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영국에서는 물리적 폭행이 아니라도 배우자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다가는 가정폭력범으로 교도소에 가게 될 수도 있다.
20일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은 정신적으로 괴롭히거나 적절한 용돈을 주지 않는 등 배우자에 대한 비폭력적 학대도 가정폭력으로 처벌하는 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영국 내무부는 내년 총선거 이전에 이 법률안을 각의에 올릴 계획이다.
비폭력적 학대의 정확한 범주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배우자에게 굴욕감을 주거나 겁박하는 행위, 협박, 그리고 친구나 친지를 만나지 못하게 제한하는 행위와 용돈을 주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 장관은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다"라면서 "닫힌 문 안쪽에서 소름끼치는 범죄가 자행되는 게 바로 현실이며 우리는 배우자나 가족을 겁박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법안 제정에 참여한 시민단체 '여성 지원'은 물리적 폭행이 아닌 정신적 학대를 당한 주부의 사례를 이날 소개했다.
자녀 2명을 둔 이 피해자는 남편이 자신을 줄곧 업신여겼고 물건을 감추는가 하면 귀가가 좀 늦었다 싶으면 고함을 질렀다고 고발했다.
또 남편이 클럽에서 일주일에 200 파운드(34만원)를 쓰면서도 용돈 한 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는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한 남편이 자고 있던 자신을 깨워 담배를 사오라고 시켰다고 하소연했다.
이 여성은 쇼핑하면 반드시 남편에게 영수증을 가져다줘야 하고 영수증을 잊으면 욕설을 퍼붓고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도록 했다고 말했다.
내무부는 스토킹이나 학대를 처벌하는 형사법이 있지만 법 적용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 가해자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아 이번에 이런 법률을 새로 제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내무부 대변인은 장기간에 걸쳐 배우자를 협박하는 행위는 징역형으로 다스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내무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찰이 입건한 가정폭력 사건은 10만3천500건에 이른다.
이번 법안은 남성 배우자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마련됐지만 '맞고 사는 남편' 역시 보호 대상이다.
내무부는 여성 30%가 배우자에게 학대받지만 남성도 16%가 가정 폭력의 희생자라는 통계도 내놨다.
한편 자녀를 굶기는 부모를 형사 처벌하는 이른바 '신데렐라 법'에 이어 비폭력 배우자 학대 방지법까지 만들자 예전에는 사적 영역이던 가정사에 국가가 개입하는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