병력이 그릇된 선입견을 심어줘 배심원들이 잘못된 판단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잘못된 판결로 드러난 사건의 1/4이 진술에만 의존해서 구형했던 경우라는 연구 조사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게다가, 사건 당시 살해 현장에 남아있던 정액과 타액에 대한 DNA 테스트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피터슨과 다른 사람의 DNA가 검출됐는데 그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피터슨만 추궁해 자백을 이끌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지난해 말 한 언론에 보도됐고, 당시 새로 부임한 지방검사가 현대 과학에 의해 보다 정교해진 DNA 테스트를 다시 실시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게다가 DNA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미 상당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데이터베이스와 일일이 대조한 끝에 제이슨 라이언이라는 사람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습니다.
수사 당국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라이언은 당시에도 수사관들이 대면 조사를 벌였었고 DNA 샘플도 제출한 인물이었는데 이 라이언의 DNA 테스트는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미시간 경찰은 라이언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고 올 연말에 재판을 받을 예정입니다. 결국 피터슨은 16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겁니다.
피터슨을 종신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주인공은 변호사지만 그 배경에는 노스웨스트 대학 법대생들의 노력이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피터슨 변호사 팀에서 일했던 노스웨스트 법대생 딕슨은 “정말 짜릿해요. 16년간에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던 일을 바로 잡는 첫 단계가 시작된 거니까요.”
이 피터슨 사건이 일어나기 11년 전에 이 보다도 더 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5년 텍사스 공대의 흑인 대학생이었던 25살 팀 콜은 20살 여대생 미쉘 말린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당시 팀 콜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피해자인 말린이 팀 콜을 지목한 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돼 25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팀 콜은 수감된 뒤에도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습니다. 검찰이 유죄만 인정한다면 가석방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회유했지만 팀 콜은 자신의 결백을 거듭 주장하며 이 제의를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2007년 제리 존슨이라는 팀 콜의 동급생 친구가 팀 콜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실은 자신이 진짜 성폭행범이라고 실토하면서 사죄의 글을 보낸 겁니다. 당시 제리 존슨은 이미 다른 혐의로 구금된 상태였습니다. 그가 제출한 DNA를 검사한 결과, 진범으로 드러났고 결국 팀 콜의 무죄가 입증됐습니다. 하지만, 팀 콜은 이미 10년 전인 1997년, 감옥에서 천식으로 38살 나이에 숨진 뒤였습니다. 존슨은 팀 콜이 숨진 줄도 모르고 편지를 보냈던 것이었습니다. 팀 콜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13년이나 하고 감옥에서 숨진 뒤에야 결백이 입증된 겁니다. 참으로 기구하고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텍사스 주 의회는 팀 콜과 같은 억울한 희생자를 보상하기 위해 2009년 그의 이름을 따서 ‘팀 콜’ 법을 제정했습니다. 팀 콜처럼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가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게 되면 수형 기간 1년당 8만 달러의 보상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팀 콜의 변호사였던 케빈 글래신은 시 의회에 더 이상 팀 콜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팀 콜의 동상을 건립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시 의회는 이를 받아들여 텍사스 대학 법학과 광장에 팀 콜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법대생들이 이 동상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늘 실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변호사 글래신은 팀 콜의 동상 건립에 25만 달러, 우리 돈 2억 5천만 원을 냈습니다.
팀 콜이 감옥에 수감돼 있을 당시 여동생 카렌 케나드는 텍사스 대학 법학과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대학 법학과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습니다. 팀 콜은 면회 온 여동생 카렌에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학위를 반드시 따라고 설득했습니다. “나는 우리 사법체계가 나를 믿지 않는다 해도 나는 우리의 사법체계를 믿는다.” 오빠의 거듭된 권유로 케나드는 법학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오스틴 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