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을 잃은 음반 프로듀서와 연인을 잃은 싱어송라이터는 와이잭(헤드폰 분배기)으로 음악을 나눠 들으며 뉴욕 곳곳을 거닌다. 취향이 맞는 음악과 교감이 넘치는 대화 속에 두 남녀는 왠지 모를 감정을 느낀다. 이윽고, 여자는 남자를 자신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로 이끌고, 아늑한 공간에서 일순간 전기가 통한다.
멜로 영화를 봐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클리셰인 키스 타임이 이어질 터. 그러나 그 순간 여자의 친구가 등장해 산통을 깨고 만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결정적 장면. 분명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댄(마크 러팔로)은 음악적 파트너를 넘어 연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청객의 등장으로 어색해진 공기가 이 영화를 그저 그런 멜로 영화가 아닌 한 여성의 극적인 성장담으로 만들었다.
'비긴 어게인'이 전국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다양성 영화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상반기 다양성 영화 열풍을 일으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77만 명)의 흥행 기록을 두 배 이상 넘어서며 식을 줄 모르는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의 흥행은 공감 가는 이야기와 음악 영화의 미덕인 OST의 역할이 컸다. '원스'(2006)로 OST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존 카니 감독은 8년 만에 자신의 장기인 음악 영화로 돌아왔다.
미국 음악계의 러브콜을 받은 남자친구를 따라 뉴욕에 온 그레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연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 기타 하나 덩그러니 메고 집을 나온 그레타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친구에게 신세를 진다.
설상가상으로 통장 잔액까지 바닥나기 시작한다. 이때 나타난 프로듀서 댄은 음반을 내자고 제안한다. 이름값도 없고, 실력도 증명하지 못한 그레타는 댄의 제안에 따라 뉴욕 거리 곳곳에서 녹음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재능있는 작곡가와 실력 있는 프로듀서는 환상적인 파트너쉽을 자랑하며 멋진 음반을 완성해내고야 만다.
아일랜드를 떠나 할리우드로 넘어온 존 카니는 '원스'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뿌리 삼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스'와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예측가능한 방향으로만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긴 어게인'은 달콤한 멜로 영화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그보단 그레타의 성장 혹은 홀로서기에 초점을 맞췄다. 음악과 사랑, 부와 명예 등 그레타는 삶의 핵심적 가치를 앞에 두고 선택에 기로에 놓인다. 우선 순위만 다를 뿐 우리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고 갈등해본 것들이다.
영화는 비현실적일만큼 희망적이다. 배신과 좌절조차도 성숙의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미끈한 전개가 보는 이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재능에 대한 의심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한 20~30대 청춘에게 이 영화는 "할 수 있어" 혹은 "한번 해보라"며 격려를 하는 것만 같다.
이 과정에서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는 것은 음악이다. 그레타의 이야기는 그녀가 작곡한 노래로도 전달되는데 '로스트 스타'(Lost stars), '라이크 어 풀'(Like a fool), '노 원 엘스 라이크 유'(No one else like you), '텔 미 이프 유 워너 고 홈'(Tell me if you wanna go home) 등의 OST는 스토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존 카니 감독은 좀 더 대중적인 화법으로 음악과 인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뻔한 선택은 하지 않았다. 노련한 변화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